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오, 조르주 앙리 Rouault, Georges Henri(1871~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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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오(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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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오(자화상).

20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 가톨릭 화가. 판화가. 도예가. 스테인드 글라스 제작자. "현대 성화가(聖畫家)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만 한 예술가가 있다면 그가 바로 루오이다" (Walter Nigg)라고 할 만큼 위대한 종교 화가인 루오는 1871년 5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외조부로부터 그림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성장하였다. 1885년 이르쉬(Hirsch)의 도제(徒弟)로 낮에는 스테인드 글라스 제작 공방에서 기술을 배웠고 밤에는 공예 미술 학교 (École des Arts Décoratis)를 다녔다. 1890년 국립 미술 학교인 에콜드 보자르의 화실(École des Beaux-Arts)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회화 공부를 하다가 스승 엘리 돌로네가 사망하자 마티스(Matisse), 마르케(Marquet) , 레망(Leh-mann), 망갱(Manguin)과 함께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의 문하생이 되었다. 1893년 스승 모로의 추천으로 관전(官展) 로마 대상전에 <연자매를 돌리는 삼손>을 출품하였고, 2년 후에는 <죽은 그리스도와 성녀들의 통곡>을 출품하였으나 시류를 초월한 그의 작품은 모두 낙선하였다. 이때부터 루오는 자신의 전생애를 걸고 투신했던 종교적 주제를 작품화하기 시작하였다.
1898년 스승 모로가 사망한 후, 1903년 모로 미술관 관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3월 가톨릭 소설가인 레옹 블루아(Léon Bloy)와 친교를 맺었는데,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창부(娼婦), 어릿광대, 풍경 등이 그의 회화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1907년에는 유명한 화상 블라르(Vollard)를 만나게 되었고, 1908년에 마르트 시다네 (Marthe Sidaner)와 결혼하여 4남매를 두었다. 1917년 블라르와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그 후 10년 동안 여러 책의 삽화를 그리기 시작한 루오는, 1927년에 그 유명한 58매의 석판화 연작 <미세레레>(Miserere)를 완성시켰다.
1929년 디아길레프 발레단의 <탕자> 공연에서 무대 장치와 의상을 담당하였으며, 그 후 세계 주요 도시에서 그의 초대전과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1947년에는 화상 블라르의 유산 상속자에 대한 작품반환 청구 소송에서 승소하여 800여 점의 미완성 작품을 회수하였는데, 그 가운데 315점을 불태워 버렸다. 이는 루오가 자기 작품에 대하여 얼마나 엄격하고 진실된 태도로 임하였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현대 미술사적 사건이었다. 1958년 2월 13일 87세를 일기로 사망하여 파리 생 제르맹 드 프레(St. Germain des Prés) 성당에서 국장(國葬)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작품 세계〕 루오를 가리켜 현대의 가장 위대한 종교 화가라고 하지만, 루오 자신은 직접적으로 종교적 주제를 구체화시켜 설명하지 않았으며, 그가 74세가 되던 해 아씨(Assy)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밑그림을 그린 것을 제외하면 교회와 직접적 거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회화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종교 화가로 꼽는 이유는 바로 그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깊은 종교적 메시지 때문이다.
20세기 전반기는 야수주의 · 입체주의 · 초현실주의 · 표현주의 등, 회화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대변혁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변혁기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현대 회화 세계의 고전적 거장들 틈에서도 그는 그 어느 미술 운동에도 초연하였고 어느 유파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면서 온갖 비난과 소외에도 견고히 자신의 특이한 모티프와 독자적 표현 양식을 고수하였다. 그는 신(神)의 죽음을 선포하던 20세기 말에 '신이 없는 인간의 비극'과 '신을 잃어버린 인간의 비참'이 어떤 것인지를 처절하고 격정적인 필치로 허무의 심연을 파헤치고 그 허구의 진상을 고발하였다.
그는 수채화 · 판화 · 유화 등 재료와 장르에 구별 없이 작품 속에 억눌리고 소외되고 잊혀진 변두리 인생의 창녀와 광대와 곡예사를 등장시켰으며, 세속의 온갖 부패와 부조리의 상징적 인물로 오만한 재판관과 부유층 부인들을 등장시켰다. 루오는 끝없는 애정과 동정으로 묘사한 소외된 사람들 가운데서 나자렛 예수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가련한 광대와 세상에 버려진 창녀 가운데 존재하는 그 적막함과 고독에 신의 침묵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상징화하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강렬하면서도 토속적인 친근함으로 설화적인 신비 속에 스며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의 풍경화에서는 당시 인상파의 외광(外光) 회화와는 달리 영혼의 눈으로만 감지되는 묵시록적 관조에 의한 내면적 풍경-루오 자신은 이를 '설화적 풍경' (Paysages légendaires)이라고 하였다-을 그려 내고 있다.
〔평 가〕 그의 작품을 두고 초자연적 빛의 작가 렘브란트(Rembrant)나 도미에(Daumier)의 영향을 이야기할 수 있으나, 그의 개인적 고백을 통해서 볼 때 그는 순수한 종교 미술 시대라 할 수 있는 로마네스크 시대에 더 가깝다. 이는 루오에게 내려진 천부적 은혜인 신앙심이 한 작가의 개성을 통해 불멸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그의 예술은 곧 그의 신앙 고백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그의 작품은 교리나 복음 내용을 직접적인 주제로 채택하여 설명한 것이 아니라, 복음적 메시지를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상징을 통해서 드러냄으로써 퇴색해 가는 종교 회화를 쇄신시키고 그 가능성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밝혀 준 위대한 그리스도교 화가라고 할 수 있다. 1951년 교황 비오 12세가 80이 된 그에게 그레고리오 대교황 훈장을 수여함으로써 고독했던 한 예언자적 예술가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이 지상에서의 작은 갚음을 대신하였다. (→ 가톨릭 미술, 세계의)
※ 참고문헌  Jacques Maritain, Georges Rouault, 1954/ G. Marchiori, Georges Rouault, Paris, 1965/ Dictionary ofModem Painting, Tudor Publishing/ Ernest H. Gombrich, Die Geschichte der Kunst, Belser Verlag, 1992/ Georges Rouault, Miserere(장익 역, 《미세레레》, 분도출판사, 1978)/ 임직순, 《루오》, 세계의 미술 41, 瑞文堂/ 임영방 · 유근준 · 박래경 편, 《루오》, 서양 미술 전집 20, 한국일보사 출판국, 1973. 〔趙光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