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화가. 1457년 프라토(Prato)에서 화가인 필리포 리피(Filippo Lippi)와 루크레치아(Lucrezia)의 아들로 태어나 1467년부터 아버지 필리포와 함께 스폴레토(Spoleto) 성당의 벽화 제작에 종사하였다. 1469년 부친 사망 후 1472년까지 보티첼리(S. Botticelli)로부터 사사를 받으면서 세밀한 선묘화적인 화풍을 습득한 그는, 1480년경부터 색채의 보다 정서적인 작풍을 확립하여 <성 베르나르도의 환상>과 같은 작품을 남겼다. 보티첼리의 선적인 표현성과 감미로운 감각을 필리피노 자신이 보다 대담하게 발전시킨 것을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데, 그의 탁월함은 제단화나 초상화보다도 주로 프레스코 벽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1481 ~ 1483년에는 피렌체에 있는 카르미네(S. Mariadel Carmine) 성당의 브란카치(Brancacci) 경당에 마솔리노(Masolino)와 마사치오(Masaccio)가 시작해 놓았던 베드로의 일생을 담은 프레스코 벽화를 완성하였는데, 이 작품에서 필리피노는 두 거장의 양식상의 특성을 충실하게 모방하면서도 자신의 스승이었던 보티첼리와 아버지 프라 필리포의 장식적인 선묘적 양식을 효과적으로 병행하여 양감을 표현하였다. 또한 새로이 사도 행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3매의 벽화를 추가하여 그렸다. 1488~1493년에는 카라파(Oliviero Caraffa) 추기경의 요청을 받고 로마로 가서 미네르바(S. Maria sopra Minerva) 성당의 카라파(Caraffa) 경당의 벽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를 담은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그의 자유 분방한 화법과 힘찬 역동성이 돋보이는 수작으로, 그 이전까지의 보티첼리와 프라 필리포로부터의 강한 영향 아래서 작업했던 것과는 다른 경향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의 대표작은 피렌체에 있는 마리아 노벨라(S. Maria Novella) 성당의 스트로치(Strozzi) 경당에 그린 '필립보와 요한의 생애' 를 담은 프레스코 벽화(1487~1502)이다. 필리피노의 후기 양식의 가장 복합적이고 의미 있는 측면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은 풍부한 상상력으로 세심하게 세부까지 그려 낸 고전적인 건축물, 깊이 있는 구성, 설
득력 있게 묘사된 움직임, 생생한 색채 등으로 전성기 르네상스의 기념비적인 웅장함을 무색하게 한다. 사실 아버지 프라 필리포와 보티철리 아래서 교육을 받은 필리피노는 자연스럽게 선(線)을 자신의 주된 표현 수단으로 삼았는데, 로마에 가서 작업을 하는 동안 자신이 닦아온 기법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듯하다. 그가 카라파 경당에 그린 벽화에 그의 이러한 개인적인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 그 후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 필리피노는 보티철리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여러 조각가들을 참고하게 되었으며, 북유럽 화가들에게서 보여지는 고양된 정서의 표현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과거의 미술과 자신의 당대의 미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 사이에서 고민하였던 최초의 작가들 중 한 사람이라는 면에서 그의 미술사적 중요성을 거론할 수 있다. 비록 그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만한 새로운 표현 양식을 구축해 내지는 못하였으나 그의 이러한 감수성이 그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1504년 4월 18일 후두염으로 피렌체에서 사망하였다. (→ 리피, 프라 필리포)
※ 참고문헌 The Illustrated Library ofArt -Part I, p. 8271 The Ency-clopedia of World Art, pp. 261~265. 〔鄭泳沐〕
리피, 필리피노(소 필리피) Lippi, Filippino(1457~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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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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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피노가 완성한 카르미네 성당의 브란카치 경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