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포르, 게르트루트 폰 Le Fort, Gertrud von(1876~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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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포르.

르 포르.

독일의 가톨릭 여류 시인. 소설가. 베스트팔렌 지방의 민덴(Minden)에서 북부 이탈리아로 이주해온 위그노 가문 출신이자 프로이센의 장교인 로타르 폰 르 포르(Lothar von le Fort)의 딸로 태어나 부친의 직업 때문에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던 그녀는 정규 학교 교육을 받기 어려워 주로 부친의 개인 지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유년 시절을 메클렌부르크(Mecklenburg) 지방과 여러 군사 주둔지에서 보냈는데 14세가 되어서야 학교 교육을 접한 르 포르는, 부친의 금지령으로 20세가 될 때까지 소설을 읽을 수 없었지만 부친의 엄격한 교육 덕분에 역사에 대한 안목과 식견은 대단히 높았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1902년부터 그녀는 여러 지역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교양을 쌓을 수 있었다. 특히 로마에서의 체험들은 그녀의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08년부터 시작된 대학 시절에는 하이델베르크, 마르부르크, 베를린 등지에서 신학 · 역사학 · 철학 등을 전공하였다. 당시 유일한 여자 수강생이었던 그녀는 신학자 에른스트 트뢸취(E. Troeltsch)의 제자가 되어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1925년에는 자신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그의 《신앙론》(Glaubenslehre)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이 스승의 모습은 그녀의 작품 《천사의 화관(花冠)》(Der Kranz der Engel, 1946)에 등장하는 교수를 통해 잘 묘사되어 있다.
원래 프로테스탄트였던 르 포르는 1926년 로마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 1946~1949년 스위스에 머무른 뒤 독일 오버스트도르프(Oberstdort)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혈통과 종교적 세계관을 근거로 독일의 나치즘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고, 후기 소설에서 나치 시대의 죄과를 대신 회개하는 내용들을 많이 반영하였다. 1950년대에는 핵무기 반대를 주장하는 사회 참여적인 글들을 쓰기도 하였다. 르 포르는 1956년 뭔헨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폴 클로델(P. Claudel), 헤르만 헤세(H.Hesse) , 아네스 미겔(A. Miegel), 라인홀트 슈나이더(R. Schneider), 칼 추크마이어(C. Zuckmayer) 등과 같은 당대의 많은 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하여 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독일의 선구적인 여류 문학가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학을 통해 가톨릭 정신을 진정한 휴머니즘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작가 르 포르는 1971년 오버스트도르프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작 품〕 르 포르의 신앙에 대한 열정은 모든 창작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현대 권력 세계의 심판적인 도덕과 종교적 모순에 대한 문제가 자주 제기되고 있는데, 그녀의 이러한 종교적 · 신비적 작품은 당시 젊은 층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면서도 유년 시절부터 가톨릭에 관심을 가졌고 로마에 체류하면서 이를 더욱 심화시켰던 그녀는, 시집 《교회 찬가》(Hymnen an die Kirche, 1924)에서 자신의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정신과 영혼의 고향으로서 가톨릭 교회를 찬미한 이 책을 통해 르 포르는 일약 독일어권 밖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분열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했던 그녀에게 있어서 가톨릭으로의 개종은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배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일치를 개인적으로나마 실천한다는 의미였다. 그러기에 그녀는 단편 소설 《견고의 탑》(Der Tum der Beständigkeit, 1957)에서도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개혁을 역사적 측면에서 조명해 볼 때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다고 묘사하였던 것이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일치를 희구하는 그녀의 입장은 소설 《성당》(Der Dom, 1968)에서도 "신에 대한 사랑 속의 일치" 라는 모토 아래 강력히 피력되고 있다.
신비주의적 내용을 담은 그녀의 종교 문학은 알기 쉬운 상징과 비유들을 사용하여 독자의 관심을 끌고 이해를 돕고 있다. 그녀가 즐겨 다루는 주제는 불안감, 보호받고 싶은 욕망, 사랑 그리고 악마적 위험 등의 실존적인 질문들이다.
수필집 《영원한 여인, 시대의 여인, 시대를 넘는 여인》(Die ewige Frau. Die Frau in der Zeit. Die zeitlose Frau, 1934)에서는 르 포르 문학에서 볼 수 있는 여성의 전형적인 본질적 특성이 논의된다. 말하자면 여성은 개인의 자기 실현 보다는 사랑으로 자기 희생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은 젊고 아직 어린 아이의 순수성을 지니면서 자기 희생의 순간을 고대하는 인물인데, 소설 《단두대의 마지막 여인》(Die Letzte am Schafott, 1931)에서 그 극단적인 예를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가르멜 수녀들의 순교를 다룬 이 소설은, 죽음의 공포에 떨던 어린 수녀가 앞서서 처형당하는 동료 수녀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치지 않고 부르는 찬미에 힘입어 영원한 선(善)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자 드디어는 죽음의 공포마저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뛰어난 심리 묘사로 그녀의 작품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던 이 소설은 베르나노스(G. Bernanos)에 의해 각색되어 연극으로 공연되었고 레이몽 브루크베르거(R. Bruckberger)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의 대표작은 《베로니카의 성포(聖布)》(Das Schweißtuch der Veronika)인데, 이 작품은 《로마의 분수》(Das römische Brunnen, 1928)와 《천사의 화관》의 2부작으로 되어 있다. '성포' 는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형장으로 갈 때 그 얼굴의 피땀을 닦았던 베로니카의 수건을 뜻하며, 이 수건에 예수의 얼굴 모습이 각인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은 작가의 전기적(傳記的)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고 서술 형식도 1인칭을 사용함으로써 작가가 개인적 체험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르 포르 자신도 《작품과 의미》(Werk und Bedeutung, 1950) 서문에서 이 점에 대해 언급하였다.
《로마의 분수》 : 이교도 생활을 하는 할머니에게서 양육된, '작은 거울'이란 별명을 가진 주인공 베로니카가 엔치오(Enzio)라는 청년을 사귀게 되었다. 이 청년은 니체의 영향 속에서 새로운 혁신을 신봉하며 베로니카에게도 그 위험스런 사상을 주입시키려 한다. 그러나 베로니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친척인 에델가르트(Edelgart) 부인의 권유로 가톨릭으로 개종하기에 이른다.
《천사의 화관》 : 베로니카는 하이델베르크에서 양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된다. 그는 이곳 대학의 교수이며 계몽주의적이고 휴머니스트적인 인물이다. 엔치오 역시 여기서 그의 제자로 학업을 계속하고 베로니카와 약혼을 한다. 베로니카에게서 가톨릭 사고 방식을 몰아내고 싶은 엔치오는 교회에서의 혼례도 거부한 채 관청에서 식을 올릴 것을 강요한다. 베로니카는 이러한 어려움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그녀가 로마를 떠날 때 그녀의 정신적 지주였던 안젤로 신부가 해준 말을 상기한다. "영원한 나라의 딸이여! 그 왕의 모습을, 그대의 영혼에서 타오르는 고귀한 모습을, 바깥 세상에 드러내 보이시오!"
엔치오는 강력한 독일을 만들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가톨릭에 대한 증오를 노골화하고, 한편 그를 위해서 자신의 신앙 생활을 희생시킨 베로니카는 교회의 파문을 당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교회에서 버림받고 암흑의 세계에서 살아야 하는 고통마저 감수하는 베로니카를 통해 르 포르는 자신의 종교관을 피력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녀에게 있어서 참된 신앙 생활이란 곧 고통 분담과 희생 정신,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는 삶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천사의 화관"은 하이델베르크의 성에 조각된 후기 고딕식 장식으로 천사가 자기 희생으로 신에게 화관을 바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베로니카는 바로 이 장식에서 엔치오에 대한 사랑의 상징을 발견한다. 그러던 중 일대 전환을 맞게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엔치오의 친구 스타로소프(Starossow)가 신앙을 저버렸던 것을 후회하며 죽음 직전 고해성사를 원하지만 엔치오는 이를 허락하지 않은 채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둔다. 이를 지켜본 베로니카는 절망에 빠져 쓰러지고 만다. 이를 계기로 엔치오는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회개하는데, 그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하는 베로니카는 이로써 안젤로 신부의 말이 실현되었음을 깨닫고 말한다. "당신의 인생이 망가졌으면 내 것을 가져요. 아시다시피 내 것은 모두 당신의 것이에요"
이 작품 1부와 2부 사이에는 거의 18년이라는 기간이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제와 사건 전개는 꾸준히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일관성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는 르 포르가 나이 40세에 들어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성숙된 인생관이 확립된 시기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한 데서 연유한다고 본다.
소설 《마그데부르크의 결혼》(Magdeburgische Hochzeit, 1938)은 30년 전쟁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마그데부르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자 간의 종교 전쟁을 소재로 하여 전쟁에 무참히 짓밟힌 한 도시의 운명을 통해 독일이 범한 신앙 분열과 파괴가 초래하는 끔찍한 결과를 예시하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르 포르는 당시를 지배하던 나치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후기의 작품 활동에서는 시사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과 현실 참여의 성향이 두드러지는데, 소설 《천국의 문에서》(Am Tor des Himmels, 1954)에서는 현대 핵 전쟁에 내 맡겨진 자연과 인류가 처한 위험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한편 1967년에는 당시 교황과 교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롤프 호흐후트(R. Hoch- huth)의 드라마 <대리인>(Der Stellvertreter)에 대한 반박으로 《침묵》(Das Schweigen)이라는 소설을 써서 가톨릭의 입장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게토 출신의 교황》(Der Papst aus dem Ghetto, 1910), 《독일 찬가》(Hymnen an Deutschland, 1931), 《희생의 불꽃》(Die Opferflamme, 1938), 《바다의 심판》(Das Gericht des Meeres, 1943), 《여인의 왕관》(Die Krone der Frau, 1950), 《파리나타
의 딸》(Die Tochter Farinatas, 1950), 《빌라도의 부인》(Die Frau des Pilatus, 1955) , 그리고 자서전으로 《인생의 절반》(Hälfte des Lebens, 1965) 등이 있다.
※ 참고문헌  H. Bach Hrsg., Dichtung ist eine Form der Liebe. Begegmmg mit Gertrud von le Fort und ihrem Werk, Miinchen, 1976/ M. Braunek Hrsg., Autorenlexikon deutschsprachiger Literatur des 20. Jahrhunderts, Reinbek bei Hamburg, 1984/ W. Duwe, Deutsche Dichtung des 20. Jahrhumderts 1, Vom Naturalismus zum Surrealismus, Zürich, 1969/ R. Göllner, Der Beitrag des Romamwerks Gertrud von le Forts zum ökamenischen Gespräch, Paderborn, 1973/ G. Kranz, Gertrude von le Fort. Leben und Werk in Daten, Bildern und Zeugnisen, Frankfurt a. M., 1976/ Le Chevallerie · Eleonore von Hrsg., Gertrude von le Fort. Wirken und Wirkung, Heidelberg, 1983/ Metzler Autorenlexikon deutschsprachiger Dichter und Schrifisteller vom Mittelalter bis zur Gegenwart, Stutttgart, 1986. 〔張銀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