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가브리엘 Marcel, Gabriel(1889~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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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마르셀.

가브리엘 마르셀.

실존 철학자. 1889년 12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4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그로 하여금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에의 철학으로 여행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9세 되던 해 이모와 재혼한 마르셀의 아버지는 미술관 관장, 국립 도서관과 박물관 관장직을 역임하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마르셀은 아버지를 따라 자주 해외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기회를 많이 가졌다. 그의 철학에서 여행의 개념이 주요한 주제로 등장하고 예술적 창조의 의미를 철학적 사색의 핵심으로 삼게 된 것도 이런 어린 시절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셀링 철학과 연관된 콜러리지의 형이상학적 관념들>(ldées métaphysiques de Coleridge dans leurs rapports avec la philosophie de Schelling)이란 논문으로 1910년에 철학 교수 자격을 취득한 마르셀은, 방돔(Vendôme) 고등학교(1912) 파리의 콩도르세(Condorcet) 고등학교(1915~1918), 상(Sens) 고등학교(1919~1922)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며 1919년에 뵈녜(Jacqueline Boegner)와 결혼한 후 1922년에 장-마리(Jean-Marie)라는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 1929년 3월 23일에 작가 프랑수아 모리악(Francois Mauriac)의 권유로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다시 파리의 루이 르 그랑(Louis le Grand) 고등학교(1939~1940), 몽펠리에(Montpelliner) 고등학교(1940~1941)에서 철학을 강의하였고, 1949년에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문학 대상을 받았다.
1947년 부인과 사별한 마르셀은, 1949~1950년에는 영국 애버딘(Aberdeen) 대학의 기포드 강좌(Gifford's Lec-ture)에서 특강을 하였고, 1952년 도덕 정치학 아카데미(Académie des Sciences Morales et Politiques)의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58년 인문 과학 국가상을 받았다. 또한 1961년 미국 하버드 대학의 월리엄 제임스 강좌(William James Lectures)에서 특강을 하였고, 1964년에는 독일 서적상 협회가 수여하는 평화상을 받았다. 1965년 교황 바오로 6세를 개인적으로 알현하기도 했던 그는, 1969년 독일 물리학자 폰 바이스첵커(C.F. von Weiszäcker)와 함께 에라스무스(Erasmus)을 공동 수상하였고, 1972년에는 아카데미 종려 훈장, 레종 도뇌르, 인문 과학 훈장을 수훈한 다음에 국가가 수여하는 대십자 공로 훈장의 영예를 얻었다. 1973년 10월 8일 사망하였다.
〔철학 사상〕 객관성의 철학적 진리에 대한 부정 : 그의 철학을 초기와 후기로 나눈다면, 초기는 그의 대작인 《형이상학 일기》(Journal Métaphysique)를 중심으로, 주로 헤겔적인 관념론의 체계에 따라 진리를 관념의 전개 과 정으로 본 철학 이론과 또 철학적 진리를 과학적인 객관성 위에 세우려는 칸트적인 철학 이론을 비판하고 구체적으로 나의 피와 살에 와닿는 철학적 사유에서 직접적 출발점을 모색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그런 직접적 출발점을 '실존' (l'existence)이라고 불렀다. 후기 철학은 《존재의 신비》(Le Mystère de l'être)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그는 실존의 탐구에서 존재의 형이상학으로 철학적 변음(變音)을 표현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실존 철학에서도 이미 존재론적 신비의 전주곡을 들을 수 있고, 또 그의 존재론에서도 실존적 가치에 대한 증언을 수행하고 있다. 그의 철학적 방법은 관념의 유희를 배격하며 증명이나 논증의 방법을 피하고 언제나 탐색적인 방법으로 실존과 존재의 세계로 구체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기에, 그는 자기의 철학이 '구체 철학' 이라고 불려지기를 원하였다. 또 그가 실존적 세계를 탐색할 때는 현상학적(phénoménologique) 방법을 원용하지만, 존재의 세계를 해명할 때는 '초현상학적' (hyper-phénomé-nologique) 방법을 원용한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그의 철학의 이론적 구조는 객관적 사유의 원천인 '나는 생각한다' (Cogito)의 축을 중심으로 객관화되기 이전 세계인 실존과 객관화된 이후 세계인 존재로 양분된다. 그래서 실존과 존재가 '코지토' 에 의하여 갈라지는 것 같지만, 사실상 그 두 가지는 서로 매우 유사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객관성이 '코지토' 의 의미라면, 실존은 내가 느낀다 는 것의 표현이고, 존재는 '내가 믿는다' 는 신앙의 형이상학적 신비를 철학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코지토는 언제나 대상 세계를 해결해야 할 '문제' (le probléme)로서만 간주하는 기술적(technique)인 기능의 가치만을 지닌다. 그런데 객관성의 영역은, 객관과 주관을 이분화하여 언제나 주관이 객관을 장애물로서 여기기에, 그런 관계는 결국 주관이 객관의 도전을 극복하고 그 객관을 주관의 코지토라는 관할권 속에 소유하 려 한다.
마르셀의 철학은 몇 가지 대칭 관계의 변증법으로 짜여져 있는데, 예컨대 '문제-신비' , '기술-초기술' , '소유-존재' , '절망-희망' , '객관화-관여' 등이 그것이다. 이 관계에서 전자는 모두 '코지토' 와 객관성의 특성을 표시하고, 후자는 실존과 존재의 영역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관념들이다. '문제' , '기술' , '소유' , '절망' , '객관화' 등은 모두 다 3인칭의 세계에 속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또한 타인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성질과 목록화의 가능성을 지닌다. 이는 철학적인 판단 가능성과 다른 것이 아니며, 따라서 기능적 유용성도 지니게 된다. 예컨대, 절망의 뿌리에는 언제나 대상을 객관적으로만 바라보는 기술적 사고 방식이 숨어 있다고 마르셀은 보고 있다. 내 인생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대상이고 그 대상은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들을 갖고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하여 어떤 기능적 기술이 유효한데 그 유효한 기능들은 몇 가지로 목록화될 수 있다. 나는 그것들을 다 소진하였고, (문제를 해결하였거나 못하였거나 간에) 이제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다 꺼져 가는 에너지와 같다. 여기에서 절망의 소리가 솟는다.
마르셀의 철학이 객관성을 비판하는 것은 객관성의 과학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과학적 객관성의 합법성은 그것이 도구적 진리이고 일반성을 지닌 추상적 진리인데, 그 진리가 실존적 느낌이나 존재론적 믿음과 같은 '구체적 전체성' 을 무의미하게 하거나 파괴하려고 하는 것을 마르셀은 비판한다. 더구나 객관적 진리는 그 진리를 가능하게 하는 자신의 기반에 대하여 전적으로 맹목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고 마르셀은 보고 있다. 왜냐하면 '코지토' 는 '나는 생각한다' 는 것인데, 생각하는 내가 나 자신을 알려고 하면, 나 자신이 또 내부에서 주관과 객관으로 이분화되어 생각하는 자아의 정체성은 언제나 뒤로 후퇴하고 말아 "나는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또 내가 생각하고.." 이렇게 무한히 나의 근거는 밝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셀은 생각하는 자아의 철학, 객관성의 영역에 철학이 안주할 수 없다고 여기면서 객관 이전의 세계로 향하여 '문지방' 을 넘어간다.
실존의 철학적 모색 : 그 이전의 세계란 느낌의 세계이다. 느낌의 세계는 실존의 세계와 같으며, 감각적으로 나 를 둘러싼 실존의 세계에 대한 관여(la participation)를 의미한다. 내가 느낀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실존의 세계에 내가 잠긴다는 것을 뜻하고, 느낌을 통하여 '내가 실존한다' 는 것과 '세계가 실존한다' 는 것이 함께 간다. 이것 은 느끼는 자아와 세계가 주관과 객관으로 이분화되지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느낌의 현상은 '의식의 지향성' (l'intentionalite de la conscience)과 같이 의식이 자기 아닌 다른 것으로 향하는 행동과 같다. 느낌을 통하여 나는 세계와의 근원적인 탯줄을 형성하게 되고, 세계와 나는 하나의 객관 이전의 연관을 갖는다. 이런 연관 현상을 마르셀은 '순수 느낌' (Urgefühl)이라고 불렀다. 이런 느낌 현상이 바로 경험이다. 그런 경험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 경험이고 인간 경험의 출발점이자 한계를 뜻하기에 또한 그것을 '한계 경험' (l'rexpérience-limite)라 부르기도 한다. 이 한계 경험은 객관적 사유의 논리처럼 객관적으로 주어진 소여(所與, le donné)와 주관적인 행위(l'acte)의 이원성으로 분열되기 이전의 영역이다. 이것은 곧 실존의 관할권이다.
마르셀은 이 한계 경험이 모든 과학적 오성적 사유의 근거라고 보고, 모든 "인간의 사유는 이 한계 경험을 실 현하는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형이상학 일기》)고 하였다. 마르셀은, 이 한계 경험에서부터 인간의 사유가 출발하여 오성적 과학을 낳지만, 그 과학의 문지방을 넘어 존재의 세계로 다시 사유가 초월해 나가는 과정을 자신의 철학적 여정(旅程)으로 삼는다. 다시 말하자면, 한계 경험의 모호한 세계에서부터 인간의 사유가 점차 '생생한 성장' 을 해나가는데, 과학적 사고에 좌초되지 않고 존재론적 신비가 현존하는 곳으로 초월해 나가도록 도와 주는 것이 마르셀의 철학적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마르셀의 철학은 경험론적이지만, 영국의 경험론처럼 경험을 문제로서 세분화하지 않고 한계 경험을 의식화시켜 나가고 의미화(순수화)시켜 나간다. 그래서 그에게 참 다운 형이상학은 경험을 벗어난 탈경험의 세계를 관념적으로 구성하는 학문이 아니고, 오히려 경험의 형이상학 이고, 초월의 체험이라 할 수 있다. 마르셀은 모든 경험 안에 형이상학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 다.
그러면 근원적 느낌과 동의어인 그 실존이란 무엇인가? 사실상 실존은 개념화가 되어 있지 않다. 즉 '문제' 로서 설명할 수 없다. 마르셀은 '사실' 이란 그냥 하나의 정보(data)로서 나에게 주어진 정체 불명의 문제 덩어리 가 아니고, 하나의 '만남' 과 같다고 본다. 만남은 주어진 사실과 능동적 의미 부여가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모든 만남은 감각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감각에 의하여 의식과 세계가 공명(共鳴)의 현상을 일으키기에, 마르셀이 말하 는 실존은 곧 감각적 만남이나 감각적 관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느낌으로서의 실존적 현상은 공명 현상으로서의 육화된 '공감화' (la syrnpathisation)와 같다. 공감화는 '주관-객관' 이 구분되고 또 주관과 객관이 참조해야 할 제3자의 표준이 되는 그런 3인칭 관계가 아니라, 그것은 만남의 경우처럼 2인칭의 관계이다. 2인칭의 관계란 결국 실존적 느낌의 현상이 '함께 실존함' (le coexister)과 같은 차원임을 알리고 있다.
느낌과 실존이 결국 '함께 실존함' 의 현상이 되도록하는 절대적 매개체가 '나의 몸' 이다. 모든 느낌은 나의 몸을 통하여 이루어지기에, 나의 모든 한계 경험, 모든 실존적 경험의 가능 근거로서 몸은 객관화를 거부한다. 즉 몸은 나에게 하나의 도구일 수가 없다. 몸을 도구로 여기는 생각은 '내가 나의 몸을 소유하고 있다' 는 소유적 객관화의 부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내가 느낀다' 는 것은 '내가 어떤 것과 함께 실존한다' 는 것과 같은 현상 이다. 또 이것은 '나는 나의 몸이다' 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몸은 곧 '공감화' 현상과 같고 세계와 함 께 태어남' (co-naître)과 같은 의미이므로 마르셀의 철학에서 '나는 나의 몸이다' 라는 언표(言表)는 '나와 세계 가 같은 소속에 포함되어 있다' 는 의미와 같다. 그래서 실존은 상황 속의 존재가 된다. 즉 실존은 세계라는 상황 의 밖을 벗어날 길이 없다. 이 세계라는 상황은 마르셀의 철학에서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진다. 그 하나는 음악의 장조(長調)처럼 창조의 첫날에 비친 황홀하고 아름다운 자연 세계의 영롱한 모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음악의 단 조(短調)처럼 인간 세계와 역사 세계가 토해 내는 어두운 시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 세계는 '깨어진 세 계' 이다. 역사적으로 깨어진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깨어졌기에 인간의 어떤 노력에 의해서도 수리되거나 온 전히 결합되지 않는다. 마르셀은 모든 역사적 구원의 약속이 인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거짓과 허구라고 고발한다. 인간은 인간에게 구원의 약속을 할 수가 없다. 이런 깨어진 세계에서 시련은 절망, 고통, 죽음, 아픔, 역사적 비극 등으로 나타난다. 이 시련 속에서 인간은 자기의 실존이 하나의 '내기' (1'enjeu)와 같다고 여긴다. 그 '내기' 에서 인간이 나의 존재가 단지 실존적 느낌의 시련에 항복할 수 없다고 여길 때, 그는 '나는 나의 몸인 것만은 아니다' 라는 '존재론적 요구' (l'exigence onto-logique)를 갖게 된다. 이 존재론적 요구에 의하여 마르셀의 철학은 실존적 경험에서부터 존재론적 경험으로 넘어가는 '초월의 요구' 를 만난다.
마르셀의 존재론적 형이상학이 실존적 느낌의 현상학을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철학에서 실존적 느 낌은 모든 창조의 원초적 지대에 속한다. 느끼지 못하는 자는 창조도 못한다. 느낀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 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 이다. '받아들임' 은 '마중함' 과 같고 '마중함' 은 '..에 자신을 열어 놓음' 에서 가능하다. 자기 아집과 자기 것으로 가득 찬 사람은 닫힌 감각의 소유자이다. 이런 느낌의 현상이 경험인데, 그 경험은 두 가지 종류의 반성을 일으킨다. 그 하나는 '일차적 반성' (la réflexion primaire)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차적 반성' (la réflexion secondaire)이다. 전자는 과학적 반성이고, 후자는 존재론적 반성이다. 실존적 느낌이 과학을
잉태하나, 철학은 그 과학적 반성을 넘어 존재론적 세계로 초월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철학과 과학의 차 이점이 거기에 있다. 실존적 느낌의 예술성을 존재론적 믿음의 철학성으로 초월시키게 하는 반성이 곧 '이차적 반성' 이다. 이 '이차적 반성' 은 관여적(關與的) '육화'(l'incarnation) 현상인 실존적 느낌의 본질을 존재의 세계 에 이행시키면서, 동시에 실존적 느낌의 감각성이 지니는 덧없음과 깨지기 쉬운 요소를 제거시키는 과정이다. 즉 '존재론적 요구' 는 '나는 나의 몸이다' 라는 육화 현상의 공감화를 수용하되, 동시에 '나는 나의 몸인 것만 은 아니다' 라는 초월적 요구를 아울러 포함하고 있다.
존재론적 신비 : 느낌의 현상이 '함께 느낌' 의 공감 현상으로 이어지듯이, 존재는 마르셀에게 하나의 '신비' 로 나타난다. 그의 철학에서 '문제' 와 변증법적 대칭 관계에 있는 신비는 존재들의 '상호 교류' 와 같은 것이다. 즉 신비는 '내 앞' 과 '내 안' 의 공간적 구별이 무의미해지고 '먼 곳 과 '가까운 곳 의 물리적 거리감뿐만 아니라, '옛날' 과 '이제' 라는 시간적 차이도 사라지는 그런 현존(現存, la présence)의 초현상학적 본질을 지니고 있다. 즉 모든 신비는 '초문제적' (méta-prblématique) , '초기술적'(meta-technique)인 영역이기에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 목록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신비는 본질적으로 존재론적이다. 느낌이 2인칭의 관계이듯이, 존재도 그러하 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존재가 무엇인가' 라고 물을 수 없는 것이다. 존재에 접근하는 길은 '존재여! 너는 누구 인가?' 라는 2인칭 대화 방법뿐이라고 마르셀은 말하고 있다. 이 대화는 이미 존재가 묻는 주체로서의 존재와 질 문의 대상으로서의 객관적 존재와의 구별이 무의미함을 뜻한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2인칭적 상호 연관인 '상호 주관성' (liiter-subjectivite)의 성질을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비가 존재론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상호 주관적인 '함께 있음' (leco-esse)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존재의 상호 주관성을 다른 말로 하면 '현존' 이다. 현존은 상호 주관적인 '사랑' (l'amou)을 떠나서 성립되 지 않는다. 사랑의 관계가 현존이기에 사랑하는 존재는 나에게 언제나 '여기' 와 '이제' 의 님으로서 나의 존재와 하나의 '영적 교제' (la communion des âmes)를 이루게 된다. 이런 사랑의 '영적 교제' 는 세분하기 좋아하고 기능적 효과로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정신에는 하나의 착각이나 허구로 비쳐진다. 그러나 존재론적 관여가 무엇인 지 이해하는 이에게 그것은 하나의 탁월한 구체적 진리로 다가온다. 실존적 관여가 '잠기는 관여' laparticipation immergée)라면 존재론적 관여는 '솟아나는 관여' (laparticipation émergée)이다. 전자가 사유 이전의 느낌의 세계로 잠기는 성질이라면, 후자는 개념적인 '일차적 반성' 을 넘어서 의식의 빛 속으로 솟아나는 존재의 관념과 상관하고 있다. 이런 '솟아나는 관여' 에서 존재는 단지 'A=A' 라는 형식 논리학의 동일률로 해석되지 않는다. 이것은 객관적 개념의 수준에서 타당한 실재론의 의미만을 지닐 뿐이다. 오히려 존재론적 신비의 현존에 접근하는 길은 동일률이 아니라 '깊이' 의 경험에 의하여 가능하다. 마르셀이 《현존과 불멸성》(Présence et Immoratalité)에서 말한 바와 같이 "깊이의 경험은 잠깐씩 보여지는 것 속에 내재해 있는 약속에 대한 느낌과 연결되어 있다."
2인칭 관계의 상호 주관적 존재는 그것이 아직도 감각적 실존과 결부된 육화적 존재인 한에서 언제나 상호 반 역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즉 나와 그대와의 관계가 감각적 관여의 수준에서는 언제나 깨어질 수 있는 잠정적 위 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존재가 실존적 단계를 넘어서 본질적 단계로 접근하면 할수록 2인칭 관계의 '함께 있음' 은 그만큼 반역의 가능성을 뛰어넘게 된다. 마르셀의 후기 철학에 등장하는 '본질' 의 개념은 추상적인 규정의 의미에서가 아니고 우리의 존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의 뜻을 담고 있다. 그 고향으로서 존재의 본질은 우리에게 멀리 있다. 그러나 그 먼 곳은 유배당한 자가 언제나 그의 마음속에는 잊지 못하는 고향처럼 가까이 있다. 그 고향은 이상한 나라처럼 생경(生硬)한 다른 곳이 아니고 저 너머 멀리서 우리에게 비쳐 오는 빛과 같다. 그 고향은 먼 곳에 있으나 상상되지 않고, 우리의 살 속에서 우리 것으로 존재하기에 그곳은 가까이 현존해 있으나 동시에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깊은 곳에 있다. 마르셀은 그런 존재의 본질, 존재의 고향을 《존재의 신비》에서 '빛으로 존재하는 기쁨의 빛' 이라고 표현하였다.그러므로 존재는 함께 있음이고 빛과 더불어 함께 있음이 바로 존재의 본질이기에 그 빛을 마르셀은 '절대적 그대' (leToi absolu)라고 불렀다. 이 절대적 2인칭 존재가 곧 신이다. 신은 절대적 님이다. 빛으로 존재하는 존재의 고향, 빛으로 된 존재의 터전인 그 존재의 고향은 존재론적 영적 교제를 뜻하는 '관념적 도시' (la Cité idéale)와 같은 것이다. 그 세계는 우리가 소유의 개념에서처럼 '잡거나' , '버리거나' 할 수 있는 그런 점유의 지대가 아니고, '마중하거나' , '거부하거나'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는 공동체이다. 기구(祈求)는 바로 그런 고향에 대한 관여의 표현이다. 우리가 존재론적으로 그 세계의 시민이 되기 위하여 자신을 열어 놓는 만큼, 그만큼 우리는 현존과 영원의 빛을 받는다. 존재의 의미는 '열린 영혼' (l'âme ouverte)과 교환되면서 개시(開示)된다. 존재의 의미는 정신의 빛인 '방사하는 힘' (le pouvoir réverbéra-teur)과 같다. 그 힘은 '존재의 기쁨' , 존재론적 의미의 '충만' 자체와 같다. 여기서 씌어진 '기쁨' 이나 '충만'은 곧 존재론적인 '무궁 무진함의 원리' 로써 좋다. 그런 원리는 잘 재단된 옷처럼 폐쇄적인 대입되어도 의미의'완성' (la perfection)이 아니고 무한히 열려 있는 존재의 '성취' (l'acomplissement)와 같다. 그런 '존재론적 성취'의 경험에 의해서만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음미하는' 자유화, 존재론적 자유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마르셀의 존재론은 하이데거(M. Heidegger)의 존재론과는 달리 존재(das Sein)와 존재자(das Seindes)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마르셀에게 있어서 존재자가 배제된 존재는 님이 없는 추상적 원리로 변한다. 또한 그는 신의 존재와 만나는 방법은 우리의 이웃과 만나는 행위와 같다고 본다. '나는 그대의 형제요' 라는 언표에는 대등의 질투 의식과 원한의 감정이 없다. 거기에는 '존재론적 겸허' 와 '존재론적 성실성' 이 자리잡고 있다.
전자는 단순한 도덕적 겸양과 다르다. 그것은 그대가 있기에 나의 존재가 그만큼 풍요해진다는 의식을 품고 있고,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 후자는 존재론적 '수의성' (隨意性, la disponibilité)의 의미와 함께, 뜻을 따르겠다는 '섬김' (le service)의 영혼을 표현하고 있다. 수의성과 섬김은 같은 존재론적 의미로서 인간의 '착한 마음' 에서 꽃핀다. '그대의 뜻이 바로 나의 뜻' 이라는 수의성은 형제애의 정신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그 래서 마르셀은 "형이상학적인 것이 바로 이웃"이라고 언표하였다.
마르셀에게 있어서, 존재는 평등의 자리라기보다는 형제애의 분위기와 같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존재의 주 체' 라기보다 오히려 '존재가 거주하는 자리' 라고 함이 더 타당한 주장이라고 여긴다. 그런 자리가 곧 가정(家庭)이다. 그래서 그는 '가정의 신비' (le mystère familiale)라는 표현을 주저 없이 사용한다. 그가 존재를 '함께 있음' 의 상호 주관성으로 해석하였을 때, 이미 그는 존재가 하나의 분위기임을 암시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르트르(J.P. Sartre)식의 '즉자 존재' 와 '대자 존재' 의 구분을 넘어 존재는 하나의 '분위기' 이기에 자기 집에 있음과 같은 '자가 존재' (自家家存在, I'être-chez-soi)의 개념을 선호한다. 가정은 이 세상에서 자가 존재의 편안함을 가 장 풍성하게 주는 곳이다. '가정의 신비' 가 파괴되고 가족간의 관계가 재산 목록이나 기능의 효용성으로서만 평 가되는 곳에 대등한 평등 의식이 자란다 해도 도덕성의 파괴가 생긴다.
그런데 세상은 이미 깨어져 있다. 깨어졌다는 것은 절망과 반역이 이 세상의 소리임을 뜻한다. 그러나 인간이 존재론적 요구를 잃지 아니하는 한에서 절망이 이 세계의 마지막 말이 아니다. 여기에 '희망의 형이상학' 이 등 장한다. 마르셀이 말한 '희망의 형이상학' 은 낙관론적 결론이 아니다. 절망과 반역을 체험한 자만이 희망을 이 해한다. 그는 '나는 희망한다' 와 나는 ··것을 바란다'를 구별하는데, 희망은 객관적인 내용을 나열해서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모든 희망은 '구원의 희망' 이기에 희망은 인간 영혼을 존재론적으로 형성시키는 '옷감' 과 같다고 마르셀은 말한다. 희망은 '겸허하고' , '수줍고' , '정결한' 영혼의 것이고,"희망은 무장이 안된 자들의 무기이다."
〔평 가〕 마르셀은 20세기의 가톨릭 철학자들 가운데서 커다란 영향력을 남기고 간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흔 히 현대 철학사에서 그를 유신론적 실존 철학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그는 자기의 철학을 그렇게 명명하는 것을 싫어했고, 구태여 자기의 철학을 꼭 명칭화하고 싶으면, 그리스도교적 소크라테스주의' (le socratisme chrétien) 또는 '신 소크라테스주의' (le socratisme chrétien)라고 불러 주기를 원했다. 철학 논저들 이외에 많은 희곡 작품들도 남긴 그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사상이 일정한 호칭으로 분류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 실존 철학 ; 철학)
※ 참고문헌  G. Marcel, Le Mystère de I'être I~II, Paris, Aubier, 1951/一, Joumal Métapphy, Sique Paris, Gallimard, 1927/ R. Troisfontaines, De I'Existence à l'être I~II, Louvain, Nauwelaerts, 1953/ 김형효, 《가브리엘 마르셀의 구체 철학과 여정의 형이상학》, 인간 사랑, 1990. 〔金炯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