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민주주의 이론가. 문필가. 교육학자. 토마스 홉스(T. Hobbes), 존 로크(J. Locke)와 함께 계몽주의 철학의 대표적 사상가. 1712년 6월 28일 스위스 제네바(Geneva)에서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자랐다. 정통 칼뱅주의자이자 시계방 주인이었던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웠는데, 이때 사용된 교재가 감상적인 소설과 플루타르크의 《영웅전》이라고 한다. 12세 때 학교를 그만두었으므로 정규 교육은 거의 받지 못하였고 생계를 위해 도제(徒弟)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주인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 16세 때 고향을 등지고 정처 없이 떠나는 신세가 되었는데, 이것이 그의 파란 많은 생애의 시작이었다. 이때 그가 만난 평생의 은인이 바로 귀족 부인 워렌(M. Warens)이었다. 부인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정서적 안정을 얻게 되고 가톨릭 신자가 된 루소는, 28세 때 잠시 가정 교사 생활을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그가 교육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743년 베네치아 주재 프랑스 대사의 비서로 약 1년 동안 일하였고, 1754년 제네바 방문 때 공화국 정부와 화해하여 형식적으로나마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였다. 1755년 《불평등 기원론》(Disours sur I'origine de I'inégalité parmi les hommes)을 출간한 뒤에도 파리에서 계속 빈곤하게 살다가, 1756년에 부유한 친구인 에피네 부인(Mme Épinay)의 소유였던 작은 시골집에 거처를 정하고 이 집을 '은둔자의 집' 이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신(新) 엘로이즈》(La nouvelle Héloïse) , 《에밀》(Émile) 《사회 계약론》(Du Contrat Social) 등을 집필 · 출간하였는데, 1762년 《에밀》의 출판으로 인하여 파리 대주교와 의회의 탄압을 받게 되자 프로이센 왕의 보호령인 노이샤텔(Neuchâtel)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편안히 지낼 수 없게 되자 영국 철학자 흄(D. Hume)의 초청을 받아 영국으로 갔지만, 얼마 안 있어 1770년에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파리 근교 에르메농빌(Ermenonville)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생활을 하다가 1778년 7월 2일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였다.
〔사 상〕 루소는 낭만주의 운동의 기수이며 반근대적 사상가이다. 낭만주의 운동은 공리주의적 이해 타산의 가치 기준 대신에 심미적 가치 기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는 곧 근대 문명과 가치 체계에 대한 부정이며 도전이기도 하다. 《에밀》은 교육과 도덕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사회 계약론》은 인간들 사이에 실현되어야 할 정치적 관계를, 《불평등 기원론》은 타락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과 타락한 사회적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그의 사회 사상은 자연법론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홉스나 로크처럼 사회 철학, 국가 및 법 철학을 원초적인 '자연 상태' 로부터 시작한다.
자연법론 : 그에 의하면, 자연 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재산이나 분쟁, 또는 도덕적 관계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가 말한 '자연 상태' 란 일찍이 혜시오도스(Hesiodos, 기원전 8세기경)가 이야기한 황금 시대 상태로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형제애로 충만한 이상(Utopia)적인 환경을 뜻한다. 루소는 이상적인 자연 상태의 표본을 라틴 아메리카의 원시림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 공동체에서 찾았다. 그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사회적 삶과는 동떨어진 외톨이의 삶을 산다고 주장하였다. 또 인간이 본성적으로 선하다는 루소의 명제는, 인간은 선뿐만 아니라 악을 향해서도 변화할 수 있는, 본성적으로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존재이지만 거의 무한하게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는 이 같은 능력을 '완전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 (perfectibilité)라고 부른다. 이런 가능성을 제쳐놓는다면 인간의 본질은 순수하게 동물적일 뿐이다. 자연은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게 자기 생명을 유지하려는 충동을 부여하였다. 이 자기 보존의 충동은 자연인(외톨이로서의 야만인과 사회화한 야만인)의 감정에서 '자기 사랑' (amour de soi)으로 나타난다. 루소에 의하면, '자기 사랑' 은 모든 동물로 하여금 자기 보존에 주력하게 하고, 특히 인간에게 있어서는 이성에 의해 인도되고 연민에 의해 변용되어 인간애와 미덕을 자아내게 한다. 이와는 달리 '이기적 사랑' (amour propre)은 상대적이고 인위적인 감정으로 자신을 어느 누구보다도 중히 여기고, 명예를 추구하게 하는 원천이 된다. '자기 사랑' 은 인간이 지닌 열정의 하나로서 모든 다른 열정의 원천이지만, '이기적 사랑' 은 자기 사랑이 부정적으로 변형된 것이다.
서유럽 근대 사회의 심각한 양상은 권력과 부의 차이에 의한 비자연적 불평등의 확장이다. 루소는 《불평등 기원론》에서 근대 사회에 이르러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의 행복을 잃고 비참하게 되었다고 결론짓는다. 다시 말하면, 농경(農耕)과 야금술(冶金術)로 인하여 사유 재산제가 생겨나 '내 것' 과 '남의 것' 이 구별되고, 부자와 가난한 자, 힘센 자와 약한 자로 나뉘게 되어 결국 사회 제도의 불평등이 법률과 정치 조직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영구적인 것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유자의 지배와 무소유자의 예속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Retournons à la nature)는 루소의 절규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연적 인간과 자연 상태를 의미 있고 올바른 실존 방식(자연적)이라고 보며, 시민적 인간과 사회 상태를 타락한 실존 방식 (인공적)으로 간주한다. 이와 같은 그의 기본 사상은 그의 교육 사상에서도 이어진다.
교육 사상 : 교육 사상을 담고 있는 저서 《에밀》에서 루소는 사회 생활의 나쁜 영향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자란 아동의 자연적 발달을 추적하고자 하였다. 루소는 교육의 궁극 목적은 사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며, 인간의 첫째 의무는 인간적으로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교육자는 인간의 참모습에서 벗어나는 '악덕과 오류' 가 밖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하므로 교육자의 으뜸가는 임무는 아동을 외부의 나쁜 영향에서 보호하는 것이고, 이것이 그가 《에밀》에서 시골 환경을 이상적인 교육 장소로 추천하게 된 이유이다. 아동은 이와 같은 환경에서 자신의 본성과 일치하여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루소는 교육을 자연 교육 · 사물 교육 · 인간 교육으로 나누고, 사물 교육과 인간 교육은 자연 교육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교육 원리는 다음과 같다. ① 교육은 성장이자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② 교육은 아동 중심이어야 한다. ③ 교육은 아동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④ 교육은 경험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⑤ 교육은 각 개인의 개성을 발전시켜야 한다. ⑥ 교육은 사회를 위하고, 사회와 관련을 맺어야 한다. 그는 교육의 진정한 진보는 아동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하는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교육의 목적은 바로 자연 자체이다.
이와 같이 루소의 자연법론은 그의 사상의 중심을 이룬다. 자유와 평등의 자연법은 루소 이론의 출발점이며 사회 형성을 위한 기초이다. 국가 공동체는 이러한 기본 사상을 통해서만 존재할 자격을 얻는다. 여기서 사회 계약은 사회화한 개인들의 권리가 만나는 점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권리는 사회 계약을 통하여 시민에게 보장된다. 그에 의하면, 개인의 자유는 사회 계약을 통하여 소외되거나 양도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자유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표현하고,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 이념 : 사회 계약의 체결 이후에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와 마찬가지로 국가 안에서 자유스럽고 평등하며, 이전에 결핍되었던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다. 국가 건립의 실제적이고 규범적인 기초는 각 개인이 자기 실존의 보장을 위해 국가를 필요로 한다는 유용성이다. 루소의 정치적 이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국민이 모든 합법적인 현세적 권위의 궁극적 원천이다. ② 정부는 단지 최상권을 가진 국민의 대리자이며 대표일 뿐이다. ③ 공동선이 건전한 입법과 행정의 규준(規準)이다. ④ 국가는 본질적으로 유기적인 것이지 단순한 메커니즘(mécanisme)은 아니다. ⑤ 정치적 의무의 진정한 기초는 합의이다. ⑥ 자유와 권위, 법률과 자유, 인간(개인)과 국가 사이에 반대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종 교 : 루소의 종교에 관한 안목은 특이하다. 그는 종교를 '인간의 종교, '시민의 종교, '사제의 종교'로 나누고 모든 종교는 국가의 법률에 매어 있다고 본다. 첫째 유형의 종교는 순수하고 단순한 복음의 종교이고, 둘째 유형의 종교는 조국과 수호신을 거룩하게 여기는 종교이며, 셋째 유형의 종교는 개인을 신자와 시민으로 분열시키는 것으로서 그 대표적인 예가 로마 가톨릭이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의 종교'가 최선의 종교이고, '사제의 종교'가 국가에 가장 위험한 종교이며, '시민의 종교'는 국가의 유지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였다.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서 국가의 유지를 위한 유용성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종교를 국가 유지의 목적으로 기능화시켰던 것이다. 그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중개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이 스스로 노력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의 육화(incarnation)와 원죄론(原罪論)을 부정하였다.
〔의의 및 평가〕 루소는 종교를 저승에 대한 순수한 신앙에 국한하면서 국가 유지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한 점에서 오류를 범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당시의 이성주의적 진보 신앙을 극복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계몽주의의 사고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는 사회 계약, 일반 의지, 국민 최상권의 이론을 통하여 민주주의의 이론적 근거 마련에 기여하였지만 전체주의로 빠질 여지를 남겨 놓았다. (→ 계몽주의)
※ 참고문헌 Willy Real, Görres-Gesellschaft ed., Staatslexikon 6, Freiburg i. Br. : Herder Verlag, 6th ed., 1961, pp. 977~981/ Ronald Grimsley, Paul Edwards ed., 7, New York : London, The Macmillan Company & The Free Press, Collier-Macmillan-Limited, 2nd ed., 1978, pp. 218~225/ John Charvet, The Social Problem in the Philosophy ofRousssau, Cambridge Univ. Press, 1974/ 金丁煥, 《敎育의 哲學과 課題》, 박영사, 1974/ 박종대, <루소의 자연법 사상에 관한 비판적 고찰>, 《哲學論集》, 漢陽大學校 哲學會, 1989, pp. 175~197. 〔朴鐘大〕
루소, 장 자크 Rousseau, Jean Jacques(1712~1778)
글자 크기
4권

장 자크 루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