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과부. 축일은 1월 31일. 성 예로니모가 "모든 성인과 로마 부인들의 영광" (Epist. CXXVII이라고 찬양하 였던 마르첼라는 325~335년 사이에 로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결혼 7개월 만에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 후 집정관 체레알리스(Cerealis)의 구혼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동방 은수자들의 생활을 본받으려고 결심하였다. 그녀의 어머니 알리나(Alina)는 아리우스파의 박해를 피해 피신 중이던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오와 그의 후계자 베드로 2세를 아벤틴(Aventin)에 있는 대저택에 모신 적 이 있었는데, 이때 마르첼라는 그들과 이집트의 고행 수도자인 암모니오(Ammonius)와 이시도로(Isidorus)를 통해 테베(Thebae) 금욕자들의 고행과 성 안토니오의 생애를 알게 되었다.
음식을 절제하고 독서에 열중하면서 순례 성당을 방문하며 기도하던 마르첼라는, 어머니와 함께 자신을 주께 봉헌하고 아벤틴에 있는 그녀의 저택에서 수도자로 생활하기를 원하는 과부나 젊은 여인들과 더불어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그녀가 자식들처럼 여겼던 프린치피아(Principia) , 바울라(Paula)와 그의 딸 블레실라(Blesilla), 에우스토키움(Eustochium), 레아(Lea) , 아셀라(Asella), 푸리아(Furia), 파비올라(Fabiola) , 펠리치타(Felicita)와 성 암브로시오의 누이 마르첼리나(Marcellina) 등이었다. 다른 귀부인들은 그녀의 모범을 따라 단식, 옷의 모양, 자선 등을 실천하였다. 곧 몇 개의 공동체가 로마에 형성되었으며, 382년 가을부터 로마에 체류한 성 예로니모가 손수 이 공동체를 지도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금욕생활을 장려하고 성서를 주석해 주었다. 385년 여름 베들레헴으로 간 성 예로니모는 계속해서 서간 성서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구절들을 해석하는 한편 오리제네스파, 몬타누스파나 노바시아누스파와 대항하였는데, 마르첼라는 열심히 성서 공부를 하여 성 예로니모에게 편지로 언어학적 · 주석적 · 교리적인 질문들을 하곤 하였다. 그리고 성 예로니모의 요청으로 교황 아나스타시오 1세(399~401)가 오리제네스파를 파문하는 데에 협조하기도하였다.
410년 고트족이 로마를 약탈하였을 때, 마르첼라는 재산을 숨겼다는 혐의를 받고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나 그 녀의 사랑하는 제자 프린치피아와 함께 성 바오로 대성전으로 피신하였으나, 그곳에서 극도로 쇠약해져 사망하 고 말았다. (⇦ 말셀라)
※ 참고문헌 《LThK》 6, pp. 1375~1376/ J. Daoust, 《Cath》 8, pp. 407~408/ Donal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Saints, Great Britain, 2nd ed., 1983, p. 221/ T.C. Lawler, 《NCE》 9, p. 188/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 출판사, 1987, p. 231. 〔편찬실〕
마르첼라 Marcella (325/335~4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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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