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 페터 파울 Rubens, Peter Paul(1577~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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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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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자화상).

플랑드르(Flandre)의 화가. 북유럽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플랑드르 제1의 화가로 1577년 6월 28일 독일 베스트팔렌의 작은 도시 지겐(Siegen)에서 태어났다. 프로테스탄트 신자였던 아버지가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 지겐에 체류할 때 그곳에서 태어난 루벤스는, 아버지가 사망하자 1587년에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고향 안트베르펜(Antwerpen)으로 돌아왔다. 비록 독일에서 칼뱅교도로 세례를 받은 적이 있었으나 이곳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된 루벤스는, 안트베르펜에서 미술 지도를 받았던 오토 반 벤(Otto van Veen)의 영향으로 1600년 이탈리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1608년까지 8년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자신의 회화 양식을 구축해 나갔는데, 주로 활약하였던 곳은 제노바와 로마였다. 로마에서는 고대 조각과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과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웅장한 회화 양식의 기초를 확립하였고, 제노바에서는 그가 그린 몇 점의 위엄 있는 초상화가 그곳에서 작업했던 반 다이크(vanDyck)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1608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안트베르펜으로 출발하였으나, 가는 도중 어머니가 사망하고 말았다. 어머니를 만나 본 후에 그의 정신적인 고향 이탈리아로 되돌아가려 하였던 루벤스는, 안트베르펜에서의 활동이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 후 다시는 이탈리아를 못 보게 되었다. 1609년 네덜란드의 스페인 총독으로부터 궁정 화가로서의 임무를 위임 받음으로써 지방세나 길드의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안트베르펜에 작업장을 차릴 수 있는 허가를 받게 된 루벤스는, 외교 사절로 스페인, 영국, 프랑스의 왕실을 출입하면서 작품을 의뢰받게 되었다. 그는 안트베르펜에 정착하여 있는 동안 이탈리아에서 배워 온 전성기 르네상스나 바로크 예술과 플랑드르의 전통을 융합하여 북유럽 바로크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로 활약하였는데, 특히 1백년 전에 남유럽과 북유럽 사이의 예술적 장벽을 허물고자 하였던 뒤러(A. Dürer)의 시도를 완성시켰다고 평가된다.
그가 안트베르펜에서 제작한 최초의 거대한 제단화<십자가에 올림>(Erection of the Cross, 1610~1611)은 이탈리아 예술에서 받은 영향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인물들의 육체적인 힘과 격정적인 감정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연상시키고 극적인 빛의 사용은 카라바지오(M. Caravaggio)의 작품을 상기시키는 이 제단화는, 규모나 구상에 있어서 이전 북유럽의 어느 작품보다 웅장하나 세심하게 처리된 세부 묘사에 있어서는 플랑드르의 사실주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을 자율적이고 완벽한 거장다운 조형력으로 결합하여 놀랄 만큼의 극적인 힘에 찬 구도를 형성하였다. 또 불안하게 동요하는 인물들로 이루어진 불안정한 피라미드는 바로크 특유의 방식인데 액자의 한정된 틀을 박차고 나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장면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제단화 <십자가에서 내림>(Descent from the Cross)은 1611년부터 그리기 시작했는데 매우 인상적인 특징을 띠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은 커다란 빛에 둘러싸여 주변의 어둠과 대조를 이루며, 강렬하면서도 무거운 색조로 그려진 인물들의 후광이 특히 돋보인다. 이렇게 대조되는 색의 강렬함은 새롭고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표현을 만들도록 빛의 강도와 결합되었다. 작품 의뢰가 쇄도하였지만 그 엄청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매우 효율적으로 경영했던 작업장 조수들의 도움 때문이었다. 반 다이크 같은 이미 자리잡은 작가들과 공동으로 작업하기도 하였던 루벤스는, 대체로 그가 처음에 캔버스 위에 스케치를 하고 제자들이 중간 과정의 대부분을 그린 그림의 끝마무리를 완성하였다. 루벤스의 개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그의 스케치나 드로잉이 현대에 와서 완성된 대작보다 더 선호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로크 회화의 집대성이라는 평가를 받는 <마리 드 메디치의 일대기>(Vie de Marie de Médicis)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을 비롯하여 종교화, 초상화, 수렵화, 풍경화, 그리고 태피스트리(tapestry)와 판화 밑그림 등 다채로우면서도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던 루벤스는, "타고난 재능으로 나는 어떠한 규모의 혹은 어떠한 주제의 작품이라도 주저하지 않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고 서술하였다고 한다. 1620년대의 10년 동안은 성당이나 궁정을 장식하는 대작에 몰두하여 그 절정을 이루는데, 그중의 대표작이 프랑스 루이 13세의 모후인 마리 드 메디치의 일생을 그린 25편의 거대한 연작이다. 연작 중 <마르세이유 상륙>( (1622~1623)은 흥미를 유발시키는 주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루벤스의 손에서 유례가 없는 장려한 광경으로 변화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모든 것이, 즉 하늘과 땅, 역사와 알레고리(allegory) 심지어는 드로잉과 채색까지도 소용돌이치는 움직임 안에 함께 흘러가는 듯하다. 그는 이
전 작가들과는 달리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빛과 색채를 가지고 구상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특히 베네치아파 작가들이 시작하였으나 결코 완성하지 못했던 통일된 시각이 루벤스에 의해 성취되었는데, 이것이 그가 후대에 남긴 귀중한 유산이 되었다. 1630년경부터 루벤스의 작품은 베네치아파의 대표적 화가인 티지아노(Tiziano)의 영향을 받아 서정적 부드러움을 보이는 후기의 양식으로 변해 갔다.
1640년 5월 30일 안트베르펜에서 사망한 루벤스가 17세기의 플랑드르 회화에 미친 영향은 압도적이었고, 그 후 프랑스의 와토(J.A. Watteau) 들라크루아(F.VE. Delacroix) , 르누아르(P.A. Renoir) 등의 작가들이 그의 작품에 경탄하였을 정도로 영향력도 지대하였다. 다른 작품 경향을 가진 후대의 세 작가들을 매료시켰던 것은 다름아닌 루벤스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다양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H.W. Janson, History of Art, Harry N. Abrams, 3rd ed., 1986, pp. 522~523/ -, A Basic History ofArt, New York Harry N. Abrams, 1971(이일 편역, 《서양 미술사》, 미진사, 1987)/ -, History of Art, New York : Harry N. Abrams, 2nd ed., 1977(김윤수 외 역, 《미술의 역사》, 삼성출판사, 1987)/ 《세계 미술 대사전 : 서양 미술사 Ⅰ》, 한국미술연감사, 1985/ Oxford Encyclopedia of Art, pp. 437~438. 〔鄭泳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