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바 Lioba(?~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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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앵글로 색슨 여자 대수도원 원장. 축일은 9월 28일. 독일의 사도로 불리는 성 보니파시오(S. Bonifacius, 675~754)를 도와 독일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영국의 웨섹스(Wessex)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모에 의해 타넷(Thanet) 수도원에 맡겨진 리오바는, 후에 윔보른(Wimborne)의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종신 서원을 했다. 문학을 좋아하던 그녀는 보니파시오에게 시가 담긴 편지를 보내어 자신의 글을 다듬어 줄 것과,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병석에 있는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 뒤로 계속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 보니 파시오는 복음 전파를 위하여 수녀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리오바를 파견해 주도록 수녀원에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리오바, 데클라(Thecla), 왈부르가(Walburga)를 포함하여 30명의 수녀들이 보니파시오가 있는 마인츠로 파견되었다.
735년 그곳에서 비쇼프스하임(Bischoffsheim) 수녀원 원장이 된 리오바는, 이 수녀원을 모태로 독일에 다른 수녀원들도 세웠다. 교부들과 공의회의 가르침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지식을 가진 리오바는, 동료 수녀들을 대할 때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으며 언제나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였다. 먼저 실천하지 않고는 가르치지 않았기에 모든 수녀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며, 그의 지도를 받은 수녀들 중 다른 수녀원의 원장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또한 그녀는 성서 읽기를 즐겨하여 항상 성서를 지니고 다녔다. 뛰어난 학덕뿐 아니라 관대함, 명랑한 성품 등 타고난 교육자의 자질을 갖춘 리오바는 두 번이나 뚜렷한 기적을 행하였는데, 하나는 큰 화재가 리오바의 기도로 즉시 진화되었고, 또 하나는 큰 폭우가 닥쳐와 일대 혼란이 일어났을 때 그녀가 성당 현관에서 십자가를 긋자 즉시 바람이 멈추고 무사하였다는 것이다.
리오바 수녀의 명성이 점차 커지면서 초기 카롤링거 왕실은 그녀를 매우 존경하였는데 특히 카알 대제의 왕비 힐데가르트(Hildegad)는 그녀를 자주 왕궁으로 초대하였다. 왕비는 리오바에게 궁전에서 함께 생활하기를 청하였으나 조용한 수도 생활을 원한 리오바는 이를 사양하였다. 마지막 이별 때에는 "그리운 언니라고도 말씀을 올릴 전하! 아무쪼록 평안하시옵소서! 공심판 때에 다시 만나 뵈옵겠으나 그때에 서로 부끄럽지 않게 만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 많이 기도합시다" 하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보니파시오의 후계자 마인츠의 룰(Lull)은 보니파시오가 죽은 후에도 그녀를 계속 돌보아 주었으며, 여자들은 들어갈 수 없는 풀다(Fulda)에 그녀만은 들어가서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782년 9월 28일 마인츠 근처 쇼른스하임(Schornsheim)에)에서 사망하여 풀다에 안장되었다.
조국을 떠나 독일로 가서 수녀원을 창립하고 이교도의 선교에 일생을 바쳤으며, 반드시 실천한 후에야 가르친 리오바 성녀는 복음 전파에 힘을 다하고 믿음을 실천하는 신앙인의 모범이 되고 있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 15).
※ 참고문헌  김정진 역, 《가톨릭 성인전》 상, 가톨릭출판사, 1987/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 J.L. Druse, 《NCE》 8, pp. 782~783. 〔宋炯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