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료프, 안드레이 Rublёv, Andreǐ(1360/1370~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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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 일체> (안드레이 루블료프 작) .

<삼위 일체> (안드레이 루블료프 작) .

러시아의 이콘(icon) 화가. 수도자. 후기 고딕과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뛰어난 러시아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그의 출생 날짜, 장소, 가문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성(性)이 루블료프인 것으로 보아 그의 가문이 상류 지식층 출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루블료프는 몽고의 타타르족이 러시아를 침공하여 식민지(1240~ 1480)로 삼았던 시기에 자랐기에 유년기부터 나라와 민족의 고통을 체험하면서 살았다. 연대기 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1380년 타타르족의 굴레에서 해방의 시발점이 되었던 쿨리코보(Kulikovo)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 루블료프도 참전하였거나 아니면 그 스스로 그 전투를 목격하였던 증인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2년 후 모스크바는 토크타미쉬에 의해서 폐허가 되었는데, 아마도 이러한 고통의 사건들과 그에 따른 다른 요인들이 그를 수도자의 삶을 살도록 하였을 것이다. 당시 많은 러시아인들이 발칸 반도, 아토스 성산(聖山), 콘스탄티 노플을 방문하였듯이 청년 루블료프도 비잔틴 세계를 방문하였으며 불가리아에서 공부하고 작업을 하였다. 특별히 그의 이콘에는 성장기의 이러한 고통의 경험이 바탕에 깔려 있다. 최근 역사 연구에 의하면 당시 자고르스크(Zagorsk)의 성 세르게이 삼위 일체 수도원과 모스크바의 구세주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은 서로 긴밀한 왕래가 있었던 형제 수도원이었는데, 라도네즈의 성 세르게이(St. SergiusofRadonezh, 1314~1392)의 제자인 루블료프는 모스크바 구세주의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의 수도자로 있으면서 그곳에서 서원하였다고 한다. 성 세르게이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방문하며 이콘 작품 활동을 한 그는, 영적으로는 세르게이의 영향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는 그리스의 이콘 화가 테오파네스(Theo-panes)의 영향으로 영성과 함께 그의 예술성이 뛰어나게 드러났다. 1430년 1월 29일 모스크바 구세주의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에서 사망하였다. 러시아에서 최고의 위대한 예술가로 여겨지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그 공로가 인정되어 러시아가 988년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지 1천 년을 기념하는 1988년 러시아 정교회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영성과 이론〕 루블료프의 대표적인 이콘 작품인 <구약의 삼위 일체>는 당시 타타르족의 침략으로 인한 러시아의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려는 민족 신앙적 돌파구로서 삼위 일체 이론을 형상화하였다고 전해진다. 삼위 일체 이콘을 그리도록 그에게 영감을 준 영적인 인물은 자고르스크의 삼위 일체 수도원을 창설하였으며, 러시아 수도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라도네즈의 세르게이였는데, 그의 삶은 루블료프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루블료프는 세르게이의 후계자 니콘(St. Nikon)에게서 영성 지도를 받았다. 동방 교회의 영성 안에서 볼 때 그의 모든 작품은 예리한 해시카즘(Hesychasm)을 바탕으로, 특히 세르게이의 영성적 유산을 이콘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루블료프의 뛰어난 예술적 탁월함은 14~15세기 동방 교회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심오한 영성적 시각과 연결되어 있다.
〔이콘 화법〕 14~15세기 러시아 이콘의 화법에 있어서 대표적인 인물은 그리스에서 러시아로 온 이콘 화가 테오파네스와 루블료프이다. 루블료프는 테오파네스의 제자로서, 자신의 영적인 눈으로 영성적인 아름다움을 고유한 화법으로 시도하는 스승의 예술적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영향과 함께 루블료프는 세르게이의 수도 공동체 안에서 많은 영성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루블료프가 수도자로서의 영적인 삶과 화가로서의 예술적 창조성을 현실적으로 보여 주는 힘이 되었다. 루블료프는 예술의 정신적 본질을 자연주의적 묘사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했던 비잔틴 전통에 따라 그림을 배웠으며 비잔틴 양식에 부드럽고 서정적인 정서를 결합시켰다. 또한 그의 작품은 고전 예술의 타고난 조화와 구성의 원리를 이용함으로써 부드럽고 여유 있는 선과 인상적인 색채의 강함과 그 배율의 조화가 특징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의 예술의 단순성은 이콘의 깊은 신학적 내용인 하느님의 인간과 세계를 위한 구원 경륜을 표현하고 있다. 루블료프는 17세기까지 러시아 이콘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 이후의 어떤 러시아 화가도 작품의 주제나 해석에 있어서 그보다 뛰어나지는 못하였다.
〔작품과 발전〕 14세기는 러시아 이콘의 황금 시기였다. 즉 이콘의 구성과 리듬 그리고 조화와 색채의 밝음, 그리고 신비 신학적 관상의 심오함 등 완벽함을 드러내는 색채로써 하느님과 창조물 사이의 화해로 그들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고통받는 인간을 향한 사랑과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신앙은 러시아 예술의 위대한 대작들이 탄생하도록 빛과 영감을 주었다. 그 당시에는 많은 화가들이 배출되었는데 그리스 화가 테오파네스와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그의 제자 디오니시오(140-1508), 그리고 고르테츠의 프로코로프(Prokhorof of Gorodets)와 다니엘 네로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테오파네스와 루블료프, 고로테츠의 프로코로프는 판넬 이콘을 넓은 판자에 틀과 줄을 맞추어 이콘들의 크기에 따라 배열하는 이코노스테시스(iconostasis)의 변형과 발전을 이루었는데, 1405년에 작업한 모스크바 크렘린 안에 있는 성모 영보 대성당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루블료프의 화풍을 분석하면 많은 이콘을 그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콘은 1408년 그의 제자이며 화가인 다닐 체르닐 수사와 함께 블라디미르 우스펜스키 대성당의 프레스코 작업 중, 그곳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작업한 <세례자 요한>, <성 바오로>, <성 베드로>와 <예수 승천> 이콘 등이다. 이외에 원래 즈베니고로트에 있다가 현재 국립 트레차코프스카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천사 미카엘>과 <구세주>의 이콘 등이 있다. 루블료프는 후에 두 명의 동료와 함께 모스크바의 스파초 안드로니코프 수도원에서 작업을 하였고, 자고르스크의 성 세르게이 삼위 일체 수도원에서도 작업하였다. 러시아 정교회는 이러한 그의 업적을 기려 1551년 모스크바 공의회 기간 동안 루블료프의 <구약의 삼위 일체>를 이콘 예술의 완벽한 표본이라 선언하였다.
※ 참고문헌  L. Ouspensky, 《NCE》 12, Pp. 697~698/ L. Ouspensky, Theology of the Icon, vol. 2, trans. by A. Gvthiel with selections trans. by E. Meyendoff, New York, 1992/ P.N. Evdokimov, L'art de I'icône, Théologie de la beauté, Paris, 19721 M. Quenot, The Icon : Window on the kingdom, trans. by A Carthusian Monk, New York, 1991/ M. Cheremeteff, The Transformation of the Russian Sanctuary Barrier and the Role of Theoph-anes the Greek, The Millennium : Christicmity and Russia (988~1788), New York, 1990/ N. Zernov, Il Cristianesimo orientale, trad. 0. Nicotra, Milano, 1990/ A. Joos, 곽승룡 역주, <러시아 동방 그리스도교 전승 안에서>, 《동방 영성의 고유한 가치들》, 1996/ 곽승룡, 《동방 영성과 이콘》, 만남출판사, 1996. 〔郭承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