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장드르, 루이 가브리엘 아르센 암브르와즈 Le Gendre, Louis-Gabriel Arsène Ambroise(1866~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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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장드르 신부.

르 장드르 신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루도비코. 한국명은 최창근(崔昌根). 1866년 12월 13일 프랑스 쿠탕스(Coutance) 교구의 뒤시(Ducey)에서 태어나 1884년 쿠탕스 교구 대신학교에 입학하여 1889년 6월 29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뒤 1년 동안 교구 사제로 사목하다가 1890년 9월 21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10월 31일 한국에 입국하여 임시로 서울의 주교관에서 머무르면서 한국어를 열심히 배웠다.
1891년 12월 말 함경남도 원산(元山)에 도착한 르 장드르 신부는 곧 이어 눈다리에 거처를 잡고, 당시 안변(安邊) 본당 2대 주임이었던 샤르즈뵈프(Chargeboeuf, 宋德望) 신부를 도왔다. 그리고 1892년 1월에 안변 본당 3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약 1년 4개월 동안 사목하였으나 심한 궁핍이 원인이 된 신자들의 집단 이민, 신부의 복사에 대한 덕원 포졸들의 집단 구타 사건(소위 '나팔 사건' ) 등이 발생하여 그의 사목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1893년 4월 서울에서의 연례 피정을 마치고 그 해 5월에 황해도 수안(遂安)의 덕골로 옮겨 황해도의 11개 공소와 평안도의 6개 공소를 관할하면서 1893~1894년에 성인 영세자 76명에게, 1894~1895년에는 성인 영세자 164명에게, 1895~1896년에는 성인 영세자 213명에게 세례를 주는 등 교세 신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 1895년에는 평양 외성(外城)에 사제관을 신축하고, 임시 성당으로 사용함으로써 평양 본당이 창설되었다.
1898년 평양 시내의 장대재〔將台峴〕에 성당 부지를 마련한 후 그 해 7월 개성으로 전근되었다가 얼마 후 교구의 시복(諡福) 조사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수속 준비와 성성(聖性)이 높은 고인(故人)들의 행적을 엄밀히 조사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한 르 장드르 신부는, 1902년에 부산(釜山, 현 범일동) 본당 6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7년 동안 부산 지역의 전교와 사목을 담당하였다. 또 1909년에는 경기도 개성(開城) 본당 2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본당 관할 구역인 장단(長湍), 파주(坡州), 연천(漣川), 연백(延白)과 황해도의 배천〔白川〕 등지에서 10년 동안 본당 사목을 담당하였다.
1919년에 주교관으로 전임되었으나 이질에 걸려 본국 프랑스로 돌아갔다가, 1921년에 다시 한국에 입국하여 서울 주교관에서 휴양하면서 저술 활동에만 전념하였다. 그 결과 1923년에 공소 회장이나 전교 회장들의 소임에 대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회장 직분》(會長職分)을, 1925년에 가톨릭 교리서인 《천주교 요리》(天主敎要理, 일명 대문답) 등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1926년부터는 신학생들을 위한 《나한사전》((韓辭典) 편찬에 착수하였으나 심한 안질에 걸려 완성하지 못하였다. 그 후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1928년 4월 21일 사망하여 용산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 최창근)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경 향잡지》 366호(1928. 4)/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함경도 선교사 서한집》 Ⅱ,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