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첼로 1세 Marcellus I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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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1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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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1세 교황

성인. 순교자. 교황(307~308?) 축일은 1월 16일. 304년 교황 마르첼리노(Marcellinus)가 사망한 후, 디오클레시아누스(Diocletianus) 황제의 박해와 로마 교회의 내부 분열로 인하여 3년 6개월 동안 교황좌는 공석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305년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가 퇴위하고 이듬해 10월 막센시우스(Maxentius, 306~312)가 권좌에 오름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후임 교황 선거도 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마르철리노 교황 때 지도자적 역할을 수행한 사제 마르철로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리베리오 교황표》(CatalogusLiberians)에서는 마르철로가 308년에 가서야 교황직을 수행하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마르첼로의 재위 기간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재위 기간은 308년 5월 27일(또는 6월 26일)부터 309년 1월 16일까지이다.
마르철로가 교황으로 재위한 시기는 로마 교회가 피폐되어 있을 때로 신자들의 집회 장소와 묘지는 압수당하였고 교회의 일상 생활과 활동 역시 혼란에 빠져 있을 때였다. 교회도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박해 시기 동안 배교하였던 많은 배교자들이 규정된 속죄 기간을 거치지 않고 다시 신자 생활에 참여할 수 있기를 강력하게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마르첼로는 변화된 정치 상황 속에서 교회를 재정비하여야만 했다.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ialis)에 따르면, 마르첼로는 로마 교회를 각각 한 명의 사제가 파견되어 있는 25개 본당으로 재조직하였고, 본당에 파견된 사제는 예비자들에게 세례를 준비시키고 배교자들에게는 규정된 속죄 행위를 실행하게 하였다. 아울러 본당 사제에게는 죽은 이들의 묘지 관리와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예식 집전의 책임도 부여하였다. 교황은 또한 21명의 새 주교와 24명
의 새 사제에게 서품을 주었으며, 성 프리실라(Priscilla)의 카타콤바 반대편에 있는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에 새 묘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교황의 이러한 작업은 배교자들을 다시 교회에 받아들이는 문제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교황 다마소 1세가 쓴 비문에 의하면, 마르철로는 엄격한 속죄 행위를 요구한 엄격주의자였기 때문에 배교자들은 그를 사악한 적으로 간주하였다고 전하고 있 다. 그 결과 해라클리우스(Heraclius)를 우두머리로 한 배교자들과 가톨릭 신자들 사이의 심각한 다툼으로 유혈 충돌이 일어나 마침내 평화가 깨어지게 되었다.
결국 막센시우스 황제는 배교자들의 고발에 따라 마르철로 교황을 체포하여 평화의 파괴자라는 죄목으로 유배를 보냈고, 얼마 뒤에 교황은 그곳에서 사망하였는데 사망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리베리오 교황표》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보면 마르철로 교황의 재위 기간이 1년 6개월(또는 7개월) 20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언급되어 있다. 교황의 시신은 로마 로 옮겨져 박해 기간 동안 징수되지 않았던 개인 묘지인 성 프리실라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성 치리아코(Cyriacus)가 순교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를 기록한 5세기의 《마르첼로의 수난》(Passio Marcelli)과 《연대 교황표》는 마르첼로의 최후에 대해 다른 전승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전승에 따르면, 마르철로 교황이 교회를 재조직하고 주교 직분을 지키면서 로마의 제신(諸神)에게 봉헌물을 바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격분한 막센시우스 황제는, 루치나(Lucina)라고 하는 후원자가 비아 라타(Via Lata)에 있는 자신의 집을 봉헌하여 세운 '마르철로의 교회 를 마구간으로 개조하고 이곳에서 교황을 마부로 일하게 했는데, 결국 교황은 그곳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또 5세기의 《예로니모 순교록》도 마르철로가 증거자(confessor)로서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이래 마르첼로에 대한 논증이 다시 계속되었는데, 마르철로와 마르철리노가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고, 몸센(Mommsen)은 마르철로가 주교가 아니고 단순히 교황좌가 오랫동안 공석이었기 때문에 잠시 교회 행정을 담당한 즉 준교황(quasi-pope) 기능을 수행한 로마의 사제였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1월 16일은 마르철로가 아닌 마르철리노의 사망일이 되고, 마르첼리노의 후임 교황은 에우세비오가 된다. 이 주장이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긴 하지만, 《리베리오 교황표》에 마르첼로와 마르첼리노 두 사람이 교황으로 언급되어 있고, 다마소 1세 교황이 마르첼로를 위해 쓴 비문에도 주교에게만 사용하는 용어인 '감독자' (rector)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마르첼로가 교황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 교황)
※ 참고문헌  J.N.D. Kelly, The Oxford Dictionary of Popes, Oxford,Oxford Univ. Press, reprinted, 1986/ D.H. Farmer, The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Oxford Univ. Press, 2nd ed., 1987/ G. Schwaiger, 《LThK》 7, pp. 3~41 E.G. Weltin, 《NCE》 9, p. 190. 〔邊宗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