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가롤로.한국명은 곽원량(郭元良). 1876년 2월 26일 프랑스 렌(Rennes) 지방의 비트레(Vitré)에서 태어나, 1893년 9월 14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1898년 9월 24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곧 이어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이듬해 2월 1일 한국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그 해 5월에 황해도의 재령(載寧) 본당이 창설되자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부임 직후 르 각 신부는 본격적인 전교 사업을 펴기에 앞서 보다 시급한 일이 교육 사업임을 인식하고, 8월에 초등 교육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한문 서당을 개설하였다. 르 각 신부는 이 학교의 육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그로 인해 재학생 중 세례를 받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무렵 프로테스탄트측에서는 많은 신식 학교를 설립, 운영하여 교세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한문 서당도 멜리장(Melizan, 梅履霜)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후 모성학교(慕聖學校)로 재인가를 받았다. 한편 1900년에 소성당을, 1901년에는 사제관을 건립한 르 각 신부는, 특별히 사목 담당 지역과 관할 공소를 대폭 증설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전교하여 교세가 크게 신장되었다. 1901~1902년 사이에만 560명의 예비자들이 세례를 받았다.
1906년에는 경기도의 하우현(下牛峴, 일명 하우고개) 본당 2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으며, 1911년 4월에는 주임 신부가 공석인 왕림(旺林, 일명 갓등이) 본당의 주임 신부를 겸임하였다. 그러나 부임 3년 만인 1914년 5월 18일에 장티푸스에 걸린 교우 환자의 임종을 돌보다가 감염되어 종부성사를 받고 5월 26일 사망하였다. 르 각 신부의 유해는 왕림 성당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미리내 성직자 묘지로 이장되었다. (⇦ 곽원량)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附錄, 가톨릭출판사, 1984/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黃海道天主教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李裕林〕
르 각, 샤를르 조제프 앙주 Le Gac, Charles Joseph Ange(1876~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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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각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