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수호 성인. 수도자. 투르의 주교(371~397). 축일은 11월 11일(동방 교회는 11월 12일). 헝가리 촘바틀리(Szombathely)의 사바리아(Sabaria)에서 이교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에서 성장하였으며 로마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예비자가 되었다. 마르티노는 몹시 추운 어느 날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성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거지를 만났으나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 없었다. 그는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하나는 거지에게 주고 다른 한 쪽은 자기가 걸쳤다. 그런데 그날 밤 꿈속에서 자기가 거지에게 준 반쪽 망토를 입은 예수가 나타나 "아직 예비자인 마르티노가이 옷으로 나를 입혀주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이 신비의 체험 후 18세 때 세례받고 군대에서 제대한 뒤 프와티에(Poitiers)의 힐라리오를 찾아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 힐라리오는 아리우스파 황제 콘스탄티누스 2세(353~361)에 의해 추방되어 일리아(lyia) 지방에서 아리우스파에 반대하여 활동하였는데, 마르티노는 그 후 수도 생활을 선택하여 밀라노와 갈리나리아(Gallinaria) 섬에서 살다가 힐라리오가 다시 주교직에 복귀하였을 때 프랑스로 돌아왔다. 360~361년경 프와티에에서 8km 정도 떨어진 리귀제(Liguge)에 프랑스에서는 최초로 수도원을 세운 마르티노는, 그 후 투르의 주교가 죽자 투르의 주민들이 그들의 주교가 되어 주기를 간청하였으나 거절하였다. 그러나 병든 사람이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도시로 갔다가 결국 371년 7월 4일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마르티노의 볼품없는 외모와 헝클어진 머리는 주교 서품식에 참석하러 온 몇몇 주교들로 하여금 그가 주교직에 별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할 정도였다. 마르티노는 한동안 자신의 성당에서 활동하다가 80명의 제자들과 함께 투르 외곽의 마르무티에(Marmoutier)에서 다시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암브로시오 성인의 정신을 본받아 이단자들을 사형에 처하는 이타키우스(Ithachius) 주교의 원칙을 거부하였고 이러한 일에 황제가 간섭하는 것도 반대하였다. 가끔씩 막시무스(Maximus, 383~388) 황제의 상담을 해주던 그는 황제에게 이단자인 프리실리아누스(Priscillianus)의 생명을 구해 주도록 간청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노력은 마르티노 자신이 같은 이단자라는 모함을 받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386년에 프리실리아누스는 처형되었으나 그는 계속해서 스페인에 있는 프리실리아누스 추종자들에 대한 박해를 중지해 주도록 청하였다. 캉드(Candes) 지방을 사목 방문하던 중에 병에 걸린 마르티노는 397년 11월 8일 사망하였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명성을 얻었고, 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이다.
아낌없는 자선과 이단자들을 성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비난과 중상까지도 기꺼이 참아 낸 마르티노 성인의 생애는 철저한 그리스도 사랑의 실천자로서 모든 이의 귀감이 되고 있다. "여러분은 서로 친절하고 자비롭게 대하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는 사람이 되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스러운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시오" (에페 4, 32-5, 1) .
※ 참고문헌 김정진 역, 《가톨릭 성인전》 상, 가톨릭출판사, 1987/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바오로출판사, 1994/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H.G.J. Beck, 《NCE》 9, pp. 303~304. 〔宋炯萬〕
마르티노, 투르의 Martinus, Tourenus(316?~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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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의 마르티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