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Ly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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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비에 세워진 리디아 경당.

필립비에 세워진 리디아 경당.

① 성녀. 그리스 최초의 신자. 축일은 8월 3일. 원래 '리디아' 라는 말은 기원전 680~546년 사이에 사르디스(지금의 사르트 : 묵시 3, 1-6)에 수도를 정하고 아나톨리아 서부 일대를 통치하던 큰 왕국 이름으로, 리디아 부인의 고향인 티아디라(Thyatira, 지금의 아키사르 : 묵시 2, 18-29)도 이 왕국에 속하였다. 따라서 리디아 부인의 이름은 고향의 옛 국명을 딴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50~52년경 제2차 선교 여행 때 실라와 디모테오를 데리고 현재 터키의 에게 해안에 자리잡은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에서 선교하였다(사도 16, 8 ;20, 6-12). 바오로는 어느 날 밤 꿈에 마케도니아 사람이 나타나서 도와 달라는 하소연을 듣고, 에게 바다를 건너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의 항구 네아폴리스(Neapolis, 지금의 카발라)에 닿았다. 거기서 내륙으로 15km 떨어진 필립비로 가서 선교하였는데, 이것이 그리스에서의 첫 선교였다. 사도 행전 16장 13-15절은 바오로 일행의 선교 활동을 이렇게 적고 있다. "안식일에 우리는 성문 밖, (유대인들의) 기도처가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강가로 나갔다. 우리는 앉아서 모여든 부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리디아라는 한 부인이 있었는데 그는 티아디라 고을 출신으로 자색 옷감 장수였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부인이었다. 그가 (우리의 말을) 새겨들었으니, 주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바오로가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셨던 것이다. 리디아와 그의 집안은 세례를 받고 나서 청하기를 '제가 주님을 믿는다고 판단하시거든 제 집에 오셔서 머물러 주십시오' 하면서 우리에게 강요하다시피 권하였다." 바오로 사도가 선교할 당시의 필립비는 로마의 식민지로, 로마군에서 제대한 군인들과 로마에서 이주해온 농민들과 상인들이 모여 살던 이탈리아식 도시였다.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교 회당이 따로 없었던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되면 필립비 외곽으로 흐르는 지각티스 강가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예배 참석자들은 주로 부인들이었는데 사도 바오로는 이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여 예수의 비극적 죽음과 신비스런 부활을 알렸고, 이때 청중 가운데 리디아라는 부인이 가족과 함께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던 것 같다.
자색 옷감 생산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페니키아, 곧 현재 레바논의 띠로와 시돈이었는데, 리디아 부인의 고향인 티아디라도 바오로 시대 때에는 자색 옷감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당시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자색 옷감이 무척 값비싼 물건이었다. 뿔고등(murex brandais)으로 염색한 다음 다시 쇠고둥(purpura haemastoma)으로 이중 염색 한 자색 옷감이 당시 최고급 옷감이었고, 다음으로는 연지벌레나 꼭두서니 뿌리로 티아디라에서 염색한 진홍색과 양홍색 옷감이었다. 염색 천으로는 실크로드를 거쳐 온 비단이 으뜸이고 양털로 만든 모직은 그 다음이었다. 리디아는 고향에서, 때로는 띠로와 시돈에서 고급 자색 옷감을 수입하여 필립비 일대에 팔았을 것이다.
리디아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부인' 이었다고 한다. 이는 유대교로 입교는 하지 않았지만 유대교에 동조하는 부인이라는 뜻이다. 당시 그리스 신전에는 온갖 신상들이 모셔져 있었지만, 리디아는 그 어느 신상에도 끌리지 않고 얼굴도 형체도 없는 초월신 하느님께 이끌려, 안식일을 지키고 정결례를 행하며 금기 식품법을 지키고 십일조를 바쳤다고 생각된다. 그러던 중 안식일에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의 첫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리디아는 바오로 일행을 강요하다시피해서 자기 집에 모셨다고 한다(사도 16, 15). 바오로는 교우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또한 물욕 때문에 선교한다는 오해의 소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교우들로부터 물질적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스스로 천막 짜는 일을 해서 생활비와 선교비를 벌었으나(사도 18, 3), 필립비 교우들이 주는 물질적 도움만은 기꺼이 받아들였다(필립 4, 10-20 ; 2고린 11, 9). 그 필립비 교우들 중 사도 바오로를 물심 양면으로 도와 준 사람이 리디아가 아닌가 여겨진다. 1세기경에 순교하였다. 필립비 폐허를 찾아가 보면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지각티스 개울가에 그리스 정교회에서 1972년에 세운 리디아 경당이 있다. (→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 참고문헌  Ben Witherington Ⅲ , 《ABD》 4, pp. 422~423/ 미셀 클레브노, 《새로운 이야기 교회사 1-예루살렘에서 로마로》, 한국신학연구소, 1993, pp. 133~141. 〔鄭良謨〕
② 성녀. 축일은 3월 27일. 성녀 리디아는 하드리아누스(Hadrianus) 황제가 통치할 때인 121년에 원로원 의원 이었던 남편 필레(Philet)와 함께 일리리코(Illyrico)에서 순교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들 마세돈(Macédon)과 테오프레피드(Theoprépide) , 관리였던 암필로크(Amphilo-que) , 그리고 공증인이었던 크로니다스(Chomidas)와 함께 순교하였는데 이들 모두의 축일도 성녀 리디아와 같다.
※ 참고문헌  H. Leclercq, Dictiomaire d'archeologie chrétienne et de liturgie, vol. 11, Paris, Librarie Letouzey, 1934/ Les Bénédictins de Rams-gate(redigepar), Dix mille saints, Dictionaire hagiographique, Paris, Brepols, 1991/ 0. Englebert, Lafleur des Saints, Paris, Albin Michel, 1984/ M. Dubost et al., Théo, Paris, Droguet-Ardent · Fayard, 1992.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