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 저자와 독자
Ⅱ . 집필 장소와 연대
Ⅲ . 집필 동기
Ⅳ . 사료 및 편집
Ⅴ . 신학적 구도와 전망
4복음서 가운데 세 번째로 등장하는 복음서. 루가 복음서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풍부한 어휘와 출중한 신학적 사상으로 인하여 수많은 성서학자들과 일반 독자들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차지해 왔다. 이 복음서는 모든 면에서 사도 행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본 복음서에 대한 개괄적 소개를 하는 도중에 사도 행전에 관련된 사항을 불가피하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Ⅰ . 저자와 독자 저 자 : 제3 복음서와 사도 행전의 저자가 루가라고 정식으로 언급된 것은 마르코와 마태오에 비해 훨씬 후대의 일이다. 마태오와 마르코에 대해서는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Papias, 60/70~125)가 130년경에 이미 증언하였지만, 루가의 경우 180년경 로마에서 작성된 무라토리 경전 목록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졌다. 무라토리 경전 목록은 루가 복음서를 '루가에 의한 세 번째 복음서' 로 소개하였다. '루가에 의한 복음' 이라는 표제를 지닌 가장 오래된 필사본은 보드머 파피루스(P73 175~225)인데, 이 사본이 만들어질 때쯤에는 이미 4복음서의 전통적인 저자명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초대 교회로부터 복음 사가로 전해지는 루가가 누구인지 그 정체를 확인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들이 모아졌다. 전통적인 견해로는 이 저자가 바오로의 협력자(필레 1, 24 ; 2디모 4, 11)인 의사 루가(골로 4, 14)라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의 첫 증언은 무라토리 경전 목록뿐 아니라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가 200년 전후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반이단론》(3, 1, 1)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일 열두 사도의 그룹에 끼지도 못한 평범한 이름의 루가가 이 두 책(제3 복음서와 사도 행전)의 저자가 아니었다면, 초세기의 교부들이 어떻게 그토록 한결같이 그의 이름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대체하지 않고 보전하고 증언하여 줄 수 있었겠는가?" 라는 그럴듯한 이론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루가 이외의 복음서 저자들 가운데서 마태오나 요한은 열두 사도들 명단에 들어 있으나 마르코는 그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른 한편 130년경 파피아스가 최초로 증언한, 마르코 복음의 저자를 베드로의 통역자요 협력자로 보는 전통적 견해도 성서학계에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마르코나 루가, 마태오나 요한과 같은 이름들은 당시에 흔히 통용되던 이름들이었다. 따라서 루가나 마르코와 같은 평범한 인물이 초기 문헌들에 의해서 증언되는 현상 그 자체가 친저성(親著性)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 될 수는 없다. 좀더 신중한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신약성서에 산발적으로 드러난 빈약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복음서 저자들의 이름을 붙여 주는 2세기의 상황에서, 루가 복음과 사도 행전의 저자에게도 바오로계 문헌을 근거로 '루가' 라는 이름이 주어졌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붙여진 저자명들은 신약성서의 기록들을 비판적인 눈으로 대하지 않았던 교부들에게 당연시되었을 것이다. 특히 이런 주장은 바오로가 자신의 서간에서 스스로 묘사하는 바오로상과 사도 행전에 소개된 바오로상이 판이하게 다른 점으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루가 복음과 사도 행전의 저자가 바오로의 협력자라기보다는 바오로 시대 이후 사람으로서, 사도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자기가 얻어낸 자료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서술하고자 애썼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팔레스티나의 지리에 다소 어둡고 유대인들의 관습이나 풍물에 대해서도 착각하고 있는 점들로 미루어 보아 이방계 그리스도인이라고만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독 자 : 일반적으로 성서학계에서는 루가 복음의 저자가 마음에 둔 독자를 이방계 그리스도인 또는 이방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라고 보고 있다. 이런 결론의 근거로서 우선 집필 대상과 동기를 밝히는 헌정사(獻呈辭)가 복음의 서두에 나온다는 것이다. 이 헌정사는 당대의 그리스 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저술 관습이었다. 여기에 나오는 후원자는 데오필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이다. 데오필로를 그리스도인 독자를 상징하는 가상적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름에 대한 상징적 해석은 3세기의 오리제네스 이후에나 발견되기 때문에 루가 복음의 서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데오필로는 루가에게서 헌정받은 이 작품을 필경사들의 노고를 빌려 복사하고 판매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루가 복음의 서문이 뜻하는 바로는 그의 신분이 아직 예비자이거나 갓 입교한 신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루가 복음 내용 자체에도 저자의 독자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증거가 풍부하게 발견된다. 루가는 자신의 주요 사료인 마르코 복음과 예수 어록에서 유대적 특징을 강하게 나타내는 부분들을 과감히 삭제하는 경우가 많다. 유대교의 정결 예식과 신심에 관한 기록의 삭제, 정(淨)과 부정(不淨)에 관한 논쟁의 삭제, 그리고 대립 명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율법적 요소들의 누락 등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때로는 팔레스티나의 전통이 루가의 편집을 통해서 그리스적 상황에 맞게 변형되기도 하고,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이름들이 그리스식으로 바뀌어 소개된다. 곧 랍비를 선생님으로, 랍부니를 주님으로, 카나나이오스(Καναναίος)가 열혈당원(ζηλωτής)으로, 그리고 골고타가 해골로 고쳐진다.
예수의 족보는 마태오 복음과는 달리 다윗과 아브라함에서 그치지 않고 아담과 하느님에게까지 소급된다. 그가 인용하는 구약성서도 그리스어로 된 70인역이다. 그가 '유대' 라는 이름을 팔레스티나 전체를 가리키는 광의 (廣義)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팔레스티나 밖에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하였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왜냐하면, 루가 당대의 그리스-로마 문헌은 유대를 이처럼 광의로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루가 복음과 사도 행전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사상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이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 만민에게 전해진다' 라는 구원 보편주의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루가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복음서를 집필하였다고 볼 수 있다.
Ⅱ . 집필 장소와 연대
집필 장소로 가이사리아, 데카폴리스, 안티오키아, 아카이아, 로마 등으로 추측되고 있지만, 한마디로 팔레스티나 밖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구체적인 장소를 근거 있게 제시할 수 없다. 집필 연대는 루가 복음서 안에 로마군의 예루살렘 침공을 비교적 자세하게 암시하는 듯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루가 21, 20-24) 70년 이후가 확실하고, 루가의 기록들이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저서들(93경)과 무관한 점으로 미루어 최소한 90년대 초반 이전이라 할 수 있다. 복음서의 출간 후 사도 행전의 기록을 위해 저자에게 주어졌을 시간적 여유를 고려한다면 루가 복음의 집필 연대는 80년 전후로 여겨진다.
Ⅲ . 집필 동기
집필 동기는 저자의 편집 의도와 신학적 전망에 필연적으로 연결되겠지만, 여기서는 저자가 책을 펴내게 된 직접적인 집필 동기를 밝히고자 한다. 저자는 이 집필 동기를 루가 복음과 사도 행전의 헌정사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중에서 루가 복음의 헌정사만을 다루어 본다. 이 헌정사의 내용이 루가 복음의 내용만을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사도 행전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식별하기 힘들다. 그러나 헌정사의 본문 중 1장 1절의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들"이라는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예수 당시의 일들뿐만 아니라 승천 이후 저자의 시대까지 일어났던 일들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서문은 사도 행전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두 번째 책의 서문인 사도 행전 1장 1절에서 첫 번째 책' 에 대해 그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여 언급할 뿐 새로운 집필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다.
우선 루가 복음의 저자는 헌정사 첫머리에 팔레스티나를 비롯하여 지중해 연안 전 지역에서 일어난 나자렛 예수와 관련된 사건을 자신보다 앞서 기록한 선배들이 있었다고 밝힌다. "실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데 손을 대었습니다" (루가 1, 1). 이 선임자들은 아래에 좀더 상세하게 언급하겠지만 마르코와 '예수 어록' 의 저자를 위시하여, 루가가 자신의 복음서와 사도 행전을 쓰기 위해 이용한 기록 전승의 저자 모두를 가리킨다. 위에서 밝혔듯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사건은 루가 복음의 내용을 이루는 세례자 요한의 공적인 출현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의 승천사이에 일어났던 일들뿐만 아니라, 사도 행전에 기록된대로 선택된 증인들의 활동에 힘입어 예루살렘에서부터 주님의 복음이 이방 민족들의 중심지인 로마에까지 퍼져나간 과정도 포함한다.
이어 루가는 자신의 선임자들이 믿을 만한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록 전승을 남겼다고 주장한다. "처음부터 목격하고 말씀의 시종이 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대로 엮은 것입니다" (1, 2). 이 증인들은 예수 사건을 목격하고 그 사건에 동참했으며, 나중에 그것을 전파하는 말씀의 시종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전해 준 내용 안에는 나자렛 예수의 삶뿐 아니라 말씀의 시종으로서 초창기 교회 안에서 보여 주었던 자신들의 활동상도 함께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루가는 여기서 자신을 나자렛 예수의 목격 증인들이었다가 말씀의 시종이 된 사람들의 대열, 이른바 '복음의 제1 세대' 와 분명히 구별짓는다.
그 다음 저자는 선임자들의 모범을 따라 예수 사건을 다루되 이 사건을 그 시초에서부터, 곧 마르코 복음을 따른다면 세례자 요한의 출현(루가 3, 1)에서부터, 예수 어록을 따른다면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1, 5)에서부터, 주도 면밀하게 검토하고 순서대로 정리하여 기록했다고 보고한다. "저 역시 모든 일을 그 시초에서부터 더듬어 면밀히 알아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존귀하신 데오필로님, 당신을 위해서 순서대로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1, 3). '모든 일을 그 시초에서부터 더듬어 면밀히' 라는 표현은 루가가 자신의 작품에 바친 세 가지 노력, 즉 온전성과 철저함과 정확성을 각각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저자는 자신의 집필 동기를 보다 분명하게 밝힌다. "(읽어 보시고) 당신이 이미 배우신 말씀들이 확실하다는 것을 납득하시기 바랍니다”(1, 4). 루가는 데오필로가 이미 그리스도교의 핵심 메시지나 교리를 기본적으로 들어 알고 있음을 전제하면서, 그가 전해 들은 지식이 올바른 전승, 곧 신뢰할 수 있는 목격 증인들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 두 권의 책을 쓰는 것이다. 물론 루가의 이 집필 의도는 데오필로 한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고, 데오필로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모든 그리스도교 입문자들이나 아직 확고한 신앙을 갖지 못한 갓 입교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이 방대한 양의 저서가 일개인만을 위한 보고서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 Ⅳ . 사료 및 편집
사 료 : 공관 복음의 전승사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는 이출전설(二出典說)이다. 이 설에 의하면 마태오와 루가는, 60~7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르코 복음의 구조와 내용을 근간으로, 50~6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가정되는 예수 어록(Q)과 자기들 나름대로 수집한 특수 자료(SL)를 이용하여 각기 복음서를 썼다.
루가 복음서의 저자는 마르코 복음에서 틀을 전수받았다. 루가 복음 안에서 이 틀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시작되는 도입 부분, 열두 제자의 선출과 많은 치유 사건들을 다룬 갈릴래아 선교 전반부, 유대와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을 다룬 갈릴래아 선교 후반부, 예루살렘 입성과 그곳에서의 가르침 및 묵시론적 담화, 수난 사화 등 주요 순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 어록은 루가와 마태오가 공유하는 사료이다. 이 사료는 예언서의 꼴과 특징을 갖추고 있다. 곧 예언자가 부름을 받는 것에 맞추어 공관 복음의 경우 하느님의 아들이요 사람의 아들인 예수의 부르심 받음으로 시작하여 종말론적인 가르침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사료는 계속적인 교훈 담화가 아니라 단위별로 분리된 논담(論談)들로 되어 있다. 그래서 루가는 자신의 복음서 안에서 적절한 장소마다 이 토막 논담들을 삽입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세례자 요한과 예수 사이의 관계, 사탄과 그의 나라에 대한 예수와 하느님 나라의 승리, 사람의 아들 예수와 하느님 나라가 요구하는 제자 신분, 이스라엘과 예루살렘과 바리사이들에 대한 심판, 종말론적 미래 등과 관련된 주제들을 다루는 데 예수 어록을 십분 이용하고 있다.
루가 복음만이 지니고 있는 특수 자료는 복음서 전체 내용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 자료는 통일된 하나의 문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구전 전승과 기록 전승에서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루가 복음 안에서 이 특수 자료는 긍정적인 내용으로 예수의 말씀과 행동을 통하여 먼저 이스라엘에게, 다음에 이방인들에게 구원과 속량이 주어진다는 내용과,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희생 · 봉헌 · 자선 · 항구함 · 마땅한 준비 등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정적인 내용으로는 이스라엘, 특히 바리사이들과 예루살렘에 대한 단죄를 들 수 있다. 또한 이 특수 자료는 사마리아인들에 대해서 우호적인 선언과 적대적인 선언을 동시에 싣고 있다. 루가 복음 안에서 이 자료는 가끔 예수 어록이 강조하는 주제를 함께 강조하기도 하고 서로 혼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루가가 이용한 사료들에 대한 이상의 고찰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은 루가 복음이 마르코 복음, 예수 어록, 특수 자료의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다양한 기록 전승과 구전 전승에 바탕을 두고 있고, 이러한 내용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전승들을 감지할 수 있다.
편 집 : 루가 복음의 저자는 사도 행전에까지 이어지는 신학적 구성 안에서, 그리고 자신의 신앙 체험과 자신이 속한 신앙 공동체의 특수한 상황들을 충분히 반영시키면서 사료들을 정리하고 변형시켰으며 임의로 덧붙이거나 삭제하였고, 때로는 사료의 순서를 바꿔 편집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편집 활동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마르코 복음을 위시해서 다른 복음서들의 형성 과정 안에서도 마땅히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집 활동의 외적 배경이 된 루가의 문학적인 소양과 기법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약성서의 저자들 가운데 루가만큼 당대의 그리스-로마 역사가들의 문학적 기법에 밝은 저자도 드물다. 우선 루가 복음의 어휘가 다른 공관 복음서들에 비해 훨씬 풍부하고, 입수된 사료들을 다루어 나가는 루가의 탁월한 재능이 돋보인다. 이런 루가의 문학적 수완은 특히 마르코 복음을 이용하는 대목에서 그 진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그가 좋아하거나 피하려는 어휘와 표현들을 다른 공관 복음서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루가가 자신의 사료들을 다룰 때 일관성 있는 수정 작업을 한 것 같지는 않다. 한 대목 안에서 첫 번째 수정한 어휘나 표현을 두 번째에서는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어떤 이야기의 도입과 결론 부분은 손질을 하면서도 이야기 자체나 예수의 말씀은 수정을 거의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복합적인 문학 수법은 루가의 저작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세 가지 요인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첫째, 루가는 당시에 통용되던 그리스어, 곧 로마 제국 전체에 일상 용어로 사용되던 코이네(κοινὴ)를 다른 복음서 저자들보다 더 자유롭게 구사하였다. 코이네는 기적 사화, 논쟁 담화나 예수의 비유들에 특히 잘 드러나있다. 하지만 복음서 저자들이 사용한 코이네는 일반적으로 아라메아어와 그리스어를 함께 사용하던 팔레스티나의 성서 문화적 전통에 강한 영향을 받아서 셈족어의 문법과 관용구를 모방하는 변칙적 그리스어 표현들이 많다. 예를 들면, 접속사 없이 여러 문장을 늘어놓는 방법, 문장의 첫머리에 동사를 놓는 것, 대명사의 빈번한 사용, '대답하여 말했다' 와 같은 불필요한 동사의 중복 사용, '얼굴 앞에서' 와 같은 셈족어 관용구 등이 이에 속한다. 루가는 마르코 복음뿐만 아니라 다른 사료들을 이용하는데 있어서도 이런 셈족어의 영향을 받은 코이네를 사용하고 있다.
둘째, 루가는 70인역의 내용과 표현을 여러 곳에서 받아들인다. 이 번역본은 원래 히브리어의 문법과 관용구에 영향을 받아 나름대로의 독특한 형태의 그리스어를 만들어 냈고, 동시에 문헌상으로든 구전상으로든 유대적 그리스어의 원천이 되었다. 따라서 루가 복음에 사용된, 셈족어의 특징을 지닌 코이네의 표현들은 사실 70인역의 표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70인역 가운데 루가의 문체를 가장 닮은 책은 마카베오 후서이다.
셋째, 루가는 그리스-로마 문화가 배출한 그리스 저술가들과 손색 없이 비견될 수 있다. 그가 자신의 저서에서 채택한 고전 그리스어의 비율은 당대의 저자들이 채택한 비율과 거의 같다(고풍스러운 그리스어의 구사는 당시 저술가들의 문학적 유행과 멋이었다). 루가는 고정된 사료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던 사도 행전 후반부에서 더욱 유창하고 아름다운 그리스어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두 동사를 함께 붙여 놓기보다 분사와 동사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방법, 속격의 분사 구문을 사용하여 갖가지 종속문을 대신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또한 설화 중간에 연설을 삽입시켜 작중 인물의 입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는 고도의 문학적 기교는 그리스-로마 역사 저자들이 즐겨 쓰던 수법인데, 사도 행전의 설교들 안에 이런 문학적 기법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 세 가지 요인들 이외에도 루가의 중복 묘사( '마르타, 마르타!, '사울, 사울!' , '능력과 권위' )와 사건의 재기록(예수 승천기와 바오로의 회심 이야기와 고르넬리오 사건의 반복) 및 병행 기법(요한과 예수의 탄생 설화, 길 잃은 양과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 예수와 바오로의 예루살렘 여행) 등은 루가 복음과 사도 행전의 편집을 특징짓는 요소들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제반 요소들이 함께 어울려 두 책의 언어와 문체는 매우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우리 손에 완성된 것으로 들어온 루가의 저서는 인상파의 작품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또렷한 작품이 가까이에서 보면 흐릿하고 혼합적인 인상파의 작품처럼, 루가의 저서에 나타난 언어와 표현들도 전체적으로 보면 단순하고 일관되어 보이나 좀더 비판적인 눈으로 분석해 보면 수많은 언어학적 요소와 문학적 기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Ⅴ . 신학적 구도와 전망
공관 복음의 저자들이 모두 구원의 역사를 인류 역사와 결부시켜 설명하지만, 그들 중에서 루가는 독특한 방법의 구세사관을 전개시킨다. 루가의 구세사관을 다른 신약성서 저자들의 견해와 동일시하여, 약속과 성취의 두 가지 단계로 나누어 고찰하는 관점도 있다. 그러나 루가 복음과 사도 행전의 치밀한 구도가 제시하는 바로는 세 가지 단계, 곧 구원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시대, 약속의 성취 시대인 예수 시대, 그리고 성취의 결실을 세상에 전파하는 교회 시대가 저자의 세심한 주의와 배려 속에서 철저하게 구분되어 제시되고 있다. 루가는 이를 위해 장소와 시간의 표지들을 자신의 두 저서 곳곳에 적절히 배치시키고 있다.
이 3단계의 구세사관은 루가 복음과 사도 행전의 구도와 전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이 구세사관을 루가가 피력하게 된 근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학자들은 기대되었던 주의 재림이 연기되고 세속사 안에 교회가 그 현존을 지속시켜야 할 상황에서 루가의 공동체가 불안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루가가 이런 3단계 구세사관을 피력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루가가 강조하는 바로는 주의 재림은 예고 없이 별안간 오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필요한 단계를 반드시 밟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곧 먼저 교회의 활동을 통해서 복음이 이방인들의 땅 구석구석까지 전파되고 난 후에야 올 것이기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주의 재림이 늦어진다고 걱정하지 말고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두 저서의 내용을 살펴볼 때 그리 설득력 있는 가설은 아닌 것 같다. 루가 복음과 사도 행전이 쓰여졌을 초세기 말엽에는 예수의 재림 문제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본다. 그 문제란 이방인들의 대거 영입으로 인한 교회 내의 갈등이었는데 사도 행전이 이를 충분히 증언하고 있다. 특히 이 문제는 루가의 공동체와 같이 대부분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들 안에서 더욱 중대한 쟁점으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일부 수구파(守舊派)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 유대교에 개종하지 않고 직접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 이에 대하여 루가는 유대교의 율법에 구속되지 않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교에 입문하는 것은 하느님의 정해진 3단계 구원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보았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들을 통하여 구원의 약속을 이스라엘에게 주고(1단계), 때가 찼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선포하는 한편, 바로 이분을 만민의 주(主)로 삼았으며(2단계), 이제 그분을 믿는 모든 민족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었다(3단계).
루가는 이 3단계 구세사관을 전개시키는 데 있어서 역사가와 신학자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다. 그는 우선 자신이 엮어 나가려는 예수와 원시 교회의 이야기를 중단 없이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갖가지 전승들을 입수한 후 신중하게 취사 선택하고 순서적으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나서 3단계 구세사관을 바탕으로 복음서와 사도 행전의 전체적인 구도를 마련하였다.
구세사의 첫 단계는 하느님의 구원이 약속된 이스라엘 시대인데 이는 구약성서가 잘 증언하고 있다. 루가 복음의 유년 설화(루가 1, 5-2, 52)는 이 이스라엘 시대와 구세사의 둘째 단계요, 정점을 이루는 예수 시대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특히 유년 설화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 즈가리야의 노래, 시므온의 노래는 이 두 시대를 연결시키려 한 루가의 신학적 의도를 가장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
예수의 탄생과 더불어 성취의 시대가 예고되었으나, 구원의 직접적인 표지는 예수의 공적인 활동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구세사의 두 번째 단계인 예수 시대는 예수의 길을 준비시킨 세례자 요한의 출현(3, 1)으로부터 시작되어 예수 승천(24, 51)으로 끝을 맺는다. 루가는 특히 요한과 예수의 공적 활동이 시작되는 연대를 로마 역사와 직접 연결시키면서 "티베리오 황제의 치세 십오 년" (3, 1)이라고 장중하게 밝힘으로써 이 사건이 세계사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중대한 사건임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예수 승천에 관한 기록 다음에 나오는 루가 복음서의 마지막 두 절(24, 52-53)은 두 번째 책 사도 행전의 첫 부분(사도 1장)과 더불어 예수 시대와 교회 시대를 자연스럽게 이어 주는 연결 부분이다.
구세사의 세 번째 단계는 성령 강림을 신호로 장엄하게 개막된다(사도 2, 1-4). 이렇게 시작된 예루살렘의 모(母)교회는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를 중심으로 하는 사도들과 그 협력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유대와 갈릴래아, 그리고 사마리아 온 지역을 거쳐(사도 9, 31) 이방인의 지역에까지 확장된다. 교회 시대를 다룬 사도 행전의 마지막은 사도 바오로가 로마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파한 것으로 끝난다. 정치적으로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 복음의 소식이 전해졌으니, 이제 교회가 기다릴 것이라고는 그리스도가 와서 하늘과 땅을 완성시킬 마지막 때, 곧 예수재림(παρουσία)뿐이다.
이상의 3단계 구세사관에서 둘째 단계인 예수의 생애와 선교 활동을 통한 구원 사업의 완성은 루가 복음 안에서 다시 삼분된다. 갈릴래아를 중심으로 제자들을 모으는 과정(루가 4, 1-9, 50),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 중에 제자들을 교육시키는 과정(9, 51-19, 2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구원 사업을 완성시키는 과정(19, 28-24, 51)이 바로 그것이다. 루가는 예수의 활동 영역을 철저하게 유대 안으로 한정시킨다. 그것은 갈릴래아를 출발점으로 해서 예루살렘에서 끝나게 되어 있는 일회적인 여정이다. 예수의 최우선적 사명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구원의 확고한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예수는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를 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한 선교는 교회에서 맡아 할 것이다. 그리고 루가는 교회에 의한 선교를 사도 행전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이 구세사관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하느님 중심 사상이다. 율법과 예언들을 통하여 구원을 약속한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적 삶 안에서 주도적 입장을 취하고 제자들의 활동과 초대 교회의 확장 과정에도 깊이 개입해 들어온다. 그러나 하느님이 당신 자신의 계획을 어느 누구의 방해도 허락하지 않고 실현시켜 나간다고 해서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분으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루가의 의도는 단지 인간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열망과 선의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구원 계획이 인간의 역사 안에서 진행되는 동안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인간이면 누구나 인종적 차이에 관계없이 하느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만일 그가 하느님께서 만민의 주로 삼아 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면 구원의 확실한 표지인 죄 사함을 얻게 될 것이다.
이 구원의 보편주의는 실로 루가 복음과 사도 행전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신학적 전망이다. 루가는 하느님께서 초세기 전반의 팔레스티나라는 인간 역사의 한 현장에서 인종과 관습에 구애됨이 없이 고통과 소외로 가난해진 모든 이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의 복음 즉 구원을 선포하였고, 이 구원의 소식은 교회를 통하여 지중해 연안의 모든 민족과 지역에 퍼져 나가 급기야는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 공관 복음서 ; 사도 행전 ; 《예수 어록》)
※ 참고문헌 H. Conzelmann, Die Mitte der Zeit. Studien zur Theologie des Lukas, Tübingen, 4th ed., 1964/ J. Ernst, Das Evangelium nach Lukas. Übersetzt und erklärt, Regensburg, 1977/ C.F. Evans, Saint Luke, London, 1990/ J.A. Fitzmyer,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1, Garden City, New York, Double day, 1981/ J. Jeremias, Die Sprache des Lukasevangeliums. Redaktion und Tradition im Nicht-Markusstoff des dritten Evangeliums, Göttingen, 1980/ I.H. Marshall, The Gospel ofvLuke.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Exeter, Paternoster Press, 1978/ 一, Luke : Historian and Theologiam, Exeter, 1970/ F. Neirynck ed., L'Evangile de Luc. Problèmes litteraires et théologiques, Gembloux, 1973/ G. Schneider, Das Evangelium nach Lukas, Ⅰ~Ⅱ, Wiirzburg, 1977/ -, Lukas, Theologe der Heilsgeschi-chte. Aufsäitze zum lukcanischen Doppelwerk, Bonn, 1985/E. Schweizer, Das Evangelium nach Lukas, Göttingen, 1982/ 정태현, 《모든 이에게 평화의 복음을 : 루가 복음과 사도 행전의 신학적 주제 연구》, 성서와 함께, 1991/ 정 양모 역주, 《루가 복음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분도출판사, 1983. 〔丁太鉉〕
루가의 복음서 - 福音書 〔그〕Κατὰ Λουκᾶν 〔라〕Evangelium secundum Lucam 〔영〕Gospel according to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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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 복음 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