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 존 Locke, John(1632~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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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크.

존 로크.

영국 철학자. 경험론의 창시자. 1632년 8월 29일 영국의 서머싯(Somerset) 지방에서 법률 관리이며 청교도인 아버지의 맏아들로 태어나 1646년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명문 웨스트민스터 학교와 옥스퍼드의 그리스도 교회(Christ Church) 대학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중세 스콜라식 교육을 견디지 못해 나태와 무관심 속에서 생활하던 로크는, 우연히 데카르트(R. Descartes)의 저술을 접하면서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철학은 다분히 사변적이며 불명료한 것처럼 보이는 스콜라식 철학에 대하여 명석한 이론적 대안을 판명함으로써 새로운 철학의 가능성을 로크에게 제시해 주었다. 그러나 로크는 데카르트를 좇아 합리론자가 되지는 않았으며, 평이한 역사적 방법으로 이성주의를 주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식의 경험적 분석을 추구하였다.
〔배경과 저서〕 로크가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론적 철학 경향으로부터 탈피하여 독자적으로 경험론적 철학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화학자 로버트 보일(R. Boyle)과의 교분 때문이었다. 1660년대 초 로크는 보일 등의 과학자들을 통해 새로운 과학적 탐구 방법을 접하게 되었는데, 보일이 주창한 새로운 과학 방법론은 고전 고증적이고 사변적인 개념 분석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연구 방법을 탈피하여 경험과 실험을 진리 탐구의 기준으로 강조하는 실증적인 방법에 기초한 것이었다. 전통적인 스콜라식 교육에 식상하였던 로크에게 실증적 탐구 방법의 발견은,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과 더불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학문의 여정에 또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이때 로크는 이성 중심적 철학 전통에서 탈피하여 경험을 중시하는 철학적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한편 과학자들과의 친분은 로크로 하여금 의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하여, 1667년에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정치가 애쉴리(Ashley) 경의 주치의가 되었다. 그는 곧 애쉴리 경의 신임을 얻어 정치 고문의 역할도 겸하여 수행하였는데, 1675년에 이르기까지 애쉴리 경의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많은 정치 선전문을 만들어 배포하였다. 그러나 과다한 업무로 건강이 악화된 로크는 1675~1680년 프랑스에서 요양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데카르트의 논적(論敵)인 가상디(P. Gassendi)의 글을 접하게 되는데, 그의 글을 통하여 로크는 자신의 경험 중심적 태도가 데카르트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으로 정립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1680년 귀국한 로크는 곧바로 쉐프스베리 백작이 된 애쉴리 경을 도와 주었다. 그러나 애쉴리는 국왕에 대항하다가 결국 1683년에 네덜란드로 피신하게 되고 급기야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후원자를 잃고,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게 된 로크는 서둘러 네덜란드로 도피하였다. 그곳에서 로크는 자신의 정치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할 것을 구상하는 한편, 보일 등과 연구하였던 새로운 탐구 방법을 전통 철학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적용할 방법을 모색하였다.
1688년 명예 혁명으로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이듬해 귀국한 로크는, 1690년에 그의 대표적인 저술 《인간 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과 《정부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을 출판했으며, 이후에도 계속 저술 활동에 전념하여 《교육에 관한 소고》(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 1693), 《그리스도교의 합리성》(The 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 1695)을 펴냈다. 또한 1689년, 1690년, 1693년에는 종교적인 관용에 관해 역사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 에세이를 연속적으로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 후 1704년 10월 28일 에식스(Essex)에서 사망하였다.
〔사 상〕 인식론과 존재론 : 존재와 인식에 관한 그의 경험주의적 태도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철학서 《인간 오성론》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어떻게 사고의 재료를 얻게 되는가? 즉 마음은 어떤 경로를 거쳐 관념을 받아들이게 되는가? 마음은 어떤 방식으로 지각된 관념을 정리하고 분석하는가? 마음에 의해 인식되는 세계는 어떤것인가? 관념과 언어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가?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이와 같은 의문들에 답함에 있어 우선 로크는 합리론자들이 주장해 온 생득 관념(生得觀念, innate idea)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이어서 그는 사유의 내용을 구성하는 요소들인 단순 관념들은 모두 감각 경험 및 내성(內省, reflection)을 통해서만 지각되며 우리의 지식 체계는 결국 이들을 추상 · 연합 · 결성시킴으로써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물리적 대상에 관한 로크의 이러한 견해는 "실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규정한 문구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감관을 통해 지각할 수 있는 것은 물체의 부차적인 속성에 불과하며 이것은 물체의 본질을 반영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물체의 본질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로크의 경험론적 이론 중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언어에 관한 비본질주의적(anti-essentialism) 견해와 자아 동일성(self-identity)에 관한 의식에 준거한 이론을 들 수 있다. 로크에 의하면, 어떤 하나의 개체나 종(種)에 고유한 본질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각각의 이름들은 우리가 규약에 의해 부과한 인공물에 불과할 뿐이며, 이름과 그 대상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 연관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이론은 현대에 이르러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철학자에 의해 더욱 발전되어 언어 철학 이론이 되었다. 또한 자아 동일성에 관한 그의 이론 역시 인간의 정체성을 정신 · 육체 · 영혼 등의 어떤 기체(基體, sub-strate)에서 찾지 않고 의식의 연속성에서 찾음으로써 현대적인 자아 동일성 이론을 정초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정치 철학 : 《인간 오성론》이 현대 영미 철학의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경험주의 인식론의 전형이라면 그의 《정부론》은 현대를 지배해 온 이데올로기라 볼 수 있는 자유주의 사상의 모태이다. 로크가 《정부론》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였던 문제는 정치적 의무의 성립 근거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어떤 근거 위에서 정치 권력에 대한 복종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묻는 정치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정부 혹은 정권의 설립 필요성에 관해 로크는 '자연 상태' (state of nature)라는 사회 계약론적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였다. 시민 사회가 설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자연 상태에서는 개인의 생명 · 자유 · 사유 재산의 보존이 보장될 수 없다. 따라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명 · 자유 · 사유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정부를 설립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각 개인의 자발적 의지에 달려 있다. 결국 정치 권력에 복종할 의무는 오직 각 개인이 정치 권력에 자발적으로 동의함으로써 발생하지만 동의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로크에 의하면 인간은 신의 피조물로, 신의 명령을 좇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신의 명령, 즉 인간이 복종해야 하는 신의 의지가 곧 자연법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치 권력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자연법에 의해 제한받는다. 그에 의하면, 자연법에서 으뜸가는 원리는 자기 보존의 법칙이다. 자연법은 비록 자발적인 동의에 의한다고 해도, 자신을 남에게 팔아 넘겨 스스로 노예가 되는 것을 금지한다. 자신의 생명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는 자신의 보존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절대적인 권한을 인정하는 것은 동의 행위라 생각할 수조차 없다. 왜냐하면 동의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이양하는 행위를 지칭하는데, 신의 피조물인 인간은 애초에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권리를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정부를 인정하는 행위는, 자신이 가진 권리보다 더 많은 것을 이양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동의 행위라고 여겨질 수 없다. 그렇다면 전제(專制) 정부는 피지배자의 동의 유무에 관계없이 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로크에게 있어서 정당한 정부란 주어진 권한 내에서 효율적으로 활동하는 정부이다. 즉 자연법이 인정하는 권한 내에서 독재적이거나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시민의 생명 · 자유 · 사유 재산을 효율적으로 지켜 주는 정부만이 정당한 정부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부론》의 핵심적인 내용은 권력 제한의 필요성, 즉 절대 왕권의 부정이라 이해할 수 있다. 로크의 정치 이론은 중세로부터 유래한 전통적인 사회 계약론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전통적인 사회 계약론은 군주의 통치권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자발적 동의 즉 사회 계약에 의해 형성된 인위적인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군주와 백성 사이에 맺어진 계약은 자연법에 의거하여 백성의 생명, 인권 및 재산의 보호에 목적을 둔 것 인 만큼, 군주의 백성에 대한 권한과 백성의 군주에 대한 의무를 규정한 계약은 조건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군주가 자신에게 부여된 것 이상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애초의 계약을 위반하였을 경우 백성들은 군주에 반기를 들 권한이 있다. 역사적으로, 사회 계약론의 이념이 폭정에 대한 혁명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 전통적인 사회 계약론자들은 처음에는 종교적 탄압에 항거하였고 나중에는 절대 왕권에 반대하여 그들을 지배하던 군주의 권한에 도전하였다. 개념 체계나 표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로크의 이론도 결국 이러한 사회 계약론의 맥을 이어받은 것이다.
〔평 가〕 《인간 오성론》에서 우리가 감관을 통하여 지각하는 것은 물체의 부차적 속성에 불과하고 이것은 물체의 본질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그의 견해는 버클리(G.Berkeley)와 흄(D.Hume)을 거쳐 후에 반실재론적 철학으로 발전하였다. 결국은 세계의 본질에 관한 어떠한 사변도 용납하지 않는 현대 영미 철학자들의 반형이상학적 태도를 배타하였다. 《인간 오성론》에서 전개된 로크의 이론들이 모두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로크 자신도 인정하듯이 《인간 오성론》에는 매우 산만하고 중복이 심할 뿐 아니라 논리적 정합성(整合性)이 결여된 부분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서양 철학사에서 고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물리적 대상, 언어 및 지식의 본질에 대한 경험주의적 문제 해결 방식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 오성론》의 철학사적 의미는 그것이 최초의 경험 중심적 인식론의 체계화 작업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근대 과학의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탐구 방법을 원용하여 철학적인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사변적이고 이성 중심적인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점이 로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현대 철학은 사변적인 형이상학보다는 경험에 근거한 인식론적 고려를 강조한다. 사물의 본질을 말하기 이전에 인식의 범위와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얻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단지 근거 없는 허구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비록 합리론자들은 로크가 인식의 가능성을 과도하게 위축시켰다고 비난하지만, 그가 우리로 하여금 사변적이고 이성 중심적인 형이상학에서 빠져 나오는 데 일조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부론》은 프랑스에서 혁명 정당화를 위한 이론적 근거로 사용되었으며 미국의 독립 선언문에도 로크의 사상이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경험론)

※ 참고문헌  Maurice Cranston, John Locke, a Biography, Oxford, 1957/ John J. Jenkins, Understanding Locke : An Introduction to Philosophy through John Locke's Essay, Edinburgh, 1983/ John W. Yoton ed., John Locke, Problems and Perspectives, a Collection of New Essays, Cambridge, 1969/ John Colman, John Locke's Moral Philosophy, Edingurgh, 1983/ John Dunn, The Political Thought ofJohn Locke : A Historical Account of the Two Treatises of Govermment, Cambridge, 1969/ James Tully, A Discourse on Property. John Locke and his Adversaries, Cambridge, 1980/ John W. Yolton, John Locke and the Way of Ideas, Oxford, 1956/ John Locke, Two Treatises ofGoverment, P. Lalett ed., Cambridge, 1960(이극찬 역, 《통치론》, 삼성판 세계 사상 전집 13, 삼성출판사, 1982)/ John Locke, Two Treatises of Govermment, P. Lalett ed., Cambridge, 1960(임성희 역, 《통치론》, 세계의 대사상 6, 휘문출판사, 1985)/ John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P.H. Nidditch ed.(조병일 역, 《인간 오성론》, 세계의 대사상 6, 휘문출판사, 1985). 〔鄭淵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