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상트 오틸리엔 베네딕도 수도회 회원. 덕원 면속구 소속 선교사. 세례명 루치오. 한국명 홍태화(洪泰華). 1890년 2월 19일 독일 바이에른(Bayern)에서 태어나, 1914년 로마성 안셀모 대학의 철학 · 신학과를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1924년에 한국에 입국한 로트 신부는 서울 수도원에 있다가 1925년 6월 육도포(六道泡) 본당의 2대 주임으로 임명되었으며, 1927년 5월에는 원산 본당의 13대 주임 신부로 임명되어 도시 지역의 사목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1921년에 설립된 해성학교(海星學校)의 교장을 겸하여 학교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힘썼고, 1930년 8월 19일에는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의 제 2대 원장 겸 부감목으로 취임하였다. 1927년부터 원산의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원의 고해 신부를 맡았던 그는, 수도원 원장으로 있으면서도 매주 한 번씩 수녀원을 방문하여, 1934년 봄까지 성사를 집전하였다.
1931년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9월 13~27일 교황 사절에 의해 소집된 조선 공의회에 원산교구의 대표로 사우어(B. Sauer) 주교와 히머(K.Hiemer) 신부, 담(F. Damm) 신부와 함께 로트 신부도 참석하였다. 또 수도자들을 위하여 일주일에 네 차례씩 영성 훈화를 하였으며, 소신학교에서는 독일어를, 대신학교에서는 윤리신학과 라틴어를 가르쳤다.
한편 1936년에는 로트 신부가 로마 미사 경본을 한글로 번역한 《미사 경본》(彌撒經本)이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간행되었는데, 미사 해설, 미사 통상문 등이 수록된 한국 최초의 완전하고 체계적인 전례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이 간행 · 보급됨으로써 신자들은 비로소 미사 경문을 보며 전례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600면 정도의 연습 문제가 포함된 독한(獨韓) 문법책을 편찬하여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 《가톨릭 청년》과 같은 잡지에 호교론(護敎論)과 공산주의 비판에 관한 논문들을 자주 발표하기도 하였다.
8 · 15 광복 후 북한 지역에 공산 정권이 수립되면서 교회에 대한 탄압이 더욱 심해지기 시작하였는데, 급기야 1949년 5월 19일에 로트 신부는 사우어 주교, 수도원 부원장 실라이허(Schleicher, 安) 신부, 덕원 신학교 교수 클링사이즈(Klingseiz, 吉) 신부 등과 함께 공산군에게 체포되었다. 성당을 포함한 교회의 재산은 몰수되고 체포된 신부들은 원산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 후 평양의 형무 소로 이송되었는데, 로트 신부는 심한 고문과 형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켜 나갔다. 그러나 결국 풀려 나지 못한 채 1950년 10월 3일, 후퇴하는 공산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원산 수녀원사》, 1988. [李裕林]
로트, 루치오 Roth, Lucius( 1890 ~ 1950)
글자 크기
4권

로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