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 프랑스의 교의 신학자. 예수회원. 1896년 2월 20일 프랑스의 캉브레(Cambra)에서 태어나 1913년 10월 9일 예수회에 입회했으며, 저제(Jersey)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헤스팅스(Hastings)와 리용(Lyon)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27년 리용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29년부터 리용 대학교 가톨릭 신학부에서 기초 신학과 종교사를 강의하였으며, 1942년부터 다니엘루(J. Daniélou) 신부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원천》(Sources chrétiennes) 총서를 발간하기 시작했고, 1944년부터는 《신학》(Théolo-gie) 총서의 고문과 저자로 참여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몇 년 동안은 《종교학 연구》(Recherches de science religieuse)의 편집 책임자로 있었다. 1950년에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모든 공직을 박탈당하였지만, 요한 23세에 의해 1959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문위원으로 지명되면서 <계시 헌장>과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의 작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공의회 이후에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는데, 그는 공의회의 가르침이 권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57년부터 프랑스의 사회-정치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또한 라칭거(J. Ratzinger), 부이에(L. Bouyer), 기유(M.D. Le Guillou), 발타사르(H.U. von Balthasar)와 함께 신학 잡지 《콤무니오》(Communio)를 창간하였고, 1982년에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1991년 9월 4일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저서와 활동〕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가톨리시즘》(Catholicisme, les aspects sociaux du dogme, 1938)을 비롯하여 《이스라엘과 그리스도교 신앙》(Israel et la Foi chrétienne, 1942) , 《인본주의적 무신론의 드라마》(Le Drame de l'humanisme athée, 1943), 《신비체, 중세의 성체성사와 교회》(Corpus Mysticum, L'Eucharistie et I'Église au Moyen Age, 1944) 《오리제네스의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관한 설교 소개》(Origène, Homélies sur la Genèse et sur I'Exode, Introductions, 1947), 《성서의 정신적 의미》(Der geistige Sinn der Schrift, 1952) 《불교의 모습》(Aspects du Bouddhisme, 1951~1952), 《불교와 동방 교회와의 만남》(La rencontre du Bouddhisme et de l'Occident, 1952), 《교회에 관한 명상》 (Méditation sur I'Église, 1953) , 《하느님의 길》(Sur les chemins de Dieu, 1956), 《중세의 주석》(Exégèsc médiévale, 1959~1964),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종교적 명상》(La Pensée religieuse du P. Teilhard de Chardin, 1964), 《초자연적인 것의 신비》(Le mystère du sumaturel, 1965), 《아우구스티노주의와 현대 신학》(Augustinisme et théologie moderne, 1965), 《보편 교회 안에 있는 개별 교회》(Les Eglises parti-culières dans I'Église universelle, 1971) 등이 있다.
뤼박은 교부들과 교부 문헌들에 대한 주석 총서인 《그리스도교의 원천》을 발간하면서 초기 교회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였으며,역사적이고 조직적인 논문들을 실은 <신학> 총서를 발간하면서 실증 신학을 발전시켰고, 종래의 신스콜라 신학에서 탈피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신학 사조를 부이야르(H. Bouillard)는 자신의 저서 《토마스 아퀴나스에 있어서 회심과 은총》(Conversion et grace chez Saint Thomas d'Aquin : Étude historique)에서 '신신학' 新神學, Nouvelle théologie)이라 명명하였다. 이 용어는 공적 논쟁에서 일반화된 개념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는데 부이야르, 롱데(H. Rondet), 몽세이(Y. de Montcheuil), 셔뉘(M.D. Chenu), 콩가르(Y. Congar) 등도 당시 이러한 신신학의 사조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1950년 8월 12일 가톨릭 신조의 기초를 위협하는 그릇된 견해들에 관한 교서 <인류에 관하여>(Humani Generis)에서 신신학의 업적과 방법들을 단죄함으로써 뤼박의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견해는 거부되었다. 자연적 질서 위에 있는 초자연적 질서에 대한 가르침을 재확인한 교황 비오 12세는 다른 프랑스 예수회 신학자들과 함께 뤼박을 공직에서 정지 처분하였다. 그러나 제를리에(Gerlier) 추기경의 도움으로 그는 리용에서 계속 가르칠 수 있었다.
〔사 상〕 뤼박은 《가톨리시즘》에서, 역사와 문화가 만나는 문제들에 신학이 대응하면서 정확성을 기하고 비판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역사와 문화에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한 그는, 시간의 타율성을 넘어서서 하느님에게 향하는 길을 추구하였고, 존재를 넘어선 하느님의 베푸심을 설명하였다. 또한 언어의 일의성(一意性)을 넘어서서 의미의 초월을 추구하면서 종교적 차이를 넘어선 '이미' 와 '아직' 이라는 신비적 내재와 종말론적 상이성 사이의 긴장 관계를 추구하였다. 또 《초자연적인 것》(Surnaturel, 1946)에서는 밖으로부터 오는 은총과 관련하여 자연적인 계획과 초자연적인 계획 사이의 간격을 극복하려 하였다. 즉, 종래의 스콜라 신학이 주장한 자연과 초자연의 이중 구조로서가 아니라, 자연을 통한 초자연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그는 인간에게서 하느님의 영광과 현현을 보는 오리제네스와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신학 사상을 선호하였다.
《신비체, 중세의 성체성사와 교회》에 나타나는 그의 그리스도론은 성체성사로 설명된다. 인간의 역사 속에 예수는 육화하여 스스로 성만찬의 제물이 됨으로써 교회와 연결되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완성을 이룬다. 이로부터 교회론도 성체성사로 해석된다. 《보편 교회 안에 있는 개별 교회》에서 그는 교회를 전 인류에게 퍼져 있는 역동적인 은총의 개척자이며 성사라고 정의하면서, 교회는 위계 질서로 조직된 기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근거한 살아 있는 유기체라고 파악하였다. 그는 성사의 교회적 차원을 밝혀 주면서 비판적이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교회와 성사의 신비로 이끌어 주었으며, 현대 정신 사조와 자연 종교, 초자연 종교 사이의 관계로부터 신앙을 밝혀 주었다.
〔의 의〕 "일치와 다양성은 서로 교차하면서 짝이 되는 개념이다" 라는 그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뤼박은 교회 전통을 하나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것으로 보아 신학의 영역을 넓혀 주었으며, 자연과 초자연의 이중 구조를 해체시키고 자연을 통한 초자연의 의미를 밝혀 줌으로써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의 초석을 놓았다. 또한 뤼박은 교회와 세계, 세계사와 구원사, 하느님의 나라와 인간 세상의 관계를 이중 구조로 보지 않았으며, 어제의 역사를 오늘의 역사와 연결시켜 지역에 따른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 맥락에서 현대 신학이 생성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 참고문헌 H. de Lubac, The Motherhood ofthe Church, San Fran-cisco, 1982/ G. Chantraine, 《TRE》 21, pp. 471~473/ R. Gögler, 《RGG》 4, pp. 463/ R. Williams · B. Lauret, Dictionary ofthe Ecumenical Movement, Geneva, WCC Publication, 1991, pp. 990~991, 1000~1001. 〔姜永玉〕
뤼박, 앙리 드 Lubac, Henri de(1896~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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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