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국가 중의 하나. 현재의 지명은 텔 하리리(Tell Hariri. 유프라테스 강 서안에 자리잡은 강변 도시 데이르 에즈 조르(Deir ez-Zor)에서 남쪽으로 85km 내려가면 그리스-로마 도시였던 두라-에우로포스(Dura-Europos)가 있는데, 거기서 또다시 남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또한 유프라테스 강 서안에 위치한 시리아의 마을 아부-케말(Abou-Kémal)에서 북동쪽으로 12km 떨어진 지점이다.
〔역 사〕 기원전 28세기경 당시 남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한 수메르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셈족 일파가 이곳에 도시를 세웠는데, 기원전 2400년경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국가 라가시의 침공을 받아 파괴되었고, 이어 아카디아 제국(기원전 2450~2250)의 지배를 받았다. 아카디아 제국이 멸망하자 한 세기 반 동안 마리는 격동기를 맞아 침체되었으나,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국가 우르(Ur) 제3 왕조(기원전 2110~2003)는 전권 총독(shakkanak)을 두어 이곳을 통치하기도 하였다.
기원전 2000년경에는 우가리트 동쪽에 살던 유목민 아모리족이 메소포타미아 각지로 이동하면서 작은 왕국을 여럿 세웠다. 이들 아모리족은 오른쪽 아들들(Bene Yamina)과 왼쪽 아들들(Bene Simal)로 구분되는데, 마리를 점령한 아모리족은 왼쪽 아들들 그룹에 속하였다. 마리의 왕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사람은 야흐둠림(Yahdum-Lim, 기원전 1815~1796)과 짐리림(Zimri-Lim, 기원전 1775~1761)이었다. 야흐둠림은 마리뿐 아니라 그 북쪽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테르가(Terga)와 투툴(Tuttul) 지역까지 다스렸고, 마지막 왕 짐리림의 궁전은 방이 3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이 궁전 안에 있는 문서 보관소에서 25,000개가 넘는 쐐기 문자 점토판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은 매우 다양해서 외교 · 행정 문서는 물론 왕궁의 생활을 낱낱이 적어 놓은 것도 있었고, 특히 군사 지도자는 유목민의 동태에 관해 보고서를 올리곤 하였다. 왕궁 옆에는 거대한 층계탑(Ziggurat)이 있었으며, 도성 곳곳 심지어 왕궁 안에까지 신전들이 있었다. 이쉬타르(Ishtar, 사랑의 여신), 닌후르사그(Ninhursag, 산의 여신) 샤마쉬(Shamash, 태양신), 아쉬타라트(Ashtarat, 북서 셈족의 여신), 다간(Dagan, 곡식의 신)을 모신 신전들이었다. 짐리림이 바빌론의 왕 함무라비를 지지하다가 갑자기 함무라비의 숙적인 에슈눈나(Eshuuna)의 왕을 편들자, 함무라비는 에슈눈나를 점령하고 나서 기원전 1761년 마리를 초토화하였다. 진흙 벽돌로 건설된 마리는 흙 속에 묻혔고, 그 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발굴과 의의〕 1933년 12월 유목민들이 동족을 매장하고자 땅을 파다가 우연히 머리 없는 입상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이 프랑스 고고학자 앙드레 파로(André Parrot, +1980)의 눈을 끌어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 후 그는 1972년과 1974년 연속으로, 파괴된 궁전이 있던 두 개의 평야를 발견하여 학계에 소개하였으며, 1978년 이후의 발굴 작업은 장 마르게롱(Jean Margueron)이 이어받았다. 1979년부터 1993년까지 9개의 평야가 발굴되었고, 더불어 마리 왕국 시기의 환경이나 사람들의 정착, 이주 등을 연구하기 위해 유프라테스와 카부르 계곡을 체계적으로 탐험해 갔다.
발굴 작업의 결과와 의의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즉 정치적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조각과 회화로 대표되는 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던, 고대에서 가장 커다란 도시 중 하나를 재발견한 것이다. 또한 이 고대 도시의 발굴로 인하여 유프라테스의 계곡에 있었던 고대 도시의 역할이나 도시화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다.
성서에 마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기원전 1800년경 아브라함이 유프라테스 강 남부에 있는 우르를 떠나 북부의 하란으로 이주할 때 지리적으로 보아 마리 왕국을 통과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이유에서 마리의 발굴은 아브라함 시대의 정치 · 경제 · 사회 · 종교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 고고학, 성서학의)
※ 참고문헌 《Cath》 8, pp. 457~4591 《EJ》 11, pp. 972~989/ (ABD》4, pp. 525~538/ 《EU》 14, pp. 540~544/ Alan Millard, 정태현 역, 《성서 시대의 보물들》, 성바오로출판사, 1992, pp. 80~90/ 안성림 . 조철수,《사람이 없었다. 신도 없었다》, 서운관, 1995, pp. 27~281 Syrie, Memo-rie et Civilisation, Paris, Flammarion, 1963, pp. 96~ 161. 〔鄭良謨〕
마리
〔영〕M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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