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갈다 Lutgarda(1182~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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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갈다 성녀.

루갈다 성녀.

성녀. 시토회 신비가. 축일은 6월 16일. 1182년 벨기에 통그르(Tongres)의 부유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성장한 루갈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 귀족 청년과 혼인하기로 하였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게 되자 파혼당하였다. 이에 루갈다는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불가능함을 깨닫고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1194년 생 트롱(Saint Trond)의 베네딕도 수도원에 입회했다. 1200년경에 서원을 하고, 1205년에는 수도원 원장이 되었으나 수도원 규율이 너무 느슨하다고 생각하여, 1208년 에비에르(Aywiè-res)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으로 적(籍)을 옮겼다. 그곳에서 오직 빵과 물로만 지내며 극기 생활을 하던 루갈다는 당시 기승을 부리던 알비파 이단을 위한 보속으로 7년 동안 3번이나 대재(大齋)를 지켰다. 특히 기도에 열중하였는데, 루갈다의 기도는 신비롭게 이루어지는 일이 많았다. 그중의 한 예가, 동정심이 없던 한 수도원 원장이 죽자 루갈다는 그가 천국에 들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그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였는데 어느 날 수도원장이 나타나 기도 덕분으로 연옥의 고통을 크게 덜게 되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라진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는 당신의 심장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자주 루갈다 성녀에게 발현하였는데, 예수의 수난은 성녀의 수도 생활의 핵심이었다. 루갈다 성녀는 29세 때에 창에 찔린 상처를 받았고, 죽을 때까지 그 상처를 지니고 살았으며 자주 피땀을 흘리는 체험을 했다. 더욱이 1235년부터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죄를 위한 대속(代贖)이라는 개념은 그녀의 영성 안에서 더욱더 승화되어 갔다.
이렇듯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기꺼이 고통을 참아 받은 루갈다 성녀는 자신이 죽을 날을 예언하였는데, 브뤼셀 근처의 에이비에르에서 1246년 6월 16일 바로 예언한 그날, 64세로 선종하였다. 루갈다 성녀의 일생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가치관에 큰 징표를 남겨 주고 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받음을 기뻐하며 내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 수난의 부족한 것을 마저 채웁니다" (골로 1, 24) .

※ 참고문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 5,가톨릭출판사, 1987/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J. Verbillion, 《NCE》 8, p. 1085.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