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해석학적 현상학의 시도자. 1913년 프랑스 발랑스(Valence)에서 태어나 파리 대학과 낭트 대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벨기에의 루뱅 대학과 미국의 시카고 대학에서 객원 교수로 강의하였다. 현재 파리 대학과 시카고 대학의 명예 교수로 있으나 거의 은퇴 생활에 들어가 있다. 그는 왕성하게 활동할 때, 사르트르적 무신론의 기관지인 《현대》(Les Temps moderns)와 맞섰던 가톨릭 계통의 잡지 《정신》(L'Esprit)의 편집진으로서 그리스도교적인 사상을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젊은 시절 그에게 철학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는 독일의 후설(E. Husserl)과 야스퍼스(K. Jaspers) 그리고 프랑스의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 등이었다. 이런 영향을 고려해 보면, 그는 젊은 시절부터 현상학과 실존주의,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사상에서 그의 철학적 사고를 성장시켜 왔음을 알 수 있다. 리쾨르는 프로테스탄트 신자이다.
〔사 상〕 배경 : 초기의 이러한 철학적 영향에서 그가 독창적인 철학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그의 주저 《의지의 철학》(Philosophie de la volonté, 1950)과 3부작인 《의지와 무의지》(Le Volontaire et L'involontaire) 《과오를 범하는 인간》(L'Homme faillible), 《악의 상징》(La Symbolique du mal)이 출간된 이후부터이다. 리쾨르의 방법론은 후설의 현상학에서 출발하였지만, 그는 단순히 후설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는 이미 《의지의 철학》 제1부를 내놓으면서 후설의 현상학을 수정하기 시작하였다. 후설의 현상학은 의식학의 성격은 강하지만, 의식이 침투하지 못하는 탄생 · 죽음 · 무의식 · 고통 · 악 등에 대한 철학적 사고가 없다. 리괴르의 철학은 의식의 자유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필연의 영역과 의식의 자유가 어떻게 서로 봉합선을 형성하는가 하는 관점을 다룬다. 다시 말하자면 의식의 자유와 지향성(志向性, intentionalität)이 어떻게 무의지적인 필연의 세계와 만나게 되는가를 해명하는 데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데카르트의 '코지토' (cogito, 나는 생각한다) 철학처럼 자기 자신에 대하여 완전히 투명한 존재 양식을 갖고 있지 않다. 즉 인간은 자아의 투명한 의식의 반성으로 자신을 온전히 관리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직접적인 의식과는 무관하게 역사나 문화의 전통과 의미로부터 무수히 많은 간접적 메시지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은 외부 세계가 보내는 암호나 기호의 해독 없이 스스로 의식 활동으로 자기 자신을 해석해 나갈 수 없다. 인간은 자족적인 '코지토' 가 아니고 외부 세계와 얽힌 '화신적 존재' (l'étreincarné)이다. 예컨대 인간이 자의식을 소유하기 전에 그는 이미 언어 활동의 세계 속에 던져졌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의식은 데카르트의 내면적 직관법에 의해서 해석될 수 없고, 의식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무수한 상징들과의 간접적 · 우회적 · 복합적인 다양한 교섭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꿈꾼 무전제의 학문, 무가정의 학문이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의식학에서 말하는 정합성이나 의미의 발견은 의식의 소유나 출발점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징들의 복합적이고 간접적이며 우회적인 여건들을 해석한 다음에 결과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쾨르의 사상 안에서 '최초의 진리' 나 '절대적 지식' 이나 '선험적 투명성'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현상학과 해석학을 결부시켜 의식의 한계와 불투명성을 조명하는 새로운 해석학적 현상학을 시도하였다.
해석학적 현상학 : 리쾨르는 후설 현상학이 추구하여온 '지식의 궁극적 기초' 와 같은 개념을 버린다. 그는 후설이 그런 이념에 매달렸기 때문에 관념론에 빠지고 말았다고 비판하면서 현상학은 해석학의 보완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야만 현상학은 관념론적 절대지(絶對知)의 추구를 버리고 삶의 현장인 체험의 세계, 역사의 세계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체험된 삶의 세계는 역사와 언어 활동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개인의 주관적 의식 활동보다 앞서 존재해 왔고, 모든 해석의 세계는 언어에 의한 해석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리쾨르의 해석학적 현상학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 구조주의 언어학마저 포괄하게 된다. 해석학이 언어를 중시함에 따라서 리쾨르의 철학은 언어의 다의미성(la polysémie)에 중요성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순간에 이미 우리는 세계를 그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세계는 언어나 문자처럼 하나의 투명한 의미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비유나 상징, 은유, 신화, 유비 등과 같은 전의(轉義)로 해석된다. 그래서 해석학은 그런 다의미적인 전의의 뜻을 텍스트에서 해석하고 밝히는 역할을 한다. 모든 텍스트는 글자 그대로의 표피적 의미와 속에 숨어 있는 전의적 의미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는데, 텍스트의 해석도 이 두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리쾨르의 해석학에서 표피적 의미를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텍스트는 저자가 가졌던 삶의 체험과 직결된다. 이 점에서 리쾨르는 텍스트를 저자의 실존적 삶과 결부시키기를 거부하는 구조주의와 해체주의의 텍스트 이론을 거부하고 있다. 예컨대 그리스 비극의 텍스트는 분명히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생활 경험과 관계가 있다. 그런 경험을 리쾨르는 일차적 경험의 장(場)인 '현실 세계' (Umwelt)라 부르고, 그것을 이차적 경험의 장인 '상징 세계' (Welt)와 구분하고 있다. 모든 텍스트의 해석은 체험적이고 상황적인 '현실 세계' 에서 초시간적이고 초공간적인 '상징 세계' 로의 전이에서 가능해진다. 그리스 비극이 상징 세계로 전이될 때 그것이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도 살아 숨쉬는 상징이 된다. 그리고 상징을 해석하는 의미도 다의미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언어 자체가 다의미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유일무이한 절대적 진리만을 상정하는 철학은 허위 의식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
에서 리쾨르 철학의 기본은 우상과 허위 의식을 파괴하고 상징의 진리가 다의적으로 말하게 하는 것을 돕는 데 있다.
그래서 리쾨르는 여러 역사적 문헌에 숨어 있는 상징을 찾아간다. 예컨대 서양 문화의 이해를 위하여 성서적 상징의 해독은 필수적이다. 성서의 텍스트도 모든 상징 언어처럼 일의적(一義的)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되고, 먼저 다의적으로 의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에 의하면, 창세기는 신화이다. 창세기를 유일무이한 역사의 인과법칙처럼 해석하는 것은 허위 의식이다.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였고,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인간이 결과적으로 낙원에서 추방되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문자 그대로 표피적인 해석을 내려서는 안된다. 리괴르에 의하면 창세기의 신화는 인간이 본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탁월한 상징 체계라는 것이다. 즉 이런 원인 때문에 저런 결과가 야기된 일의적 해석으로 종결시켜서는 안된다. 창세기 신화는 본디 인간이 이중적이고, 근원적으로 선하면서 동시에 악하다는 인간 존재의 자기 분열을 비유하는 상징을 말하는 텍스트이다. 일의적인 인과율로 설명하면, 하느님이 낙원에 사탄의 상징인 뱀을 창조한 사실은 합리적 반성에 의해서는 전혀 설명이 될 수 없다. 종래의 신학 이론처럼, 그것을 인간이 알 수 없는 신의 신비라고만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허위 의식이요 우상 숭배와 다를 바가 없다. 그에 의하면, 뱀은 아담과 이브를 창조한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된 사탄이 아니라, 아담과 이브의 또 다른 자아, 즉 아담과 이브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아담과 이브가 인간의 '코지토' · 자유 · 의지의 상징이라면, 뱀은 인간의 타아(他我, alter-ego)로서, 의지의 자유 · 코지토의 반성이 쉽게 침투할 수 없는 무의지 · 운명 · 무의식의 상징이다. 즉 인간은 아담과 이브인 한에서 모두가 근원적으로 선하고, 뱀인 한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다. 인간은 처음부터 깨어진 존재이고 갈라진 틈이다. 창세기 신화는 인간의 역사와 세계가 본질적으로 깨어져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리괴르의 해석학적 현상학은 역사에서 텍스트를 통해 나타난 인간이 결국 욕망의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 (Le désir d'être)이 모든 인간 드라마의 복합 주제라는 것이다. 이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 이 자기 뜻을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기에 이 욕망의 은닉과 개시(開示)를 밝히는 해석학이 철학의 과제가 된다. 그러나 그런 해석학은 의식의 체험이 객관화된 제도와 문화적 기념물과 작품을 통하며, 나의 밖에 있던 것이 나의 의식의 코지토와 이성에 의하여 의미화되고 자기화 되는 것이기에, 이것은 현상학의 새로운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역사적 제약 속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절대자에 대한 모든 철학적 요구는 거짓 신화이기에 그 거짓 신화는 풀려져야 한다. 절대적 진리와 지식이 불가능하기에 해석상의 갈등은 극복될 수 없다. 리쾨르는 이것이 인간 철학의 운명이라고 제시한다. (→ 해석학)
※ 참고문헌 P. Ricoeur, Gabriel Marcel et Karl Jaspers, Paris, Temps Présent, 1948/ 一, Le Conflit des Interpretations, Essai d'Herméneutique I~II, Paris, Seuil, 1969, 1986/ -, Philosophie de la volonté I~II, Paris, Aubier, 1950/ 一, Temps et Recti I~III, Paris, Seuil, 1985. 〔金炯孝〕
리쾨르, 폴 Ricoeur, Paul(1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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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