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화가. 동판화가. 1591년 2월 발렌시아 근교 하티바(Jativa)에서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난 리베라는, 어 린 시절 발렌시아로 갔다가 그곳에서 리발타(F. Ribalta)의 제자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그의 초기 생애나 성격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롬바르디, 파르마 그리고 로마에 체류한 이후 1616년에 결혼하면서 나폴리에 정착한 그는 주로 나폴리에 있는 스페인 총독들이나 교회로부터 작품을 의뢰받았다. 자신의 고향 스페인에서 얻은 극적인 사실주의에 대한 관심은 그가 카라바지오(M. Caravaggio)를 추종하게 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카라바지오의 명암법을 효과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어두운 부분을 강조하고 강렬한 명암 대비를 특징적으로 보여 주는 한편, 베네치아파에서 배운 색채와 로마파에서 익힌 소묘 등을 숙달하였는데, 주로 종교화나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제작하였다. 이러한 양식으로부터 기인한 실재하는 물질성에 대한 강한 감각을 가지고, 인물의 성격 묘사보다는 부드럽고 순간적인 묘사가 필요할 때 리베라는 카라치(Carracci) 형제와 게르치노(Guercino)로부터의 영향을 받아들였다. 스페인의 예술을 고려해 볼 때, 그의 비개성적인 객관성은 벨라스케스(D.R. de S. Velazquez)와 비슷하며, 감성적인 해석 면에서는 무리요(B.E. Murillo)에 비교된다.
리베라는 또한 섬세함과 정확함을 가지고 회화적인 양식으로 작업했던 숙달된 동판화가였다. 그의 회화에서 보여지는 붓자국은 대담하고 힘차며, 조각적인 양감(量感)의 착시(錯視)를 위해 그는 물감을 매우 두텁게 칠하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또 회화와 동판화의 예술 형식을 통해 리베라는 도안가로서의 기교, 정적인 구도를 선호하는 경향, 주제에 따른 심리적인 변화 등을 보여 주었다. 그의 초기작으로 여겨지는 가장 유명한 작품 <성 바르톨로메오의 순교>(1630)는 카라바지오의 '바람개비' 구도에 기초하여 구성되었는데, 아직 성인의 살갖을 벗기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잔인함을 강하게 보여주는 격렬한 행동을 보여 주기 위해 정적인 면들은 절제되어 있다.
1626년 로마의 성 루가 아카데미 회원이 된 리베라는, 1631년 교황 우르바노 8세로부터 교황 훈장을 수여 받았다. 1640년대는 나폴리의 심각한 경제 피폐로 폭동이 이어졌고 사회적 불안정으로 인해 그에게 의뢰된 작품에도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때 그는 참회하는 외로운 성인들을 많이 그렸다. 이러한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리베라는 그 이전의 카라바지오 양식으로 되돌아가 평범한 유형을 그리는 대상으로 선택하였고, 주로 단독 인물들을 그렸기 때문에 군상은 거의 드물었다. 이러한 후기 작품들은 차분한 자세의 사실적인 인물들을 시적으로 인격화한 위엄 있는 비애감을 특징적으로 보여 주며 매우 신비하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 서명을 하고 일반적으로 자신의 국적을 명시하였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이탈리아어로 '작은 스페인 꼬마' (Lo Spagnoletto)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 같다. 1652년 9월 5일 나폴리에서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H.W. Janson, History of Art, New York : Harry N. Abrams, 3rd ed., 1986/ Encyclopedia of World Art, pp. 213~214. 〔鄭郎泳沐〕
리베라, 호세 데 Ribera, José de(1591~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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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성 바르톨로메오의 순교>(리베라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