간석2동 본당

間石二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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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소속 본당. 인천시 남동구 간석2동 133-4 소재. 1974년 11월 1일 주안1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부활. 관할 구역은 간석2 · 3동, 구월2동 일부. 본래의 명칭은 '간석동 본당' 이었으나, 1993년 1월 본당 소재지별 명칭 변경에 따라 '간석2동본당' 으로 개칭되었다. 〔교 세〕 1975년 1,331명, 1982년 2,902명, 1988년 4,705명, 1993년 5,953명. 〔역대 신부〕 초대 타이센 로마노(1974. 11~1981.2), 2대 블라워스(Francis Blowers, M.M., 이) 프란치스코(1981.2~1981.8), 3대 이학노(李鶴魯) 요셉(1981. 9~1983. 2), 4대 강의선 힐라리오(1983. 2~1989. 2), 5대 박찬용(朴贊龍) 요한(1989. 2~1990. 2), 6대 오경환(吳庚煥) 프란치스코(1990. 2~1993. 1), 7대 김상용(金相湧) 힐라리오(1993. 1~현재).
〔설립과 성장〕 본당 설립 이전 이 지역 신자들은 1963년에 설립된 주안동 본당(1975년에 주안1동 본당으로 개칭) 소속이었으며, 만수동 공소에 나가 공소 예절을 보았다. 이 공소는 1967년 본당의 곽 요셉 신부가 마련해 준 전세 가정집으로 이전하여 계속되다가 한국 순교 복자 수도원 성당이 건립된 후 신자들이 이곳에 나가 미사에 참례하면서 없어지게 되었다. 이후 인천교구에서는 간석동, 구월동 지역의 신자수가 증가하자 1974년 주안동 본당으로부터 이곳을 독립시켜 본당을 설정하고, 초대 주임으로 타이센(Roman Theisen, M.M., 태의선) 신부를 임명하였다. 동시에 신자들은 우선 간석동 39번지 소재 개인 주택 1동을 전세내 성당으로 사용하는 한편 부지 매입 운동을 전개하여 그 해 12월에는 현 위치에 1,041평을 매입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3월부터 성전 건립에 착수하여 1년 뒤인 1976년 2월 26일에는 성당 사제관 수녀원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성당 건립이 진행되는 가운데 1975년 9월 18일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 분원이 설립되었으며, 같은 해 성모회, 기성회가 발족을 보았고, 이듬해에는 빈첸시오회가 설립되어 본당 활동에 협조하였다. 이밖에도 본당에서 해온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는 1979년 7월 22일에 있은 신용협동조합 창립, 1980년 6월에 전개한 광주 시민을 위한 모금 운동, 1982년의 장학생 선발 제도 마련, 각종 평신도 단체의 설립과 활성화 운동 등을 들 수 있다. 본당에서 처음으로 자본당을 갖게 된 것은 설립된 지 4년 만이었다. 꾸준히 교세가 증가하고 관할 지역의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우선 1978년 5월에 주원 본당(현 간석4동 본당)을, 같은 해 8월 만수동 본당(현 만수3동 본당)을, 1982년 2월에 구월동 본당을 각각 분할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수가 꾸준히 증가함에 따라 본당에서는 제4대 강의선(美義善, 힐라리오) 신부 재임시인 1983년 11월 27일 교리실을 완공, 축성식을 거행하였고, 1987년 성당 증축을 시작하여 이듬해 5월 13일 축성식을 가졌으며, 이후 본당 신부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의 쇄신에 노력해 오고 있다. (→ 인천교구)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