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가리타, 스코틀랜드의 Margaret of Scotland(1046~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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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축일은 11월 16일. 1046년 헝가리의 레스카(Reska)에서 앵글로 색슨 왕조 최후의 왕 에드워드 애틀링(Edward Atheling)과 헝가리의 왕비 아가다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큰삼촌인 증거자 에드워드의 궁정에서 보냈다. 언니인 크리스티나가 수녀원에 들어간 뒤, 1066년에 부왕이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 노르망디의 월리엄(William) 대공이 쳐들어왔다. 이때 벌어진 헤이스팅스(Hastings) 전투에서 패한 후 그녀의 가족들은 헝가 리로 피난을 가려고 했지만 배가 표류하여 스코틀랜드에 도착했다. 이때 스코틀랜드의 왕 말콤 3세(Malcolm Ⅲ) 는 마르가리타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고, 그녀의 인품과 선행에 반한 왕과 결혼하였다. 왕비가 된 마르가리타는 여섯 명의 왕자와 두 명의 공주를 낳고 직접 훌륭하게 교육하였는데,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1세(David 1)가 바로 그녀의 아들이다. 마르가리타는 말콤 왕과 란프랑크(Lanfranc)의 도움을 받아 일련의 교회 개혁을 시작하여 스코틀랜드의 종교와 문화 등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녀는 던펌린(Dunfermline)에 성삼위(Holy Trinity) 대수도원을 세우는 일과, 이오나(Iona)를 비롯한 다른 켈트 교회들을 복구하는 일을 후원하였고, 개인적으로는 병자와 빈민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다. 마르가리타는 고아 9명과 빈민 24명에게 식사를 제공하지 않고서는 자신도 식탁에 앉지 않았다고 한다. 왕비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겸손된 마음으로 국모로서의 책임을 다한 마르가리타는, 남편에 대해서는 정숙한 아내로, 자녀에 대해서는 사랑 깊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완수하였다. 1093년 11월 16일 에든버러(Edinburgh)에서 사망한 후에도 스코틀랜드에서는 널리 그녀를 공경하게 되었고, 1249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 에 의해서 시성되었으며, 교황 글레멘스 10세(1670~1676)는 스코틀랜드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마르가리타 성녀의 고해 신부였던 터고트 신부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마르가리타의 이야기는 지혜의 소금으로 간이 배어 있다. 그녀가 침묵할 때에는 그녀의 침묵이 좋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훌륭한 행동은 그녀의 착실한 성격과 너무나도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덕을 갖춘 생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 참고문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 상, 가톨릭출판사, 1987/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 L. Mac-Farlane, 《NCE》9, p. 200. 〔宋炯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