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영〕Socialist Republic of Ru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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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경에 세워진 몰다비아의 슈체비차 수도원.

15세기경에 세워진 몰다비아의 슈체비차 수도원.

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의 북동쪽에 위치한 나라. 정식 명칭은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루마니아어로는 로마인들이 사는 땅이라는 의미의 '로마니아' (România)이다. 면적 237,500k㎡, 인구 약 2,269만 3천 명(1995) . 남동쪽과 북쪽은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남쪽은 불가리아, 서쪽은 유고슬라비아와 헝가리, 동쪽은 북해와 접경하고 있으며 수도는 부쿠레슈티(Bucuresti)이다. 종교는 총 인구의 86.8%를 차지하는 루마니아 정교회를 비롯하여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이슬람교, 유대교 등이며 언어는 루마니아어와 헝가리어이다.
루마니아인은 기원전부터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살고있던 다치아(Dacia, 루마니아의 옛 지명)인과 2세기 초 로마의 트라야누스(Trajanus, 98~117) 황제에 의해 정복된 뒤 이탈리아로부터 이주해 온 로마인과의 혼혈로 이루어졌다. 고대의 다치아는 약 1세기 반 동안 로마의 속주로 있다가 8세기 때는 불가리아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13세기에 헝가리가 트란실바니아를 정복하면서 다뉴브 강과 몰다비아와 왈라키아 쪽으로 쫓겨나 몰다비아 공국과 왈라키아 공국을 세우고 문화와 경제 발전을 이루어 갔다. 그러나 16세기에 트란실바니아가, 17세기 말에는 몰다비아와 왈라키아가 터키에 의해 정복당하였으며, 1848~1849년 터키로부터의 독립 · 농노 해방 · 의회 제도의 창설 등을 요구하는 혁명을 일으켰으나, 러시아의 무력 간섭으로 실패하였다. 그 후 몰다비아와 왈라키 아는 크림 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파리 조약(1856)에 의해 러시아로부터 해방되었다. 1859년에 두 공국이 통합되어 쿠자(Alexandru Ioan Cusa)를 군주로 선출하여 부쿠레슈티를 수도로 하는 사실상의 루마니아를 건국하였다. 루마니아는 러시아-터키 전쟁이 끝난 뒤 베를린 조약(1878)을 통해 국제적인 승인을 얻었다. 그러나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착취에 시달리던 루마니아의 농민들은 1907년에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으나 군대의 투입으로 간신히 진압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헝가리로부터 트란실바니아를, 불가리아로부터 도브루야를 되찾았다. 19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파시즘 운동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여 1940년에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섰으나, 1944년 8월 러시아가 루마니아를 침략함으로써 파시스트 정권은 무너지고 공산화되었다. 루마니아 노동당은 1947년 12월 루마니아 왕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군주제를 폐지한 후 인민 공화국(Rumanian People'sRepublic)을 수립하였다. 1965년에는 러시아의 노선과 다른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펴기 시작하였고 노동당을 공산당으로 개칭하였으며, 새 헌법이 제정되고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독재 정권 아래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국민들은, 1989년 12월 16일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교체하고 헌법을 개정하는 등 서서히 민주화를 도모하고 있다.
처음에는 서방 전례 의식을 따르는 그리스도교가 정착되었으나 8세기의 불가리아 통치 때 동방 전례가 확산되었으며, 중세기 동안에는 서방 전례를 루마니아에 재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3세기부터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가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밀코비아(Milcovia, 1228), 세베린(Severin, 1369), 세레트(Sereth, 1371), 아르제스(Arges, 1380), 치비타스 몰다비엔시스(Civitas Molda-viensis, 1420), 바카우(Bacau, 1611) 주교좌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 주교좌들은 외국인들을 위해 설립된 것이었기 때문에 존속 기간도 짧고 몇 군데는 주교들이 거주할 수 도 없어 주교좌의 설치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7세기에는 몰다비아에 거주하는 소수의 서방 가톨릭 신자들이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에 위탁되었고, 왈라키아의 가톨릭 신자들은 예수 고난회에 위탁되었다. 그러다가 1792년부터 부쿠레슈티에 주교가 거주하게 되었고, 1883년에는 왈라키아와 도브루야를 관할하는 부쿠레슈티 대교구와 몰다비아를 관할하는 야시(Jassy) 교구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트란실바니아에서는 서방 전례의 가톨릭이 보다 굳건히 뿌리를 내려 1103년에 알바 율리아에 트란실바니아 교구가 설립되었다. 16세기에 트란실바니아는 터키의 예속 공국이었는데, 이때 트란실바니아의 대다수 가톨릭 신자들은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였다.
1558년에는 가톨릭 주교가 추방되기도 했지만, 1716년에 그의 계승자가 되돌아올 수 있었다. 1927년의 루마니아 종교 협약과 1930년 6월 5일의 교황 교서 〈솔렘니 콘벤시오네>(Solemni Conventione)에 의해 교계 제도가 재조직되어 부쿠레슈티는 대주교좌가 되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1948년 7월 17일에 종교 협약이 철폐되고 교구가 두 개로 축소되었으며 1949년에는 수도원이 억압을 받았다. 급기야 1951년에는 서방 주교들 중 6분의 5가 정부로부터 연금되었고 나머지는 18년의 감옥형을 받았으며, 수많은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체포되었다. 1964년 여름,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에 약간의 개선의 변화가 있었으나 제한은 여전하였다. 1965년경에 서방 전례 의식을 거행하고 주교를 둔 유일한 교구는 트란실바니아 교구뿐이었는데, 이때 본당 활동을 한 사제수는 약 1,200명에 이른다. 1990년의 정권 교체와 더불어 조건이 개선되어 교계는 회복되었으며, 바티칸과의 외교 관계도 재정립되었다. 1993년 현재 총 인구의 14.1%인 328만 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으며 대교구 3, 교구 8, 본당 1,171개에, 추기경 1, 대주교 3, 주교 10, 사제 1,297(교구 소속 1,177, 수도회 소속 120), 신학생 569, 수사 70, 수녀 791명이 있다.
※ 참고문헌  M. Lacko, 《NCE》 12, pp. 714~715/ V. Vivier, 《EU》 20, p. 293/ 《EU》 Les chiffres du Monde 1994, p. 4241 Petit Robert Dictionnaire Universel Des Noms Propres 2, 1988/ 199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 의회, 1994/《동아 원색 대백과 사전》 10, 동아출판사, 1983. 〔梁惠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