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 主義

〔라 · 독〕Maxismus · 〔영〕Marxism

글자 크기
4
카마라 대주교는 마르크스주의와 그리스도교 간의 종합을 제의하였다.
1 / 2

카마라 대주교는 마르크스주의와 그리스도교 간의 종합을 제의하였다.

19세기 중엽 마르크스(K. Marx, 1818~1883)와 엥겔스(F. Engels, 1820~1895)가 발전시킨 학설 체계. 마르크스주의가 형성되기까지 영향을 준 사상들이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사상은 헤겔(G.W.F.Heel, 1770~1831)과 포이어바흐(L. Feuerbach, 1804~1872)에게서 찾을 수 있다.
〔배 경〕 헤겔의 영향 : 마르크스가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할 당시, 대학의 사상 풍조는 헤겔 일색이었다. 절대적인 관념론을 주장한 철학자 헤겔은, 이성은 개인적인 자기 확신과 현실 사회가 일치될 때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이성의 단계로 발전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곧 인륜(人倫)의 세계이며 여기서 정신의 세계가 열린다. 이 정신은 다시 진지한 인륜과 도덕성을 거쳐 도덕적 세계관 등의 여러 단계를 넘어 최후로 종교적인 단계로 높여진다. 이 최후의 단계에서 지식과 사유와 존재는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곧 사유 자체인 것이다. 이와 같이 사유와 존재의 완전한 동일성의 주장에서, 이성적인 것만이 진실로 현실적일 수 있으며, 현실적인 것은 반드시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헤겔은 계시 진리, 즉 초월적인 진리도 이성의 세계에서만 의미가 주어진다는 '이성주의' 로 자기의 주장을 드러낸다. 루터 신학을 공부한 헤겔은 그의 '역사 철학' 에서 종교 자체도 인간 마음속에 있는 이성이라고 하였다. 특히 헤겔이 마르크스의 유물사관(唯物史觀)에 영향을 끼친 사상은 변증법이다.
포이어바흐의 영향 : 독일 헤겔 좌파의 대표적 유물론자이며 종교 비평가인 포이어바흐는 헤겔을 너무나 신학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연적인 개체를 기초 삼아 인간도 하나의 자연물이라고 주장하며 자연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종교나 신도 인간이 소원(訴願)하는 대상을 환상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이란 저서에서 그리스도교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는데 이로 인해 젊은 헤겔 학파들에게, 특히 마르크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포이어바흐는 현대 무신론의 선봉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니체(F. Nietzsche), 프로이트(S. Freud), 사르트르(J.P. Sartre) 등 현대 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주요 이론〕 마르크스가 현대의 경제 · 철학 · 정치 ·사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방대한 그의 사상 중 유물 사관과 공산주의 이론, 그리고 그릇된 종교관에서 비롯된 무신론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본론》(資本論, Das Kapital)에서 전개한 독특한 사회 경제 이론은 간과될 수 없다.
유물사관 : 인간의 역사는 오로지 물질의 변화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모든 정신적인 것을 배제한다. 마르크스는 사회 발전의 근본 원인을 생산력이라 하였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가장 기초적인 것이 의식주이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서 의식주의 모든 것을 생산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생산 도구, 기타 방법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렇게 의식주와 관계되는 물질적 조건이 사회 생활의 형태와 조직 발전을 만들어 내고, 이렇게 물질적 생산 방법이 기초가 되어 정치 제도나 사회 · 경제 체제가 변화된다. 결국 역사의 변천은 생산력과 생산 사이의 변증법(辨證法)적인 조건에서만 이해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스스로 생산을 하면서도 자기의 생산물에 대해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된 인간을 해방시키겠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사회의 진보와 발전은 생산력이 발달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생산 관계의 변화가 오고, 사회 · 경제 체계와 정부의 정치 체제의 변화도 온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 '정신적인 개념' 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에 의하면 한 개인의 정신 활동이나 그 의미는 사회의 경제 상황에 의해서 결정된다. 개인(주체성)과 사회(환경)의 관계가 이렇기 때문에 개인의 생존 방식은 환경, 특히 경제적인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사회는 실재(實在)이고 개인은 그 사회에 종속적인 존재가 된다. 이러한 사상을 소위 '전체주의' (全體主義)라고도 한다.
공산주의 이론 : 마르크스주의는 일반적으로 공산주의와 연결되고, 실제로 마르크스주의의 유물사관과 변증법이 합쳐져 공산주의가 되었다.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은 변증법적인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인류의 역사는 생산 과정의 변화이다. 태초에 인간은 모두가 자연을 공유(公有)하고 살았으나, 생산 과정의 변화에 따라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의 계급이 형성되었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인 부르주아(bour-geois)는 공장 주인들이나 기업가들이고, 그들 밑에는 프롤레타리아(prolétariat) 노동자들이 있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은 보다 더 많이 갖고 싶어하고 덜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가진 계급에 대한 증오가 생긴다. 자연적으로 생산 과정과 부의 분배 과정에서 두 계급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변증법의 원리에 의하면 정(正, thesis)과 반(反, anti-thesis)이 있다. 하나의 계급이나 하나의 사건이 생기면 (이것이 '정' 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계급이 생기고 이것을 부정하는 사상(이것이 '반' 이다)이 생긴다. 그러면 정과 반은 투쟁을 하게 된다. 이 투쟁이 결국 합(合, synthesis)이라는 새로운 모습의 사회론 또는 사상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러면 이것이 또 하나의 '정' 으로 성립된다. 따라서 여기에 반대하는 '반' 이 또다시 '정' 에 도전해서 투쟁을 벌인다. 그 투쟁의 결과 또 다른 '합' 이 생긴다. 이런 연속적인 변화를 변증법적 진보라고 한다. 태초에 공유하던 자연 상태에서 생산 과정의 변천에 따라 더 많이 가진 부르주아라는 '정' 이 생기고, 이것을 반대하는 프롤레타리아라는 '반' 이 생긴다. 이 두 계급은 투쟁을 벌이게 된다. 공산주의자들은 이것을 계급 투쟁이라 하고 인류의 역사를 계급 투쟁으로 보고 있다. 이 계급 투쟁이 끝나면 부르주아 계급도 없어지고 프롤레타리아 계급도 없어져서, 계급 없는 새로운 사회의 '합' 이 이루어진다. 이 합 의 새로운 사회가 곧 '공산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이 사회는 계급 투쟁도 없고 빈부의 차이도 없는 그야말로 '지상 천국' 이라고 한다.
이런 지상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부르주아 계급을 상대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서 사회 혁명만이 '공산주의' 의 지상 천국을 도래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변증법적인 원리에 의하면 두 계급은 '정' , '반' 으로 자연스럽게 투쟁이 이루어지고 역사와 더불어 새로운 '합' 이 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노동 계급을 하루빨리 해방시키기 위해서 사회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노동자 혁명의 제일보는 프롤레타리아를 지배 계급으로 올려야 하며 그들은 혁명에 의해서 스스로 지배 계급이 되고 지배 계급으로서 낡은 생산 관계를 폭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자유주의 경제 사회에서는 자본가들이 자기의 이윤 추구만을 위해서 노동자를 착취한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빈부의 차이를 낳게 하고, 결과적으로 계급 투쟁을 가져오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자유를 누리나 노동자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생산은 노동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자본가들은 사유 재산으로 비대해진다. 더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 권력이 자본가를 보호해 주기 때문에 노동자는 더욱 비참하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도 재산을 공유해서 자유를 찾아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착취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얻기 위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고 외친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주장한 '지상 천국' 을 위해 사회 혁명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이 곧 '종교' 이다. 그는 종교가 이 지상에 존재하는 한 공산주의 천국은 올 수 없다고 여겼다. 공산주의 혁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제1차 사업으로 '종교 말살' 이라는 과제가 등장한다. 총칼을 불사해서라도 종교는 말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전투적인 무신론자' 라고 불려진다.
종교 이론 : 마르크스가 종교에 대해 극렬한 비판을 하면서 종교 말살을 외치는 이유는 그의 독특한 종교 이론에도 있지만 실제로는 종교가 역사적으로 지배 계급과 국가의 권력과 결합하여 그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 증오심에 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종교의 이념이 현실적이라기보다 내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보다 초월적인 개념을 지니기에 자신이 주장한 지상 천국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가 주장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에 가장 큰 적이 종교라고 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즉, 기업주는 노동자들에게 힘들고 어려운 노동자의 상황을 천국에서 대신 보상받을 수 있다고 위로하면서 노동자의 노동을 소위 '천국' 이라는 명목으로 착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이라는 종교적인 개념이 있는 한 그들의 혁명 과업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종교의 깊은 의미보다는 현실주의적인 사고 방식과 유물론적인 사고에 의해서 종교를 비판한 것이다. 그는 나름대로의 종교 이론을 정립하였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종교는 하나의 이론(理論)이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정신적인 한 부분이며, 일종의 철학이다. 철학이 '이론적' 인 것이라면 같은 의미에서 종교도 '이론적' 인 개념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인간의 지능은 단계적으로 발전하는데, 이 지능의 발전이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종교로 변한다. 종교는 일종의 자기 감정이고, 그것도 특수한 소수 인간들의 것이며, 인간의 환상에서 출발된 것이므로 종교적인 기대나 희망도 결국 환상으로 끝나고 만다. 종교가 말하는 인간의 구원이니 영원한 생명이니 하는 것은 현실 생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며, 그것은 몇몇 인간들의 그릇된 양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또한 절대적인 개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초월적인 철학 또는 종교의 초월성을 말하는 태도는 마치 어떤 풍자적인 신화에 외투를 입혀 놓고 그것을 해부하고 분석하려는 태도와 다를 바 없다" (《MEGA》 I, 1, 1, p.131). 그리고 그는 셀링(F.W.J. von Schelling)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인간 이성의 나약함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지만, 지금은 참된 인간성과 인간의 자유와 참 정신을 되찾을 때가 온 것 같다" (Ibidem,p.80).
② 종교는 일종의 '이데올로기' (Ideology)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당시 독일의 관념 철학, 영국의 경제학, 프랑스의 사회주의 등과 묘하게 결합되어 이루어진 특유한 사상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소위 '정신적인 존재' 에서 비롯하여, 윤리 · 법률 · 정치 · 형이상학 그리고 종교적인 내용이 모두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하였다. 이 모든 것은 현실과는 관계없는 뜬구름 같은 개념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 '이데아' 니 '양심' 이니 하는 것은 결국 물질적인 조건의 표현이다. 나아가서 정치적인 언어, 법률적인 표현, 윤리 문제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개념과 종교적인 언어는 결국 대중의 소리이다. 이 모든 것을 외치는 그들도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테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들은 현실성이 없는 '이데올로기' 라는 현상 속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어두운 방 속으로 이끌고 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그들은 근본적으로 구체적인 대상을 잘못 이해한 결과가 아니겠는가?"(Ibidem I, 5, p. 15)라고 말한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말한 구체적인 대상은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대상이다. 그는 이 모든 이데올로기 요소들은 인간의 온갖 자율성을 반대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종교를 법률이나 양심, 또는 형이상학과 같은 이성의 발상으로 현실의 삶과 아무 관계없는 이데올로기로 간주하고 있다.
③ 종교는 일종의 현상(現象, Phänomen)이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현상' 이란 개념은 헤겔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헤겔은 그의 《정신 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에서 '현상' 의 의미를 정신의 현상이라고 정립하였다. 즉 로고스 이념, 우주 이성 등으로 불리는 절대 정신을 가정하고 세계는 이 절대 정신의 변증법적 도식에 따라 발전하는데, 이러한 정신의 발전 과정을 기술하는 것이 곧 '현상학' (現象學, Phänomenologie)이라고 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는 이념적인 것은 현실의 경험과는 너무나 판이할 뿐만 아니라 추호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기고 '종교를 하나의 '현상' 이라고 규정하였다. 그에 의하면, 종교는 지상에서 가장 우매한 전형적인 현상이며 참된 진리를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현상의 실현이다.
그가 이렇게 종교를 하나의 '현상' 이라고 단정한 것은 종교가 실제 인간의 세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과, 종교는 인간 사회에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마르크스는 종교 현상은 인간을 불행하고 불안한 존재로 만들어 갈 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환상에서 깨어나 인간 자신의 실재성을 깨닫게 하여 새로운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태양의 빛으로 인간 이성을 성숙하게 하는 것이다"(《자본론》 I, p. 94).
④ 종교는 '인민의 아편' 이다. 이 말은 본래 공산주의자들이나 마르크스가 한 말이 아니다. 그 당시의 반종교인들 그리고 무신론자들 사이에 이 말이 하나의 유행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것을 마르크스가 인용하여 사용한 것뿐이다. 즉, 당시 반종교인들이 외쳤던 '종교의 아편성' 을 마르크스도 강조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편의 개념은 인간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약 성분으로 풀이된다. 한 번 아편에 중독되면 다시 헤어날 수 없듯이 '종교' 라는 아편에 중독되면 다시는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종교의 아편성' 이 주는 해독에 대해서 프랑스의 마르크스 전문가인 상브르(H. Chambre)는 《칼 마르크스에서 모택동까지》(De Karl Marx à Mao-Tse-Tung)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신은 무용한 존재이며 위험한 가상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신을 믿는 신앙은 근본적으로 제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가 인류에게 해독을 끼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종교적인 망상에서 해방될 때 사회 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아편이 인간에게 해독을 주듯이 종교도 인간 사회의 파괴와 마비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멸망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아편인 종교를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인간 개념 : 앞서 밝혔듯이 마르크스의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사상에 의하면 그에게 유일한 가치 개념은 '사회' 문제와 연결된 경제 이론이다. 따라서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경제 구조를 만들어 내는 노동하는 기계'로 전락되며, 인간 개개인은 전체주의, 즉 경제 사회에 완전히 종속된 존재가 되어 버린다. 다시 말하면, 농토에서 양곡을 얻을 수 있기에 그것이 유익하듯이 인간도 자연 속에서 자연을 개척해서 사회 건설에 이바지할 때 그 의미가 드러난다.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의 활동, 즉 사회 건설에 종사하는 노동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치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자연적인 필연성에서 나온다. 이것은 자연이 주는 인간의 필수 조건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빵을 찾아 헤맨다. 빵을 통해서 인간 육체의 만족을 찾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사실은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객관적인 의미요 궁극적인 대상이다"(《1844년의 경제학 · 철학 초고》, p. 75).
이 말에 의하면 인간은 육체적인 만족만을 찾는 본능적인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은 빵으로만 사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노골적으로 인간의 동물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물질적인 조건 속에서 감각적인 자연물로서 자연에 종속된 존재이다. 이러한 자연 종속의 인간 현상은 동물이나 식물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인간은 본래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특히 물질적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자신을 표현하면서 자신을 긍정하려고 한다. 이러한 현상에서 결국 인간의 행동은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추구하게 되며 이것만이 인간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Ibidem,p. 75).
인간 소외 문제 : 마르크스에 의하면,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은 어떤 정신적인 존재라기보다 오히려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존재이다. 이런 인간이 노동을 통해서 생산품을 생산하는 활동은 인간 그 자신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을 통한 '인간 소외 현상' 이 생긴다고 한다. 인간 소외의 가능성은 인간이 노동을 통해서 자신이 형성된다는 사실 속에 필연적으로 주어진 내용이다. 그런데 그에 의하면 이러한 소외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심화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제공하는 노동이 자신의 표현이 아니라 몇몇 자본가들의 재산 증식을 위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하는 노동은 자신의 인간 형성의 내용이 아니고 노동자들을 지배하는 자본가들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인간 소외의 본질적인 문제는 제기하지 않고 오로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현상만 언급한다. 실상 모든 인간은 근원적으로 이질성(異質性)을 느끼는 생활 속에서 소외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대가를 전체 사회로 환원하는 데에서 오는 더 깊은 인간 소외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소외 문제를 종교와 결부시켜 소위 '종교적인 인간 소외' 문제를 제기한다. 종교는 그 자체가 전체주의 국가 이념과는 상반된 개념이며 종교의 모든 의식과 가르침은 현실적인 국가 제도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그런 이질적인 환경에 사는 종교인은 당연히 소외 의식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 은 인간 소외를 만들어 내는 기본적인 학문이며 인간에게 악한 요소가 된다. 종교인들이 말하는 '신학 이론' , 또는 '종교 의식' 등은 현실을 부정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현실적인 이론에 바탕을 두고 사는 사람은 마땅히 최대의 소외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의 종교적인 인간 소외에 대해서 칼베(Jean-Yves Calvez)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마르크스의 주장에 의하면 국가와 종교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모순 개념이 전제되지 않을 수 없다. 즉 국가를 긍정할 때는 종교는 부정되어야 하며 종교를 긍정할 때에는 국가가 부정되어야 하는 이율 배반적인 모순을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적인 윤리 도덕 내지 종교적인 양심을 갖고 현실적인 국가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자가 당착이다. 그러기에 여기서 비롯되는 종교적인 인간 소외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Lapensée de Karl Marx, p. 63).
또한 마르크스는 "인간이 신(神)께 자신을 맡기는 그만큼 자신은 더욱더 초라해진다"(《MEGA》 I, 6, p. 271 ; Deutsche Brusseler Zeitung, 9월 12일)고 주장한다. 즉, 인간이 하느님과 관계를 갖는 그만큼 종교적인 소외를 느낀다는 것이다. 신앙인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회 사이에서는 그만큼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인간이 초월성을 주장하는 그만큼 이 현실 세계에서 소외를 당한다. 초월적인 하느님을 찾고 영혼 불멸과 영원한 생명을 설명하는 사회 속에서는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사회는 죽어 버린다. 즉 인간의 실제적인 행복이 환상적인 종교 세계에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므로 종교인들은 근원적으로 인간 행복에서 탈락된 불행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마침내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하늘을 비판해서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해야 한다" (Ibidem, p.610).
〔신마르크스주의〕 신마르크스주의(Neo-Marxism)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비판하는 방법으로 또는 수정하는 방법으로 형성되었다. 마르크스와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엥겔스는 조심스럽게 마르크스주의가 변화되어야 한다며 좀바르트(W. Sombar)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마르크스의 세계관 전체는 어떤 주의(主義)가 아니라 하나의 방법이며 이 방법은 어떤 정해진 교설(敎說)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계속되는 연구를 통해서 새로운 출발점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이 말은 신마르크스주의의 출현을 예견한 것이다. 특히 마르크스주의는 실천 이론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신마르크스주의의 경향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마르크스의 후계자들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합리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주력을 모으고 있다. 이를 위해 그들은 후기 자본주의' 또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또한, '독점적 자본주의' (Monopol Kapitalis-mus) 또는 '선진 산업 사회' (Fortgeschrittene Industriegesell-schaft)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새로운 시민적인 이데올로기 개념으로 '신자본주의' , '신노동 계급 등의 용어를 쓰면서 신마르크스주의의 형태를 구사하려 한다. 특히 마르쿠제(H.Marcuse)는 '담합 자본주의' (Korporativer Kapitalismus)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신마르크스주의의 한 사람인 만델(Mandel)은 사회주의의 전제 조건으로 생산의 풍요를 주장하면서 '상품 경제' 와 '화폐 경제' 의 소멸을 위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신마르크스주의자인 체 게바라(Ché Guebara)도 새로운 종류의 사회주의 경제 형태를 요구하였다. 그는 자본주의 붕괴 이후 곧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상품 생산의 양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남겨 준 부패한 무기를 가지고 사회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바라는 마르크스주의의 변화에 대해서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는 물질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인간도 동시에 창조해 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마르크스의 인간관도 수정되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신마르크스주의는 주로 경제적 구조나 정치 형태의 구조 변화를 요구하는데, 이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이론에 대한 깊은 분석과 경제학적인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전체주의 국가관은 마르크스의 후계자 레닌(N.Lenin)과 스탈린주의로 연결된다.
〔볼셰비즘〕 마르크스주의는 볼셰비키(Bolsheviki, 러시아 사회 민주 노동당의 한 분파로 소련 공산당의 전신)가 내세운 과격한 공산주의 이론으로 현실화되었는데, 이를 볼셰비즘(Bolshevism)이라 한다. 이는 볼세비키의 지도자인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적 바탕에서 혁명의 방법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다. '레닌주의' 라고도 불리는데, 러시아 공산당의 기본 강령(綱領)일 뿐만 아니라 국제 공산당의 교서 역할을 하고 있다. 볼세비즘은 일국 사회주의의 가능, 무산 계급의 독재, 공업의 국유화, 농업의 공영 농장화, 의회주의의 주인과 합법주의의 배척 등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은 자본주의를 넘어뜨리기 위한 각종 공산당 조직 원리와 전술 등을 포함하고 있어 공산주의 이론의 정통파를 이루고 있다.
〔교회의 입장〕 마르크스주의는 인류 역사에 출현하면서부터 그리스도교와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회의 입장에서 보기에 무엇보다도 그것이 주장하는 무신론은 신과 종교를 거부하였고, 그 안에 내포된 유물론은 영혼과 내세를 부인하였다. 그 결정론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거부함으로써 윤리적 가치가 들어설 여지를 남기지 않았으며, 혁명을 통해서만 참된 인간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행동 전략은 사회 계급간의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였고, 국가까지도 폭력으로 전복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사유 재산권을 박탈하였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로부터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해 일할 의욕을 빼앗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 그래서 1878년 12월 28일 교황 레오 13세는 〈구옷 아포스톨리치 무네리스>(Quod Apostolici Muneris)에서 사회주의를 하나의 '재앙' 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기존하는 모든 법률, 권위, 복종 관계와 불평등을 거부하고 심지어 결혼의 유대와 재산 소유권마저 폐기함으로써 사회의 전복을 획책하는 사상이기에 이는 마땅히 뿌리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스탈린 치하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이제 공산주의의 실체로 나타나 이 둘이 사실상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1937년 3월 19일에 비오 11세는 <디비니 레템토리스>(Divini Redemptoris) 를 발표하면서 공산주의를 본질적으로 악한 것' 이라 선언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의 적지 않은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태도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점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태도와 개방적인 자세로 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브라질의 헬더 카마라(H.P.Camara) 대주교는 중세기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비그리스도교 사상인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받아들여 그것을 그리스도교에 접합시켰던 것과 같이, 마르크스주의와 그리스도교간의 종합을 제의한 바 있다. 남아메리카의 해방 신학 운동에서는 적어도 경제 · 사회 분석 방법으로서 마르크스식 방법을 원용하는 일이 흔히 있다. 그리스도교는 계급투쟁이 사실상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진영에 서서, 그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남아메리카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도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서 통치해 줄 것을 원하고 어떤 이들은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하기도 한다. 칠레에서는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자였던 아엔데(S.G. Allende) 정부(1970~1973)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지지를 얻은 바 있었고,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그리스도인들' 이라는 국제적인 모임을 탄생시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신좌익 가톨릭 신자들' 이라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반드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현대 세계가 놓여 있는 정황을 직시할 때 혁명적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투쟁에 가담하는 일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교회 자체 내에 심각한 갈등을 초래하였고 주교들과 교황청으로부터 여러 형태의 경고가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교회의 공식 문헌에서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분명히 구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노동 헌장> 반포 80주년을 기념해서 교황 바오로 6세가 1971년 5월 14일에 발표한 교서〈팔십 주년>(Octogesima adveniens)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는 중요한 몇 가지 차이가 있다. 교서에서 그리스도인은 "마르크스주의적 이데올로기, 무신론적 유물론, 폭력의 변증법, 전체 안에 개인의 자유를 흡수해 버리는 태도, 그리고 인간과 개인 및 전체 역사 안에서 일체의 초월을 부인하는 입장에 가담해서는 안된다"(26항)고 선언한다. 그러나 교황 바오로 6세는 '역사적 운동' 과 '잘못된 철학적 가르침' 을 엄격히 구분하여, 전자의 예로 사회주의를 들고 그것이 지니고 있는 여러가지 긍정적인 사회 및 경제적 목표를 지적하고, 후자의 예로 무신론을 들면서 이런 잘못된 철학적 가르침들이 역사적 운동에 자극을 주었고 아직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30항). 교황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면서, 무신론적 유물론에 기초를 둔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만을 갖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마르크스주의 자체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 종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된다고 주장하는 신자들이 있음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교가 그런 마르크스주의에 좀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것을 주장하는 신자들이 있음을 시인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라 할 때 그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또 다른 용례들을 열거한다. 그 말은 우선 계급 투쟁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가 하면, 일당 독재 체제하의 전체주의적 정치 세력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또 역사적 유물론에 기반을 둔 이데올로기, 그리고 끝으로 "사회 및 정치 현실을 분석하기 위한 엄밀한 방법으로서의 과학적 활동, 또 이론적 지식과 혁명적 변혁의 실천 사이에 있는 합리적 연결선이라고 하는 역사적으로 확증된 사실에 대한 과학 활동" (34항)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황 바오로 6세는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그 이데올로기가 언제나 긴밀하게 맺어져 있어서, 그것은 항상 전체주의적 사회로 이끌고 갔음을 상기시키면서 경계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최근에 가장 상세하고 종합적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 입장으로는, 1984년에 신앙 교리성에서 발표한 <해방 신학 일부 측면에 관한 훈령>과 후속 훈령으로 1986년에 발표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해방>을 들 수 있다.
〔사목적 접근 방향〕 최근 들어 교회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태도에 변화를 가져온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교회는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한 노력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에 속한다는 사실을 늘 강조해 왔다는 점이다. 공의회 문헌들 중에서도 특히 <사목 헌장>은 교회가 세상의 일에 적극 뛰어들어 현세 질서를 바로잡는 일에 투신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교황 요한 23세나 교황 바오로 6세의 여러 회칙들, 예를 들어 <어머니와 교사>, <지상의 평화>, <민족들의 발전>, <현대의 복음 선교>, 〈팔십 주년> 등과 1971년과 1974년에 있었던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한결같이 '세상에서의 정의' 를 중심 문제로 취급하고 있다. 성서학 역시 역사 안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되었고, 하느님을 무엇보다도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자' 로 제시하였다. 유럽에서 정치 신학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남아메리카에서 해방 신학이 나타남으로써 여타의 지역에서도 정의를 추구하는 운동에 큰 자극을 주었다. 둘째, 정치 · 경제적 성격을 띠는 몇 가지 움직임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태도 변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요컨대 부의 분배가 얼마나 불균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더구나 외국 원조나 기술 이전 등을 통한 이른바 '개발' 정책이 가난한 나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제1 세계라고 하는 잘사는 국가 내부에서조차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는 수에 이르게 되었다. 셋째, 마르크스주의 내지 공산주의 자체 내부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나 공산주의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대(對)종교 정책이 나타난 것이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와 그리스도교의 관계 내지 그 사이의 공존 가능성을 논하는 자리에서 가장 중심적인 주제는 무신론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목 헌장>에서 매우 강력하게 교회와 복음의 선교자들이 현대의 무신론을 진실되게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21항)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의 무신론에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가라는 사목 신학상의 물음은, 하느님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유신론자인 우리 그리스도인 자신들이 현재 이 파악하기 힘든 신비에 어떻게 근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그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가톨릭 사목 신학은 완고한 무신론자에 대해서 상대가 악한(惡漢)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접근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새로운 접근 방법을 취하여 현대 무신론의 참 원인이란 어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 공산주의 ; 네오 마르크시즘 ; 변증법적 유물론 ; 볼세비즘)
※ 참고문헌  《MEGA》/ Plechanow Georgii, Die philosophischen und soziologischen Anschaugen von KarMarx, Moscow, 1956/ Reding Marcel, Der politishe Atheismus, Graz · Wien · Köln, 1957/ H. Chambre, De Karl Marx à Mao-Tse-Tung, Paris(Spes), 1962/ Jean-Yves Calvez, La pensée de Karl Marx, Paris, 1956/ S.H. Rigby, Marxism and History, Manchester Univ., 1987/ Ferruccio Rossi-Landi, Marxism and Ideology, Oxford, 1990/ Stephen Resnick · Richard Wolff, Rethinking Maxism : Struggles in Marxist Theory, Brooklyn, 1985/ David McLellan, Marxism and Religion, London, 1987/ Martin Jay, Marxism and Totality, Cambridge, 1984/ Patrick Goode, Reading in Maxist Sociology, Oxford, 1983/ Martin Seliger, The Maxist Conception of Ideology, Cambridge Univ., 19771 Frank Parkin, Marxism and Class Theory, London, 1979/ Thornton Anderson, Masters of Russian Marxism, New York, 1975/ Martin Shaw, Marxism and Social Science, Pluto, 1975/ Do-Sik PAK, L 'athéisme dans la réflexion de Karl Marx sur la religion, Sorbonne 대학 학위 논문, 1976/ 박도식, 《칼 마르크스의 종교 이론》, 미루나무, 1992/ 양한모, <마르크스주의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마르크스주의와 가톨리시즘》, 한국 천주교 북한선교위원회, 1988, pp. 223~2241 이병호, <맑스주의와 가톨리시즘>, 《신학 전망》 79호(1987. 겨울), 광주 가톨릭대학 전망 편집부, 1987, pp. 2~31. 〔朴道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