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레스카, 프란체스코 Maresca, Francesco(1806~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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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강남(江南) 대목구장. 나폴리의 성가정회(Con-grégation dela Sainte Famille de Naples) 회원.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중국 성은 조(趙). 1806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840년 중국에 입국하여, 호광(湖廣, 현재의 湖南省 · 湖北省)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1846년 3월 강남 대목구장 베시(Louis-Thiéodore de Bési, ?~1871) 주교에 의해 보좌 주교로 임명되어 이듬해 성령 강림 대축일에 금가항(金家巷) 성당에서 주교로 성성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베시 주교가 로마로 떠나고 1848년 6월 3일 대목구장직을 사임하자, 이를 승계하였다.
마레스카 주교는 1849~1850년 수재(水災)로 인한 기근과 전염병 만연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도적의 창궐은 지역민만이 아닌 선교사들에게도 많은 고통을 주었다. 또 1849년 5월 정부에서 중국인과 외국인과의 접촉을 금지시킴으로써 전교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1851년에는 태평 천국(太平天國)의 난으로 신자들과 선교사들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면서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구호 사업을 전개한 마레스카 주교와 선교사들은 여러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토산만(土山灣)에 고아원을 세웠으며, 주교좌 성당이었던 서가회(徐家匯) 성당에 소신학교인 서가공학(徐家公學)을 세워 사회 사업과 교육 사업을 전개하였다. 특히 마레스카 주교는 1848년에 신설된 서가회 신학원(徐家匯 神學院)에서 예수회 신학생들과 함께 신학 공부를 하고 있던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부제에게 1849년 4월 15일 부활 제2 주일에 사제 서품을 줌으로써 한국 교회와도 관계를 갖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교를 위해 노력하던 마레스카 주교는 1853년 건강이 악화되어 그 해 4월 영국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이후 그는 중국인 사제 양성 신학교인 나폴리의 성가정 학교(Collége de la Sainte Faille de Naples)에서 요양하면서 건강을 회복하였으며, 1855년 8월에는 포교성성(현 인류 복음화성)에 강남교구의 분할 등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강남교구의 발전과 유익을 위해 노력하다가 그 해 11월 2일 나폴리에서 사망 하였다.
※ 참고문헌  史式徽 《江南傳教史》, 1卷, 上海譯文出版社, 1983/ L. Wei Tsing-Sing, La politique missionnaire de la France en Chine 1842~1856, Paris, Nouvelles Éditions Latines, 1960.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