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Μανιχαίος, Μανιχαίος, Manichaeus)에 의해 3세기경 페르시아에서 창시된 종교. 이원론적 교리, 철저한 조직과 제도 그리고 의욕적인 선교 활동 등으로 동서양에 두루 걸쳐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마니교는 그리스도교의 한 이단이 아니라 독자적인 종교였다. 하지만 혼합주의(sincretism) 성향 때문에 그리스도교적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으며 또 그리스도교 지역 안에서 번창하였기 때문에 교부들의 반(反)이단 문헌들에 자주 거론되었다.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마니와 마니교〕 창시자 마니는 216년 4월 14일 페르시아 제국의 바빌로니아 남부 지방(지금의 이라크) 나르쿠
타(Nahr Kuta)에서 아버지 파타크와 어머니 마리암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아마도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종교에 관심이 많던 그의 아버지는 마니가 4세 때 메세니아로 이주하여 세례파에 가담하였다. 육식과 술과 결혼을 금하고 매일 정결 예식을 하도록 가르치는 이 세례파는 유대계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로서 일체사이파(Elcesaiti)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마니는 두 차례에 걸쳐 계시를 받음으로써 독자적인 교리를 확립하였다. 마니가 12세 되던 228년 4월 1일 "빛의 세계"의 왕으로부터 파견된 천사 즉 천상에 있는 자신의 다른 자아(自我 : alter ego : al-tawn=쌍둥이)로부터 첫 번째 계시를 받았는데, 그 공동체를 떠나되 나이가 들때까지는 그 출발을 미루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240년 4월 19일에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빛과 구원의 전달자로 선포하라는 두 번째 계시를 받았다. 이제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된 마니는 바다를 통해 인도로 가서 약 2년 간 머물면서 불교를 접하였고, 242년 봄 페르시아로 돌아와 새로 왕이 된 샤푸르 1세(Shapur I)를 만나 제국 안에서 새로운 종교를 전파할 수 있는 허락을 얻었다. 이로 인해 마니교는 페르시아 제국의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와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256년 페르시아가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였을 때 샤푸르 왕이 그를 대동하였기 때문에 마니교는 로
마 제국, 특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까지 침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마니교는 그리스도교의 요소, 특히 그리스도교적 그노시스주의의 요소를 수용하였다. 후기 전승에 의하면, 마니는 직접 인도와 티베트와 중국에까지 가서 선교하였다고 한다. 마니는 샤푸르 왕의 치세 30년 동안 도처에 선교사를 보내어 교세를 확장하였다. 샤푸르 왕이 죽고 뒤를 이어 273년 4월에 등극한 그의 아들 호르미스다스(Hormisdas)는 마니교를 보호하였지만, 이듬해 4월에 왕권이 그의 동생 바흐람 1세(Bahram I)에게 넘어가자 상황은 급변하였다. 페르시아의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지도자들로부터 이단자로 고발되어 왕 앞에서 단죄를 받은 마니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 다음 군데사푸르(Gundeshapur)의 감옥에 갇혔다. 이미 60세가 된 그는 손발과 목이 사슬에 묶이어 26일 동안 혹독한 문초를 받은 다음 참수되었다. 마니교에서는 이 26일 간의 수난을 "선각자의 수난" 또는 "십자가 처형"이라고 부른다.
〔교 설〕 마니는 자신을 하늘로부터 인간에게 보냄을 받은 사자(使者), 즉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조로아스터, 석가모니, 예수로 이어져 내려오는 계시의 전달자들 중에 마지막 사자라고 하였다. 마니의 이러한 자아 인식은 그가 성장하고 여행하고 접촉한 여러 종교와 연관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마니교가 기존 종교 안에 뿌리를 내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마니교의 교리 안에는 유대-그리스도교적 요소와 인도(불교)-이란(조로아스터교)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니교가 네 종교의 요소들을 순전히 모자이크식으로 꿰어 맞춘 혼합 종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마니가 어려서부터 접촉한 세례파는 2세기의 그리스도교적 그노시스주의였던 마르치온 이단과 발데사네 이단과 연관이 있었다. 따라서 마니의 사상 체계는 그노시스주의처럼 존재론적 이원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마니는 인간이 살고 있는 현세에 내재하는 악과 갈등들에 주목하고, 그 원인을 찾으려 하였다. 인간은 자신이 육신과 시간과 세상 속에 노예처럼 속박되어 있음을 절감하고 이런 것들로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이러한 갈망은 인간이 원래 본질적으로 현재의 상황과는 달리 우월한 존재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과 진리의 하느님은 악과 인간의 고통을 원할 리 없기 때문에 세상의 악은 선한 신에 대립되는 다른 원리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현재의 육신과 물질 세상에 감금되어 있는 본래의 자아가 초월적인 빛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 영혼은 빛의 세계의 신적 본질을 나누어 가지고 있으며 지상 세계에 내려온 신의 일부이기에, 신은 자신의 일부인 인간 영혼을 육신에서 해방시켜 구원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혼은 신과 동일한 본질이기 때문에 신은 결국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고, 따라서 신은 구원자이며 동시에 구원받는 자(salvator salvatus)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구원받은 요소는 인간 영혼이고, 구원하는 요소는 '영' (spiritus)또는 '누스' (νοῦς, 이성)라 부른다. 인간 영혼을 '누스'와 연결시켜 주는 것을 '그노시스' (γνῶσις, 靈知)라고 하며, 이 그노시스를 통해 영혼은 자신이 원래 어디에 무엇으로 있었는지, 왜 타락하여 지금의 상태로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마니는 영혼의 타락과 구원의 과정을 역사의 3단계 즉 태초, 중기, 말기로 설명하는데 다분히 신화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태초에 두 개의 대립적 본질인 절대적 선(善)과 근본적 악, 즉 빛과 어두움이 있었다. 이 두 본질은 모두 창조되지 않고 영원하며 동등한 것으로 서로 분리되어 자기 영역에 존재하는데, 선과 빛의 영역은 북쪽에, 악과 어두움의 영역은 남쪽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빛의 영역은 "빛의 아버지" (Pater lucis)에 의해 다스려지고, 어두움의 영역은 "어두움의 왕" (Princeps tenebrae)에 의해 다스려진다. 빛의 왕국은 신적 빛의 다섯 아들(또는 다섯 요소들)인 지성, 사고, 반성, 의지, 이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수많은 에온(aeon, 魂)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악의 왕국은 어두움의 다섯 아들인 짙은 안개, 태워 없애는 불, 파괴적인 바람, 혼탁한 물, 심연의 어두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각기 수많은 생물들로 가득 차 있는 지옥층을 관장하는 "우두머리"(Archon)들이다. 어두움의 세계는 무질서와 어리석음과 혐오와 악취로 가득 차 있으나 빛의 세계는 평화와 이해와 순결과 사랑으로 충만해 있다는 것이다.
서로 엄격하게 분리되어 존재하던 두 세계의 균형은 어두움이 빛의 왕국을 침입함으로써 깨어지고, 이때부터 역사의 중기(中期, medius)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 세상은 바로 이 중기에 속해 있다. "빛의 아버지"는 "생명의 어머니"를 통해 "최초의 인간"을 유출해 내어 어두움의 세력을 거슬러 싸우고자 하였다. 최초의 인간은 영혼 즉 빛의 요소들인 빛, 바람, 불, 물, 공기로 무장하여 지옥의 심연으로 내려갔지만 악의 세력들이 그를 멸망시키고 그의 영혼을 삼켜 버렸다. 이리하여 빛의 요소들이 어두움과 혼합되어 물질 안에 갇히게 되었고, 최초의 인간이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일곱 번 외치자 그 소리가 빛의 세계에 다다랐다. 빛의 아버지는 어두움의 세력에 감금되어 있는 최초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의 어머니를 통해 "생명의 영" ( '위대한 건축가' 또는 '데미우르고스' 라고 불림)을 창조해 냈다. 이 생명의 영은 그의 다섯 아들과 함께 어두움의 세계 경계선에 이르러 갇혀 있는 최초의 인간을 소리쳐 불렀다. 물질의 독으로 잠들어 있던 최초의 인간은 이 소리를 듣고 깨어나 응답하였고, 빛의 세계의 두 실체 사이의 이 부름과 응답은 구원의 원형이 되었다. 즉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구원의 메시지가 주어져야 하고 그 다음 자신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생명의 영' 은 최초의 인간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그를 빛의 낙원으로 다시 인도하였다.
그러나 최초의 인간은 그의 영혼 즉 빛의 요소들을 함께 데리고 나오지는 못하였다. 이들을 구원하는 임무는 역시 생명의 영에게 맡겨졌는데, 그는 어두움의 우두머리들을 벌하고 그들을 가두어 둘 감옥을 만듦으로써 빛의 요소들을 해방해야 한다. 그래서 생명의 영은 우선 어두움으로부터 빛을 빼내어 해와 달을 만들어 인도자로 삼았고 어두움의 우두머리들의 피부를 벗겨 열 개의 궁창을 만들었다. 또 그들의 뼈로 산을 만들고 그들의 살과 배설물로 여덟 지역으로 된 땅을 만들었다. 이로써 열 개의 하늘과 여덟 개의 지역으로 된 세상이 생겨났는데, 빛과 어두움은 아직 그 안에 섞여 있다. 한편 세상에 있는 빛의 분자들을 어떻게 해방하느냐가 문제이다. 빛의 아버지는 이를 위해 "셋째 사자(使者)" (Tertius Legatus)를 만들어 내는데, 이 셋째 사자는 빛의 열두 처녀들의 아버지이다. 그는 하늘에 세 개의 수레바퀴를 만들고, 빛의 처녀들이 어두움의 우두머리들을 유혹하게 하였다. 어두움의 우두머리들은 남성과 여성으로 되어 있는데, 빛의 처녀들은 남성 우두머리들에게는 여성의 몸으로, 여성 우두머리들에게는 남성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들을 유혹하였다. 욕정에 못 이긴 남성 우두머리들로 하여금 사정(射精)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삼켰던 빛의 요소들을 정액과 함께 땅에 쏟아 놓도록 하였는데, 이 정액들은 나무가 되었다. 욕정에 못 이긴 여성 우두머리들은 유산하게 되었는데, 유산된 자식들은 나무의 싹들을 삼킴으로써 정액과 함께 방출된 빛의 요소들을 융합시켜 더욱 많은 악마들을 번식시켰다. 어두움의 왕은 남성 우두머리인 아사클룬(Ashaqlun)과 여성 우두머리인 남라엘(Namrael)을 시켜 빛의 요소들이 들어 있는 악마들을 잡아 삼키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들 안에 빛의 요소들이 증가하게 되자 성교(性交)하여 아담과 하와를 낳았으며, 이들이 인류의 원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어두움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그들 안에는 빛의 요소가 들어있다. 셋째 사자는 인간 안에 있는 빛의 요소들을 구원하기 위해 구원 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어두움의 세력들은 이를 저지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예언자들이 나타나 우주의 비밀과 구원의 신비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으며, 세 분의 위대한 사자(조로아스터, 석가모니, 예수) 다음에 마니가 와서 최종적으로 우주의 기원과 종말에 대해 가르치고 빛의 교회를 세웠다. 인간이 자기 영혼의 신적 기원을 깨닫고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할 때 그 영혼은 빛의 세계로 가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영혼들은 다른 육신 안에 다시 태어나는 윤회(輪廻)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윤회는 어느 때에 끝나게
되는데 이에 앞서 묵시적인 재난과 최후의 심판이 있게되고, 마지막 빛의 분자가 구원을 받은 다음에 세상은 1,468년 동안 불타게 될 것이며, 물질은 악마와 함께 광대한 지옥에 갇히게 된다. 이로써 빛과 어두움 사이의 완전한 분리가 이룩되어 태초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제3의 시기인 말기(末期)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계율과 종교 의식〕 존재론적 이원론에 기초를 둔 마니교는 육신과 물질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배격하였기 때문에 신도들에게 결혼과 출산, 경작과 추수, 육식과 음주를 금하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처럼 엄격한 규율을 똑같이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니교는 신도들 중에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만이 이런 규율들을 다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니교 공동체는 규율을 엄격히 지키는 '선민들' (elect)과, 노동과 자선을 통해 이들 선민들을 뒷받침하는 '청중들' (auditores) 또는 '입문자들' (cathechumenes)이라고 하는 대중들로 나누어진다. 선민들은 세 가지 봉인(signaculum)이라고 하는 절제 생활을 한다. "입의 봉인"은 육식과 음주를 피하는 것이고, "손의 봉인" 은 노동을 피하고 식물이나 동물을 죽이지 않는 것이며, "마음의 봉인"은 마음의 순결을 보존하고 성적 접촉을 피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일체의 부(富)와 소유 그리고 직업이 금지되었고 매일 채식 한끼와 1년에 새 옷 한 벌만 허용되었다. 선민들은 경작이나 추수, 또는 빵 반죽이나 굽기를 할 때 빛의 분자를 손상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청중이 그들의 식사를 준비하도록 하였다. 선민들은 교리를 설파하고, 악마를 대항할 의무를 지녔다. 마니교의 교계 제도는, 마니의 후계자인 한 으뜸(ἀρχηγός) 밑에 스승, 주교, 사제, 증거자 순으로 되어 있다. 이들은 일요일에 정규적으로 예배를 바치고 그 외의 여러 축일을 지냈으며, 만찬 예식 · 도유 예식 · 목욕 예식 등을 하였는데, 이에 관한 사료들이 부족하여 예식의 정확한 절차를 규명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청중들은 결혼을 하고 노동을 하며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며, 이들의 중요한 종교적 임무는 선민들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마니교의 가장 중요한 종교 의식은 기도와 자선과 단식이다. 기도는 모든 마니교도들에게 엄격히 규정된 의무이다. 선민들은 하루에 일곱 번 기도하고 청중들은 네 번 기도하는데, 기도하는 시간에 따라 해나 달을 향해 엎드려 기도한다. 자선은 청중들이 선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행위인데, 그 보답으로 죄의 용서를 받는다고 한다. 단식은 낮 시간에 식사하지 않고 일몰 후 저녁에만 식사하는 것을 말하며, 선민들은 일요일과 월요일마다 단식하고 청중들은 일요일에만 단식한다. 그리고 마니교의 가장 큰 축일인 마니의 수난일을 기념하는 베마(Bema) 축일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은 축일 전 한 달 간 단식해야 한다. 단식을 하는 날에는 청중들도 성생활을 피하고 육류와 생선을 먹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교 사이의 대립〕 마니교의 고유 문헌들과 사료들은 주로 20세기에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19세기까지 마니교에 관한 유일한 사료들은 대부분 간접적이고 불완전하고 때로는 편파적인 것뿐이었다. 왜냐하면 이들 사료들은 마니교를 배격하고 논박하는 글들로서, 그리스 철학자들과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저서에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샤푸르 왕이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였을 때 함께 종군하였던 마니에 의해 메소포타미아의 로마 통치 구역에 침투되었던 마니교는, 그 후 마니교 선교사들에 의해 시리아와 이집트에까지 전파되었다. 특히 그리스도교적 그노시스주의가 성행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이원론에 근거를 둔 기본 교리의 유사성으로 인해 그노시스주의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 효과적인 선교 활동으로 인하여 마니교는 나일 강 유역을 거쳐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전파되어 나갔다. 적대 국가의 종교가 로마 제국 안에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에 위협을 느낀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는 마니교를 불법적인 종교로 탄압하였으며,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들 특히 리코폴리스의 알렉산델, 암모니우스, 요한 필리포네, 심플리치우스 등이 마니교를 논박하는 글을 썼다. 한편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도 마니교는 매우 위험한 존재였다. 그들은 구약과 신약을 언급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하느님의 사자로 전하였기 때문에 신자들을 크게 혼동시켰다. 사실 그리스도인들 중에 마니교로 넘어가는 일이 많이 생겨났으며, 성 아우구스티노도 청년 시절 한때는 마니교에 심취한 적이 있다. 그래서 교회의 교부들은 마니교를 이교(異敎)로서보다 그리스도교적 이단으로 여겨 논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스 교부로는 보스트라의 티토, 예루살렘의 치릴로, 드무이스의 세라피온, 키프로스의 에피파니오, 키프로스의 테오도레트, 안티오키아의 세베로 등이 있고 라틴 교부들로는 마리오 빅토리노, 에
보디오, 레오 대교황,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등이 있다. 특히 아우구스티노는 마니교의 교리를 예리하게 분석하여 논박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마니교는 국가와 교회로부터 집중적인 탄압과 공격을 받아 5세기 말엽에 이르러 서방 교회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6세기에는 동방 교회에서도 거의 사라졌다. (→ 그노시스)
※ 참고문헌 A.V. Williams Jackson, Researches in Manichaeism, New York, 1932/ H. Ch. Puech, Le Manicheisme, son fondateur, sadoctrine, Paris, 1945/G. Widengren, Mani und der Manichäismus, Stuttgart, 1961/ C. Riggi, Epifanio contro Mani, Roma, 1967/ M. Tardieu, Le
Manicheisme, Paris, 1981. 〔李瀅禹〕
마니교 - 敎
〔그〕Μανιχαίος · 〔라〕Manichaeismus · 〔영〕Manichae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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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마니교의 경전 일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