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카, 프랑수아 마리 앙주 Lucas, François Marie Ange(1878~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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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카 신부.

뤼카 신부.

파리 외방전교회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한국명은 육가은(陸嘉恩). 1878년 12월 12일 프랑스 생 브 리 외 (Saint-Brieuc) 교구의 생 리욀(Saint-Rieul)에서 태어나 1898년 9월 15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03년 6월 21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같은 해 7월 22일 선교사로 중국 광동(廣東) 지역에 파견되어 6년 동안 전교하였으나, 그곳 기후가 맞지 않아 몸이 쇠약해지자 한국 선교사를 자원하여 1909년 2월 10일 한국에 입국하였다.
1909년 5월에 원산으로 전임된 투르니에(Tournier) 신부의 뒤를 이어 함경남도 내평(內坪) 본당 7대 주임 신 부로 부임하여 약 12년 간 재임하였다. 입국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뤼카 신부는 건강을 회복하기에 힘썼다. 그의 재임 초기에는 간도(間島)로 집단 이주하는 신자들이 많아 빈 공소가 늘어가자 교구에 지원을 요청하여 교우들이 경작할 논을 구입하는 등 이주를 막고자 노력하였다. 한편 영동 지방의 교우들이 총독부에서 발표한 1911년의 '삼림령' , 1912년의 '국유 삼림 산야 보호 규칙' 의 영향으로 주된 생계였던 옹기업을 못하게 되자, 뤼카 신부는 그들 중 일부를 내평에 마련한 교구 농토로 불러들였다. 또 영동 지방에 본당을 설립하도록 건의하고 자신이 그곳으로 파견되기를 간청하였다. 뤼카 신부는 계속 줄어드는 교세를 막기 위해 한때 순회 회장의 선정과 활동, 공개 강연, 의약품 판매, 홍보지 제작 등 적극적인 전교 방법을 도입하기도 하였다.
1921년 5월 진남포(鎮南浦) 본당 4대 주임으로 전임된 뤼카 신부는, 초등 교육 기관인 해성학교(海星學校)를 개설하였다. 그리고 1926년 5월에는 휴가차 본국으로 돌아갔던 공베르(A. Gombert, 孔安國) 신부를 대리하여 1년 동안 안성(현 구포동) 본당에서 사목하였으며, 이듬해 5월에는 강원도 용소막(龍召幕) 본당 4대 주임 신부로 전임되어 1928년까지 사목하였다.
그 후 1928년에 신병 치료차 홍콩에 갔다가 이듬해 3월에 재입국, 경기도 미리내 본당 2대 주임 신부로 부임 하여 약 3년 동안 전교에 힘썼다. 그리고 1932년 9월 안성 본당 2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공베르 신부가 이미 1909년 1월에 설립하여 운영해 왔던 초등 사립 학교인 안법학교(安法學校)의 교사를 새로 증축하는 등 2년 동안 안성 본당의 사목을 위해 노력하였다.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된 이후 약 25년 동안 많은 노력을 한 뤼카 신부는, 1934년 6월 28일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경 향잡지》 785호(1934. 7. 12)/《서울대교구 교구총람》 附錄, 가톨릭출판사, 1984/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교구 30년사》, 1993/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함경도 선교사 서한집》 Ⅱ,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