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시, 조반니 바티스타 데 Rossi, Giovanni Battista de(1822~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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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롯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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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롯시.

그리스도교 고고학(Christian archaeology)의 창시자. 1822년 2월 22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로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20세 되던 해인 1841년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 고고학에 관련된 여러 유적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예수회의 고고학자였던 마르키(G. Marchi) 신부로부터 로마 근처에 산재해 있는지하 공동 묘지 겸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장소였던 카타 콤바의 연구를 제의받은 롯시는, 바티칸 도서관의 필사자(scriptor)로 일하면서 그리스도교 관련 유물들의 연구를 구체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교와 관계된 고고학은 성서 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을 다루는 성서 고고학과,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건축과 예술, 유적 등을 총망라하여 연구하는 그리스도교 고고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이 중에서 롯시는 후자에 속한다. 롯시는 그리스도교 관계 유물 연구에 있어서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이었던 여러 가지 과학적인 방법론들을 적용하였다. 특히 7~8세기경의 유적과 유물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서, 같은 시대의 기록물들인 고대 그리스도교 문서 · 달력 · 여행기 · 순교록등을 최대한 참고로 하는 역사 비평적인 방법론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체계적인 방법론에 의해 발굴한 결과, 1852년에 성 갈리스도 1세(Callistus 1 ) 교황의 카타콤바에서 교황 고르넬리오(Cornelius)의 무덤을 발견했으며, 1854년에는 3세기의 교황들과 성녀 체칠리아(Cecilia)의 유해를 찾아냈고, 1856년에는 에우세비오의 무덤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로마 근처의 그리스도교 공동 묘지 중에서 프레텍스타투스(Pactertams)와 도미틸라(Doritila)의 카타콤바를 발견하였고, 1873년에는 네레오(Nereus)와 아킬레오(Achilleus)의 바실리카 건물, 1882~ 1883년에는 히폴리토(Hippolytus)와 펠리치타토(Felicitatus)의 기념 동굴 등을 발견하였다. 교황 비오(Pius) 9세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로마 카타콤바의 지리적 확인 작업을 완벽하게 마무리한 그는, 1864~ 1877년에 편찬한 3권으로 된 《그리스도교적 지하 로마》(Roma sotterranea cristiana)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고고학을 확립하였다. 그리스도교 고고학의 정기 간행물인 《그리스도교 고고학의 보고》(Bulle-tino di archeologia cristiana)를 1863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하여 서양 고전 시대와 그리스도교의 금석문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어 서양 고전 연구를 집대성한 《라틴어 비명 전집》(Corpus Inscriptionum Latinarum)의 간행에 참여하여 약 27년 동안(1861~188)의 연구 끝에 두 권으로 된 《7세기 로마의 고대 그리스도교 비명》(Inscriptiones christianae urbis Romae septimo saeculo antiquiores)을 편찬하였다. 그가 일반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을 모두 합치면 32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데, 이 모두는 현재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뒤센(L. Duchesne)과 공동으로 《예로니모의 순교록》(Martyrology of St.Jerome)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15세기의 모자이크와 16세기의 성화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전문적인 분석을 통한 연구 업적을 남기기도 한 롯시는, 1894년 9월 20일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발굴과 연구 결과는 각국의 고고학자들을 자극하여 일찍이 없었던 그리스 도교 고고학의 부흥을 초래하였다. (→ 고고학, 그리스도 교의)
※ 참고문헌  0. Marucchi, Giovani Battista de Rossi, Rome, 1903/F.X. Murphy, 《NCE》 12, p. 680. [金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