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헨리코. 한국명은 황혜중(黃惠中). 1876년 6월 29일 프랑스의생 프레제에서 태어나 신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그는, 1896년 10월 6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1900년 6월 24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 곧바로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그 해 8월 1일에 파리를 떠나 10월 9일 한국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몇 주일 만에 송도(松都) 지역에 파견되어 그곳에서 한국어와 풍습을 익혔다.
1901년 경기도 개성(開城) 본당의 초대 주임 신부로 임명되어 경기도 내의 여러 지역과 황해도 연백(延白)등지를 맡아 약 10년 동안 전교하였으며, 1909년에는 공주(公州, 현 중동) 본당으로 전임되어 충청도 일대의 전교를 담당하였다. 이 무렵 루블레 신부는 매우 적극적으로 전교하였는데, 특히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신자들을 위해 항상 속죄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사목하였다. 그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건강이 매우 좋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군 복무를 위해 본국 프랑
스로 돌아갔다가 전쟁이 끝난 뒤인 1919년에 재입국하였다.
1921년에 나바위 본당의 논산(論山) 공소가 논산(현부창동) 본당으로 승격 · 독립되자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1923년에 현재의 성당 위치인 부창동에 대지를 매입하고,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였으며 16개의 공소를 방문하고 청년회를 조직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때문에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1923년에 요양차 서울로 올라갔다가 얼마 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철학 '교수로 전임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병이 전혀 호전되지 않자 1924년에 조용하고 한적한 대전 본당의 2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다. 1927년에는 이전의 목동 성당이 늘어나는 신자들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현재의 대흥동 성당을 준공 · 낙성하였다.
그 이후로 루블레 신부는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 병의 치료를 위해 상해로 떠났으나, 그곳에서도 회복되지 않자 급히 본국으로 귀국하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그의 기운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에 입국하여 20여 년 동안 매우 열심히 전교한 루블레 신부는 1928년 6월 10일 그의 고향에서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경향잡지》 642호(1928. 7. 31)/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附錄, 가톨릭출판사, 1984. 〔李裕林〕
루블레, 앙리 필리프 Rouvelet, Henri Philippe(1876~1928)
글자 크기
4권

루블레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