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마카오 주재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 대표. 1805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사제 서품을 받고 1837년 동양 선교사로 임명되어 마카오의 극동 대표부에 도착하여 부대표로 활동하였다. 당시 이곳의 대표였던 르그레즈와(Legrégeois) 신부는 대표부 안에 임시로 조선 신학교를 세워 조선인 신학생 3명을 교육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경리부 부대표였던 리브와 신부는 1837년에 마카오에 유학 온 김대건(金大建), 최양업(崔良業), 최방제(崔方濟) 등 3명의 조선 신학생의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리브와 신부는 그들에게 주로 라틴어 · 프랑스어와 교리를 가르쳤다.
1841년 말 르그레즈와 신부의 후임으로 마카오 극동 대표부 대표가 되어 극동 지역에 파견된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었으며, 최양업과 김대건 신학생이 프랑스 함대에 승선하여 조선 입국로를 탐색하게 하였다. 1842~1846년에는 김대건 신부로부터 자신의 입국과 조선 교회의 어려운 상황을 알리는 12통의 서한과 1건의 보고서를 받았고, 최양업 신부로부터 4통의 서한을 받았다. 그는 이 서한에 담겨진 내용을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에 보고하는 한편, 조선에 입국하는 선교사들을 돕고 조선 전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리브와 신부는 르그레즈와 신부가 계획하였던 대표부 이전 작업을 추진하여 1847년에 홍콩으로 이전하였으며, 각 포교지에 대표부를 신설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1857년에는 싱가포르에, 1864년에는 상해에 새로운 대표부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1866년에 프랑스로 귀국하여 파리 외방전교회의 신학교 교장을 역임하였고, 로마에 있던 파리 외방전교회 대표부 대표로 활동하다가 1872년에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달레 교회사》 下/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 임충신 · 최석우 역주, 《崔良業神父書翰集》,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李裕林〕
리브와, 나폴레옹 프랑수아 Libois, Napoléon François(1805~1872)
글자 크기
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