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중동부 적도 아래에 있는 공화국. 정식 명칭은 르완다 공화국. 면적 26,338k㎡, 인구 758만 4천 명(1993). 북쪽은 우간다, 동쪽은 탄자니아, 남쪽은 부룬디, 서쪽은 자이르와 접경하고 있으며, 수도는 키갈리(Kigali). 종교는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가톨릭을 비롯하여 이슬람교 · 프로테스탄트 · 전통 종교 등이며, 공용어로는 프랑스어와 키냐르완다어가 사용되고 있다. 식민지 시대 때 행정상 통합되었던 부룬디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면서 인구 밀도는 가장 높다. 후투족(Hutu)과 투치족(Tutsi), 그리고 피그미계 원주민인 트와족(Twa)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약 90%를 차지하는 후투족과 9%를 차지하는 투치족이 종족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15세기경에 투치족이 키갈리 근처에 왕국을 세웠으며, 16세기에 현재의 르완다 중부 지방이 병합되었다. 1890년부터 독일은 르완다를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했으나, 내정 간섭을 하지는 않았다. 벨기에는 1916년 주민들의 반감을 사지 않으면서 르완다를 점령했으며, 국제 연맹은 1923년 루완다-우룬디를 벨기에의 위임 통치령으로 인정하였다. 1959년 9월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에 이른바 '투생(Toussaint) 사건' 이라 불리는 전쟁이 일어난 후, 르완다는 부룬디로부터 분리되어 벨기에의 지지 아래 1961년 1월에 공화국임을 선포하고 이듬해 7월 독립하였다. 1973년 7월 초에는 정부 요직을 맡고 있던 투치족들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부족간의 적대감을 없애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였다. 1978년에 입안된 새 헌법은 정부 정상화의 초석이 되었으며, 1981년에는 선거가 치러져 1973년의 쿠데타 이후 선거로 세운 입법 기관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그러나 독립 후 강제로 르완다에서 쫓겨난 투치족들이 1990년에 '르완다 애국 전선' (RPF)이라는 반군을 조직하여 우간다로부터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르완다 북부 지방을 장악하고 온 나라를 재난 속으로 몰아넣었다. 르완다 애국 전선이 정권을 잡은 후 후투족과 투치족 상호간에 집단 학살이 행하여졌고, 이로 인해 부룬디와 탄자니아에 80만명, 자이르에 110만 명의 난민이 수용되었다. 1995년 현재에도 이른바 민족의 재일치라는 과제는 르완다에 커다란 과제로 남아 있으며, 후투족 반군과 투치족 정부군 사이의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1900년에 와서 르완다는 중앙 집권적 군부 조직을 갖춘 통일 국가를 이루었는데, 이때에 처음으로 라비즈리(C.M.A. Lavigerie)가 설립한 아프리카 선교사회(White Fathers)가 세이브(Save)에 도착하였다. 1912년에 키부(Kivu) 대목구가 설립되어 1922년에 르완다 대목구와 부룬디 대목구로 분할되었으며, 1952년에 르완다 대목구는 니운도(Nyundo)와 갑가이(Kabgayi) 대목구로 분할 되었다가 1959년에 대교구로 승격되었다. 1917년에 최초로 르완다 사제들이 배출되었으며, 1930~1940년에는 많은 개종자가 나왔는데 특히 투치족이 가톨릭을 선호하였다. 1959년 이래의 종족 투쟁은 교회를 투치족과 후투족 사이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갔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르완다 현지인 남녀 수도회가 창설되었으며, 니아카반다(Nyakibanda)의 신학교에서는 소수의 신학생 교육이 지속되었다. 이 당시 거의 모든 교육은 가톨릭 학교에서 이루어졌으며, 1963년에는 부타르 대학이 캐나다 도미니코회에 의해 개교되었다.
1991년 1월과 1993년 5월에 르완다 종족 분쟁에 관한 회의를 개최한 르완다와 부룬디의 주교들은 공동 문헌 발표를 통하여, 추방되었던 난민들이 자기 고향으로 귀환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여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관용과 대화와 협력의 정신으로 국가 재건에 협력하라고 촉구하였다. 1992년에는 인류 복음화성 장관 톰코 추기경이 르완다 난민 수용소를 방문하여 세계인의 연대를 호소하였고, 1993년에는 정의 평화위원회 위원장 에체가레이 추기경이 방문하여 화해와 용서를 역설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화해를 거듭 촉구하였다. 르완다 교회의 주교들은 1991년의 사목 교서를 통하여 국민들은 진리와 인간을 존중하는 민주 체제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에 적극 참여하여 "복음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정강 정책을 가진 정당"을 지지하라고 권장하였다. 1993년 현재 총 인구의 44%인 332만 3,000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으며, 대교구 1, 교구 8, 본당 122개에, 대주교 1, 주교 8, 사제 557(교구 소속 353, 수도회 소속 204) , 신학생 292, 수사 288, 수녀 1,161명이 있다.
※ 참고문헌 J. Perraudin, 《NCE》 12, p. 765/ 《EU》 20, pp. 424~4281 《EU》 Les Chiffres du Monde 1994, p. 441/ Petit Robert Dictionnaire Universel des Noms Propres 2, 1988/ 1994 Catholic Almcm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梁蕙貞〕
르완다
〔영〕Republic of Rw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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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