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 수도회 마레수(Maredsous) 수도원의 아빠스. 영성 작가. 신학자. 원래 이름은 조에(Joë). 세례명은 골롬바노. 1858년 4월 1일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에서 아일랜드계 아버지 월리엄(Wiliam)과 프랑스인 어머 니 에르미니 코르디(Herminie Cordier) 사이에서 태어나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더블린의 벨베데르(Belvedere) 대학에서 고전을 배운 후, 예수회에 입회할 것을 고려하였으나 당시 더블린 교구장 컬렌(Cullen) 추기경의 지시로 클론리프(Clonlife)에 있는 교구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후 로마 포교성성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881년 6 월 16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벨기에의 몽 카생(Mont Cassin)과 마레수 수도원을 방문한 후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하고자 하는 성소를 깨닫게 되었으나 즉시 입회할 수 없었기에 아일랜드로 되돌아왔다. 더블린 근교의 던드런(Dundrun)에서 보좌 신부로 있으면서 교구 신학교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 1886년 11월 21일 마레수의 베네딕도회에 입회하여, 1888년 2월 10일 골롬바노라는 수도명으로 서원하고, 1891년 2월 10일에 종신 서원을 하였다. 수도회 소속 본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한편 사제들의 영성 피정을 지도하던 마르미옹은, 자신에게 하느님 은총으로 주어진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즉 그의 언변은 외국인 억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중을 감동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확신과 열정을 갖게 하는 데 결코 부족 함이 없었던 것이다.
1889년 루뱅(Louvain)에 사제직을 준비하는 수도자들을 위한 몽 세자르(Mont César) 수도원이 창설되었는데, 이때 참여하여 수도원장이 된 마르미옹은 신학생 생활지도와 교의 신학 강의를 담당하게 되었고, 그의 영향력
은 루뱅의 대학계와 성직자 사회에 널리 확산되었다. 몽세자르 수도원에서 비롯된 전례 운동을 기초로 그는 신학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또한 훗날 벨기에의 종교적 중심 도시인 말린(Malines)의 교구장이며 추기경이 된 메르씨에(Désiré Mercier, 1851~1926)의 고해 신부를 맡기도 하였으며, 1909년 9월 28일에는 마레수의 아빠스로 선출되었다. 아빠스로서의 그는 비길 데 없는 훌륭한 영성적 스승이었으며 정신적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일랜드적 기질은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고 예민하였으며, 매우 풍부한 상상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1922년 마레수 수도원 창설 50주년을 지낸 후 질병을 얻어 직책에서 사직한 마르미옹은 이듬해 1월 30일 사망하였다. 마레수 수도원은 1935년 마르미옹에 대한 시복 청원을 하였고, 1954년부터 시복을 위한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저 작〕 마르미옹의 제자들 중 한 사람이며 베네딕도회 신비 신학 연구의 전문가였던 티보(Raymond Thibaut) 가 그의 강의와 강론을 출간하는 작업을 담당하였기에, 설교에 능했던 그 자신은 거의 직접 책을 저술하지 않았다. 티보는 자신이 저술한 대본을 마르미옹에게 검토하여 사실성 여부를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한 후 책으로 발간하였다. 이외에도 프랑스어 혹은 영어로 쓰여진 그의 일기와 2천여 통의 편지가 있는데, 이것들은 그의 신학적 교의의 순수성을 증명하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마레수 수도원에서 출간된 책으로는 《그리스도, 영혼의 삶》Le Christ, vie de 'ame, 1917), 《그리스도와 그의 신비성》(Le christ dans ses mystères, 1919), 《수도승의 이상인 그리스도》(Le Christ, idéal du moine, 1922), 《말씀의 정배, 그리스도께 봉헌된 동정녀》(Sponsa Verbi. La Vierge consacrée au Christ, 1923), 《마르미옹의 편지에 근거한 하느님과의 일치》(L'union á Dieu d'après les lettres de D. Marmion, 1941) 등이 있으며, 티보나 그의 지도에 의하여 출판된 것으로는 《영적 삶의 스승 : 콜룸바 마르미옹》(Un maitre de la vie spirituelle, Dom C. M. abbé Maredsous, 1858~1923, 1929) , 《마르미옹의 생애, 교리, 영성》(Dom C.
M. Sa vie, sa doctrine, son rayonemenent spirituel, 1937), 《마르미옹 문집》(Mélanges Marmion, 1938), 《마르미옹 교리의 주된 이념》 (L'idée maîtresse de la doctrine de Dom M., 1947), 《마르미옹의 존재》(Présence de Dom M. Mémorial publié àI'occasion du XXV° anniversaire de sa mort, 1948) , 《마르미옹, 기타 기록들》(1958) 등이 있다.
〔신학적 사고〕 그의 신학적 이념의 원천은 고전(古典)에 있다. 즉 스콜라 학파의 철학이나 성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은 마르미옹 철학의 토대가 되었으며, 신약성서의 서간문, 특히 바오로 사도의 서간은 그가 신학생일 당시부터 지대한 정신적 영향을 주었다. 그의 성서 해석 역시 전통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중세의 성서 해석처럼 상징적이며 우의적이다. 특히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주해하기 위해 그는 카푸친 수도회 소속의 베르나르댕 드 픽퀴니(Bernardin de Picquigny, 1633~1709)의 저작을 채택하였으며, 그의 금욕주의적 사고는 성 베네딕도의 규율뿐 만 아니라 성 살레시오 프란치스코(St. Salesius Franciscus), 루이 드 블로와(Louis de Blois) , 십자가의 성 요한, 아빌라의 성 데레사와 리지외의 성 데레사의 영향을 받았다.
필리퐁(M.M. Philipon)은 자신의 저술에서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마르미옹의 임무는 현대적 영성으로부터 그 리스도와 같은 인격으로의 회귀를 시도하였다는 데 있다"라고 언급하였는데, 실제로 마르미옹은 "복음이 말하는 귀중한 정화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았다"라고 기술하였고, 1902년 12월에는 "나의 내적인 삶은 점점 단순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즉 내 삶은 내 자신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 무궁한 하느님 아버지의 의지에 일치시키는 것 같다" 라고 적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 모든 초자연적인 삶과 신성화의 원인, 모범 및 한계를 설명하고자 노력하였고, 여러 비평가들은 그의 이러한 신학적 개념이 바오로 사도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고 인정하였다. 《마르미옹 문집》에 수록된 여러 성서 인용문들 중에 요한 복음보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더 많이 참조하였음을 볼 때 그의 신학의 원천이 바오로 사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있어 그리스도와 일치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양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다시 말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 속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곧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마르미옹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결코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핵심적인 면이 있다. 즉 예수는 하느님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하느님의 외아들이라는 것이다"라고 기술하였다. 이 "아버지의 품안에 sinu Patris)이라는 요한 복음 1장 18절을 인용한 표현은 마르미옹의 저작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표현들 중의 하나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다시 말해 그들이 자유롭게 그리스도와 일치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삼위 일체적 삶에 자신을 연결시킨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마르미옹에게 삼위 일체론이란 신학적 추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 속에 살아 있는 인격적 실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르미옹은 기도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하였는데, 그는 사람들이 기도할 때 개인적인 자유와 영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한 가지 기도 방법만을 강조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나름대로의 기도 성향을 갖고 있었다. 즉 그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여러분께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인성에 호소하여 기도를 다시 시작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분은 스스로 이 장막을 가로질러 여러분을 당신 신성의 지성소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라고 하였고, 기도는 하느님께 습관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에게 쉬울 것이라 말하면서, "여러분이 혼자 있을 때, 바쁘게 일을 하거나 여가를 즐기고 있을 때조차도 여러분은 우리의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지성소를 마음속에 이루기 위해 기도를 습관화하여야 합니다"라고 강조하였다.
보뒤엥(Lambert Beauduin)은 마르미옹을 '전례 신학자'로 지칭하였다. 마르미옹은 전례의 거행은 성교회에 대한 신앙심의 순수하고 교육적인 발로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그가 전례를 개혁한다든가 아니면 보다 완벽하게 발전시키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전례가 최대한 유익하게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였다. 이처럼 그가 강조한 전례는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해 매일 그가 행하였던 묵주 기도와 십자가의 길 등과 같은 별다른 것이 전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영성적 지도자로 추앙하였으나, 실제로 마르미옹은 지도자라는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1906년 5월 1일자 편지에서 그는 "나는 사람들이 지도자라 부르는 것을 죽도록 혐오한다. 오직 성서만이 영혼을 이끌 수 있으며, 지도자는 단지 하느님이 그의 영적 자녀들을 이끄시는 길 중의 하나를 보여 줄 수 있을 뿐이다" 라고 하였다.
〔저작의 평가〕 카펠(Bernard Capelle)은 마르미옹의 저서 《그리스도, 영혼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한 권의 책은 즉각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책은 인문학적 범주뿐만 아니라 지리학적 의미에서조차도 급속히 보편적인 저술이 되었다. 마치 메마른 사막 위에 단비가 내린 것과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이 책은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었고, 적어도 20만 부 이상이 인쇄되었으며, 다른 저작들 역시 마찬가지 수준으로 인쇄 · 보급되었다. 제멜리(Agostino Gemelli)는 "《그리스도, 영혼의 삶》이라는 책은 지나치게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던 분야, 즉 바오로 사도의 신학, 복음에 기초한 사고, 전례의 상징이나 표현과 같은 신학의 광맥에 접근할 수 있는 저술이다"라고 평가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마르미옹의 신학적 사고는 가톨릭 전통에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참고문헌 T. Delforge, 《DSp》 10/T. Delforge, Columba Marmion, Serviteur de Dieu, Maredsous, 1963/ H. Bremond, Dom Columba Marmionet sa doctrine spirituelle, La Vie Catholique 14, 1929/ M.M. Philipon, La doctrine spirituelle de Dom Marmion, Paris, 1954. 〔邊琪燦〕
마르미옹, 조제프 콜룸바 Marmion, Joseph Columba(1858~1923)
글자 크기
4권

벨기에의 마레수 수도원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