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 교회 琉球敎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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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고시마(鹿兒島) 교구에 속해 있는 '류큐 열도'(琉球列島)의 천주교회. 류큐 열도는 일본 남서 제도(南西諸島) 남부에 있으며, 오키나와(沖繩) · 사키시마(先島) · 다이토(大東) 제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이 곳은 유구 왕국이라는 독립국이었으나 1609년 가고시마 영주에게 복속되었고, 1945년 이후 미군정 아래 있다가 1972년에 일본의 한 행정 지역으로 다시 편입되었다. 중심지는 오키나와의 나하(那覇)이다.
〔천주교 전파와 조선 대목구〕 이곳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정권의 박해가 있은지 2세기가 지난 1830년대 후반이었다. 이에 앞서 교황청에서는 1831년 9월 9일자로 조선 대목구를 설정하고, 그 사목 책임을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임하였으나, 그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된 브뤼기에르(Bruguière, 蘇) 주교는 조선에 입국하지 못하고 1835년 10월 20일에 사망하였다. 이어 그 후임으로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가 임명되었는데, 그가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로부터 제 2대 조선 대목구장으로 임명을 받은 것은 1836년 4월 26일자였다. 교황청에서는 이때 앵베르 주교에게 조선 포교지뿐만 아니라 류큐 포교지까지 맡겼으며, 따라서 앵베르 주교는 조선과 류큐의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결정은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에 입국하지 못할 경우 류큐로 가서 조선 입국의 기회를 얻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자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제안을 교황청에서 받아들인 결과였다. 동시에 교황청에서는 장차 일본 교회를 재건하는 데 있어 류큐 지역이 중요한 문호 역할을 해주기를 기원하였다.
앵베르 주교는 1837년 5월 14일에 주교 성성식을 가진 뒤 중국을 떠나 12월 말에 조선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이때 그의 일행 중에는 회장과 신학생이 각각 한 명씩 있었는데, 앵베르 주교는 장차 이들을 류큐로 보내 전교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조선 입국 후에 그 회장을 류큐로 보냈으며, 샤스탕(Chastant, 鄭牙各伯) 신부로 하여금 회장 한 명을 선출하여 부산에 있는 일본인들과 교섭하도록 함으로써 박해 후 일본에 신자의 후손이 남아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앵베르 주교의 노력에 의해 류큐 지역에는 1838년경에 처음으로 천주교가 전파되었지만, 1839년에 그가 순교함으로써 새로운 전교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류큐 교회의 변모〕 1844년에 이르러 파리 외방전교회에서는 마카오의 극동 대표부를 중심으로 다시 류큐 전교를 계획하게 되었다. 이때 그 계획을 담당한 사람은 리브와(N.F. Libois) 신부였고, 포르카드(Forcade) 신부가 그를 보좌하였다. 류큐 전교를 맡게 된 리브와 신부는 즉시 친분이 있던 프랑스 극동 함대 사령관인 세실(Cécille) 에게 류큐 원정을 부탁하였는데, 그는 이를 받아들여 뒤플랑(F. Duplan) 함장에게 포르카드 신부와 함께 류큐로 가도록 하였다. 이때 일본어를 연구한 적이 있는 중국인 회장이 통역자로 동승하였는데, 이로써 이 지역에 다시 교회가 설립되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일본 입국의 목적을 앞당기기 위해 1846년 일본을 대목구(代牧區)로 설정함과 동시에 포르카드 신부를 초대 대목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포르카드 신부는 그 해 5월 나하에 온 세실 사령관과 함께 극동 대표부가 이전해 있던 홍콩으로 갔으며, 나하에는 르 튀르뒤(P.-M. Le Turdu, 1821~1861) 신부가 남아서 활동하였다. 포르카드 신부는 홍콩에 머물면서 다시 일본으로 입국할 기회를 엿보았지만, 병으로 인해 나가사키(長崎)로 가지 못하고 1852년프랑스로 귀국하였다.
이후 홍콩에 있던 리브와 신부는 일본 전교의 책임자로 임명을 받자, 1855년 초에 지라르(G.S. Girard), 퓌레 (A.T. Furet), 메르메(E.E. Mermet) 신부를 다시 류큐로 파견하였다. 이들 중 지라르 신부는 1858년 일본이 개국 하고 프랑스와 통상 조약을 맺게 되면서 일본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8월 에도(江戶, 즉 도쿄)에 진출하였다. 이처럼 류큐 지역은 조선 대목구장에게 위임될 당시 교황청에서 기대하였던 대로 일본 교회를 재건하는 문호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1868년 이후의 박해[浦上崩れ〕에도 교회가 붕괴되지 않고 점차 발전하였다. 그러다가 1927년 3월 18일 나가사키 교구로부터 가고시마지목구가 분리 설정되면서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가고시마 지목구는 1955년 2월 26일 교구로 승격되었는데, 이 지역이 미군정 아래 들어가게 되면서 류큐 교회는 1947년 1월 13일자로 괌 대목구 및 미국 교황 사절의 관할 아래 놓이게 되어 카푸친회에서 전교를 담당하다가 1953년 말에 다시 일본 교회 소속이 되었다.
※ 참고문헌  上智大學 편, 《カトリック大辭典》, 東京 : 富山房, 1954/ 《달레 교회사》 中/ 《キリスト敎百科事典》, 東京 : エンデル書店, 196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