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우주 대폭발설의 창시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1894년 6월 17일 벨기에의 샤를르르아(Charleroi)에서 태어난 르메트르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아더 에딩턴(Arthur Eddington)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1923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24~1925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천문학을 공부한 이후 1927년에 루뱅 대학 교수가 되어 활발한 연구 활동을 전개하였다.
르메트르 신부는 1936년 8월 28일 자의 교서 <인 물티스 솔라치이스>(in Multis Solaciis)를 통해 비오 11세 교황이 개편하고 새롭게 명명한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Pontificia Academia Scientiarum)의 회원이 되었으며, 교황 요한 23세는 제멜리(Agostino Gemelli) 신부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이 아카데미의 회장으로 르메트르 신부를 임명하였다. 그는 벨기에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이기도 하였다.
1920~1930년대는 우주론의 전환기로, 정적인 우주론이 수세에 몰리고 팽창하는 우주론이 대두하던 시기였다. 1927~1933년 사이에 초기 대폭발 이론의 윤곽을 잡아가고 있었던 르메트르는, '원시 원자에 대한 가설'(Hypothèse de I'atome primitif)이라는 자신의 이론에서 최초로 우주가 단일한 원자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함으로써 우주 대폭발설의 창시자가 되었다. 한편 현대 우주 과학자들의 대부분의 지지를 받고 있는 우주론은 우주가 대략 150억 년 전에 원시 원자의 대폭발(BigBang)에서 생긴 것이고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학설이다. 1966년 6월 19일 루뱅(Louvain)에서 사망하였다.
〔우주 대폭발설〕 원시 원자가 분열을 시작하여 마치 접시 속의 박테리아처럼 끝없이 분열을 계속한다고 본 르메트르는, 원시 원자가 현재의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물질을 만들어 냈고, 원자핵이 증식을 계속함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생성되었으며, 양자의 자기 복제는 폭발적인 속도로 일어났다고 보았다. 1927년 그는 브뤼셀에서 열린 제5회 솔베이 회의 석상에서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자신의 이론을 검토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나,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에 우주가 팽창한다는 의미를 포함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당시 우주가 팽창하지 않고 정지해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계산은 정확하지만 자연 과학적 통찰력은 혐오스러울 정도" 라고 그의 이론을 일축해 버렸다.
르메트르는 같은 회의 석상에서 옛 스승이며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인 에딩턴에게 자신의 이론이 수록된 원고를 건네주며 원시 원자의 분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에딩턴은 "성공적 이론이 되려면 우주의 시초를 미학적인 측면에서 지나치게 비약적으로 묘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고 대답하였다. 당시 에딩턴도 원시 원자의 분열이나 대폭발 이론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르메트르는 1931년 5월 9일자 《나튀르》(Nature)에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기고하였는데, 훗날 한 과학자는 르메트르의 이 편지를 '대폭발 이론의 헌장' 이라고 불렀다. 이 편지가 발표되자 1931년 5월 31일자 《뉴욕 타임즈》는 "르메트르, 모든 에너지를 담고 있는 하나의 단일하고 거대한 원자에서 우리 우주의 탄생을 주장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몇 년 후 아인슈타인은 다른 과학자들의 지적을 통해서 자신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는 이미 우주가 팽창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일찍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일생 일대의 실수"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젊은 사제의 견해를 너무 빨리 무시한 것을 인정하고, 르메트르의 견해를 "가장 재미있고 아름다우며 만족스러운 해석"이라고 말하였다. 1932년에는 에딩턴도 우주가 정지해 있다는 견해를 철회하고 자세히 읽어 보지 않았던 르메트르의 원고를 찾아내어 영어로 번역한 후, 영국 왕립 천문학회지에 기고하였다. 에딩턴의 이와 같은 행동으로 르메트르의 이론은 승인을 받게 되었고, 대폭발 이론은-물론 당시에는 이런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지만-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평 가〕 그의 이론이 세상에 알려질 무렵 《타임즈》는, 르메트르 신부에 대하여 "과학과 종교가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고, "생존해 있는 최고의 수리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이며, 이제 그의 팽창하는 우주가 너무 유명해져서 아인슈타인의 정지한 원통형 우주는 유행에 뒤져 보인다"고 논평하였다. 한편 르메트르 신부의 대폭발 이론에 끝까지 반대한 영국의 천문학자 호일(F.Hoyle)은 1950년 라디오 방송에서 르메트르의 원시 원자 분열 이론을 평가 절하하기 위해 처음으로 대폭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대폭발 이론 대신 우주가 팽창하지 않고 언제나 같은 상태에 있다는 정상 우주론(steady state theory)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창세기의 창조론에 반대하는 이론으로 이해되었다.
호일을 비롯한 비판자들은 대폭발 이론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것이 창세기 창조 과정을 닮았기 때문이고, 르메트르가 최초로 대폭발 이론을 주장한 것도 그가 성직자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르메트르는 자신의 이론이 종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설명하였고, 1951년 교황 비오 12세가 대폭발 이론을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창조설을 지지하는 하나의 증거로 거론하였을 때 몹시 당황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정상 우주론은 위기에 내몰렸던 반면, 대폭발 이론에 대한 지지자는 더욱 늘어났다. 조지 스무트(G. Smoot) 교수팀이 15년 간 노력하여 찾아내고 1992년 4월 23일 미국 물리학회에서 발표한 우주의 주름(wrinkles)에 대한 발견은, 대폭발 이론이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결정적 증거로 인정되었다. 현대 최고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W. Hawking)은 그것을 "금세기의 과학적 발견" 이라고 칭찬하였다.
※ 참고문헌 Michel Grison, 《Cath》 7, p. 274~275/ George Smoot·Keay Davidson, Wrinkles in Time : A Cosmic Adventure Story, New York, Brockman Inc., 1994(과학 세대 역, 《우주의 역사》, 까치, 1994)/ Stephen W. Hawking, A Brief History ofTime from the Big Bang to Black Holes, 1988(현정준 역, 《시간의 역사》, 삼성 출판사, 1993). 〔吳庚煥〕
르메트르, 조르주 앙리 Lemaître, Georges Henri(1894~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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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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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아인슈타인과 르메트르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