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안토니오. 한국성은 목(睦). 1873년 4월 9일 프랑스에서 태어나 오툉(Autun) 교구의 리몽(Rimont) 소신학교를 졸업한 뒤 오툉 대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 후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897년 9월 사제 서품을 받았고, 동료인 타케(M. Taquet, 嚴宅基) 신부와 함께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그 해 10월 28일 파리를 출발하였다. 항해 도중 많은 어려움을 겪고 심한 고생을 하였지만 결국 이듬해 1월 5일 무사히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국 후 임시로 서울에 정착한 리굴로 신부는 연례 피정을 마치고 난 뒤, 7월에 르 메르(Le Merre, 李類斯) 신부의 후임으로 원주(현 원동) 본당의 2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리굴로 신부가 부임하였을 당시의 원주 지역은 군수가 천주교에 대해 지나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던데다가, 원주 읍내에 신자 가정이 넷밖에 없었고, 대부분의 예비 신자들도 공소에 거주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전교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늘 성실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해나갔으며, 모든 신자들에게 언제나 관대하게 대해 주었고, 또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였다.
원주 지역을 맡아 약 2년 동안 매우 적극적으로 사목하면서 교세 신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던 리굴로 신부는, 1900년 2월 공소 순방 도중 독감에 걸려, 홍천(洪川)의 옹기 마을 순방을 채 끝내지 못하고 다시 원주 본당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죽기 직전까지 원주 지역 주민들의 신앙에 대한 완고함을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전교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행성 독감에 장티푸스까지 겹쳐 결국 3월 17일에 사망하였다. 유해는 원주에서 약 28km 떨어진 곳에 묻혀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附錄, 가톨릭출판사, 1984/ M.E.P., Compte-Rendu 1900, Nécrologie, Rigoulot. 〔李裕林〕
리굴로, 앙트완 필리베르 Rigoulot, Antoine Philibert(187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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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리굴로 신부가 원주에서의 전교의 어려움을 언급한 1898년 9월 3일자 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