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지에리, 미켈 Ruggieri, Michel(1543~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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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소속 중국 선교사. 세례명은 미카엘. 중국명은 나명견(羅明堅). 자는 복초(復初). 1543년 이탈리아 나폴리 왕국의 베노사(Venosa) 교구 스피나졸라(Spinazzola)에서 태어나,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활동하다가 1572년 10월 28일 29세의 나이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선교의 뜻을 둔 그는, 신학 과정을 끝마친 후 인도로 떠나기를 원했다. 1578년 아콰비바(Rodolphe Aquaviva), 파시오(Francesco Pasio), 리치(Matteo Ricci), 스핀놀라(Nicolas Spinnola) 신부 등과 함께 리스본(Lisbon)에서 배를 타고 고아(Gôa)와 코친(Cochin)을 거쳐 1579년 7월 마카오에 도착한 루지에리 신부는, 그곳에서 중국말을 배우며 중국 입국을 시도하던 중 입국 허가를 받았다. 그 후 1582년 12월 27일 파시오 신부와 평수사 한 명과 함께 광동 지역의 조경(肇慶)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마침 성 밖에 있는 빈 절인 동관불사(東關佛寺)에 거처를 정하였는데, 이곳은 중국에 입국한 예수회의 첫 거처가 되었다. 파시오 신부가 일본으로 떠나자 조경에서 마카오로 다시 돌아온 루지에리 신부는 리치 신부와 함께 재입국 허가를 받아 1583년에는 조경에 다시 머무르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중국에서의 전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루지에리 신부와 리치 신부는 성(城)안에 살고 있는 많은 유력 인사들과 도(道)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중국어로 된 교리서를 만드는 일에 매진하면서 중국인 관리들을 개종시키는 데 힘썼다. 또 천주교 신자가 된 관리들의 도움으로 절강성(浙江省)의 항주부(抗州府), 호광(湖廣), 광서성(廣西省)의 계림(桂林) 등지로 진출하여 선교를 하였으나 그 곳 반대자들의 모함을 받아 위협을 받게 되자 조경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중국에서의 전교 사업이 보다 확고한 기초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로마 교황청에서 중국에 사절을 파견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절감한 루지에리 신부는, 1588년 마카오를 떠나 이듬해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로마에 도착한 후 중국에서의 성공적인 전교의 꿈을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으나, 꿈이 채 이루어지기 전인 1607년 5월 11일 이탈리아의 살레르네(Salerne)에서 사망하였다.
선교사로 중국에 파견되어 있는 동안 많은 공적을 남긴 루지에리 신부는, 특히 한문 실력이 뛰어나서 1584년 11월에 최초의 한역 교리서(漢譯敎理書)인 《천주실록》(天主實錄)을 광동(廣東)에서 출판하였다. 서양인과 중국인의 대화체로 쓰여진 이 교리서는 자연의 이치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가장 근본적인 진리란 결국 하느님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세상에 참된 종교는 하나일 수밖에 없으며 여러 신을 섬기는 종교들은 잘못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천주교의 기본 교리를 간단하게 풀이한 이 책은, 이후 예수회 소속의 많은 선교사들에 의해 저술된 수많은 한역 서학서의 효시가 되었다.
※ 참고문헌  Louis Pfister, Notics Biographiques et Bibliographiques Ⅰ , Chang-hai, 1932/《기독교 대백과 사전》 5, 기독교문사, 1982.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