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스타 교육 수사회 - 教育修士會 [라]Fratres Maristae a Scholis (F.M.S.)

〔프〕Institut des Frères Maristes des Ecoles · 〔영〕Marist Teaching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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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 로마 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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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 로마 모원.

1817년 1월 2일 삼파냐(Marcelin Joseph Benôit Cham-pagnat, 1789~1840) 신부가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을 하느님께 인도한다는 목적으로 프랑스 리용(Lyon) 근교의 라발라(La Valla)에 설립한 수사회. '마리아의 작은 형제회' (Little Brothers ofMary)로 불리기도 한다. 본부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으며, 한국 지구는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85-1번지에 있다.
〔창립과 영성〕 1789년 5월 20일 르 로제(LeRosey)에서 태어난 샴파냐는 학생보다는 교사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초등학교를 중퇴하였다. 초등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적 능력에 있어서 항상 남보다 뒤질 수밖에 없었던 그는 신학교에서 그만큼 자기 자신을 엄격히 단련시키는 훈련을 쌓았다. 1816년 사제 서품을 받고 리용 교구 라 발라 본당의 보좌로 사목 활동을 시작한 샴파냐 신부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채 죽어 가는 청소년들이 주위에 너무 많음을 안타깝게 여겨 교육을 통한 사도직 수행이라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마리스타 사제회(Marist Fathers)에 창립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817년 1월 2일에는 신학생 시절부터 소망해 오던 평수사들로만 구성된 교리 교사 단체의 설립을 구체화하여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 를 설립하였다.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의 영성을 겸손한 마음인 '단순성' 에 두었던 샴파냐 신부는 이를 마리아 신심, 육체적 노동, 가족 정신을 통해 키워 나갈 것을 강조하였다. 샴파냐 신부는 회원들에게 성모 마리아의 인간적인 면과 영적인 면을 닮을 것을 강조하였고, 설립자의 이러한 정신에 감화된 회원들 역시 "마리아를 통하여 모든 것을 예수께로,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마리아께" 라는 모토를 생활 지침으로 삼아 마리아를 공경하고 있다. 또한 샴파냐 신부와 그 회원들은 '기도하고 일하라' 는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을 따라 생활하고 있다. 입회 조건에 노동을 사랑하고, 한가한 시간을 추방해야 한다' 고 명시되어 있으며, 회원들은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의탁하는 기도 시간 외에는 노동을 함으로써 분심을 떨쳐 버리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영혼과 육체의 단련을 통해 회원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공동체(가족)에 대해 헌신하면서 청소년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성장과 세계 진출〕 샴파냐 신부는 주위의 온갖 반대와 어려움 속에서도 수사들과 함께 교육 사업에 전념하여 설립 2년 만에 라 발라에 마리스타 학교 를 건립하였고, 본당 직무에서 벗어난 1824년 이후부터는 수사 양성에 온갖 정열을 쏟았다. 이후 마리스타 학교는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배출하였는데, 1840년 무렵 프랑스에만 48개 학교에서 280여 명의 수사들이 활동하였고, 학생은 7,000여 명에 달하였다.
1836년 오세아니아의 첫 진출을 시작으로 세계 각지에서 교육 사업을 전개한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는 선교지역에서 많은 핍박을 받기도 하였다. 중국에서는 의화단(義和團) 사건으로 박해를 받았으며, 스페인에서는 내전(1931~1936)으로 인해 172명의 수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공산 치하에 있던 수사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1851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수도회 설립의 법적 인가를 받았고, 1863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회헌에 대한 승인을 얻은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는 1996년 9월 현재 스페인, 브라질,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 벨기에, 아르헨티나, 중국, 일본, 한국 등 98개 국 48개 관구에서 5,164명의 수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편, 1840년 6월 6일 사망한 샴파냐 신부는 1955년 5월 29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한국 진출과 발전〕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개최한 총회에서 각 관구마다 10%의 회원들을 의무적으로 선교지에 파견하도록 결정하였다. 이에 아시아 각국을 대상으로 파견지를 물색 중이던 멕시코 관구는, 1970년 지부 설치 여부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차베스(Arturo Chávez) 관구장과 루이스(Enrique Ruiz) 수사의 보고를 검토한 후 이듬해 9월 13일 루이스 수사를 비롯한 4명의 수사를 파견하였다.
이들은 서울 프란치스코 수도회 기숙사에 머무르면서, 명도원에서 한국어를 익히는 등 2년여 동안 한국에서의 사도직 활동을 준비한 후, 1972년 8월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수도원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성소자의 증가로 회원을 양성하기에 장소가 협소해지자 1973년 8월 합정동 메리놀 수녀원으로부터 부지를 인수받아 개축하고 이곳으로 입주하였다. 이때 합정동 본원에 수련소도 마련하였는데 외부인들의 잦은 방문으로 인해 수련자 양성에 어려움이 있게 되자 1985년에 수련소를 수원시 율전동으로 이전하였다. 1976년 2월 2일 3명의 첫 수사를 배출하였고, 1981년 4월 19일에는 첫 번째 종신 서원자를 배출하였으며, 1989년에는 지구로 승격되었다. 1996년 9월 현재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 가족으로는 종신 서원자 18명(외국인 6, 한국인 12), 유기 서원자 11명, 수련자 1명 등 30명이 있다.
〔사도직 현황〕 한국에서의 활동은 수도회의 고유한 영성에 적합한 교육 및 사회 복지 사업을 위주로 전개하고 있다. 교육 사업으로는 안동(1973~1986) 원주(1985~1989), 서울(1971~현재)에서 학생 회관 및 교육원을 운영하였고, 충북 충주(1988~현재)에서는 마리스타 기술교육원을 운영하고 있다. 1973년에 설립한 안동의 마리스타 학생 회관에서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일반 학교의 교과 과정 외에 기술 교육을 병행하여 전문 기술을 갖춘 직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1986년까지 운영하다가 안동교구로 이관하였다. 또 원주교구의 요청에 의해 1985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원주의 마리스타 교육원은 청소년 및 일반인들을 위한 피정 장소 및 교리 교사들의 교육장으로도 활용하였다. 원주 시내의 젊은이들에게 수화(手話) 교육을 실시하여 장애자들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도 했는데, 종합 사회 복지관으로 개편하려는 교구 계획에 따라 1989년 8월 31일자로 원주교구에서 철수하였다. 서울 합정동 본원 내에 신축한 마리스타 교육관은 피정 및 교리 교육을 주로 실시하여 왔으며, 앞으로는 전문적인 청소년 교육관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충북 충주시 산척면에 위치한 마리스타 기술 교육원은 1964년 사회 복지가 스미스(E. Smith)가 시작한 요한 보스코 기술 교육원에 기원을 두고 있다. 설립 당시 용산에 있다가 마포구 합정동으로 이전하여 운영되던 이 기술 교육원의 운영권을 넘겨받은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는 망원동에 새 부지를 물색하였으나,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로 인해 서울시로부터 지방 이전을 요청받아 충북 충주시에서 개원하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서는 80여 명의 원생들이 목공예반, 금속 공예반으로 나뉘어 기술 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별도의 검정 고시반도 운영하고 있다. 한편, 원생들은 만 18세가 되면 교육원을 졸업하여 사회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서울 본원 근처에 '샴파냐의 집' 을 마련하여 원생들의 자립 의지를 키워 주고있다.
사회 복지 사업으로는 벨기에인 캄비에(Therése Cam-bier) 여사가 1971년 7월 구라 사업(救癩事業)을 목적으로 경북 영주에 개원한 다미안 피부과 의원을 1981년 안동교구로부터 위임받아 운영하였는데, 4개 시 · 군의 재가(在家) 나환자와 2개 정착 마을에 있는 나환자들을 진료하는 외에도, 재가 나환자 자녀들의 학비 지원, 극빈 나환자의 생계비 일부 지원, 정착 마을의 자활 사업 보조 등도 추진하였다. 그러나 본래의 교육 사도직에 전념하기 위해 1996년 6월 30일자로 사회 복지 법인 다미안의 운영권을 안동교구로 이양하였다. 현재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는 불우 청소년들의 직업 교육과 취업 알선은 물론, 그들이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장기적인 관리 프로그램 마련과 대규모의 청소년 캠프장 설치 등을 계획하고 있다.
※ 참고문헌  한국 남녀 수도자 장상 협의회 편, 《오늘의 수도자들》, 분도출판사, 1992/ 백인실,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 《교회와 역사》 244호(1995. 9), 한국교회사연구소, pp. 10~16/ 《원주교구 삼십년사》, 천주교 원주교구, 1996/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부록, 가톨릭 출판사, 1984/ 《경 향잡지》 1534호(1996. 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p. 16~23/《천주교 사회 복지 편람》,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사회 복지위원회, 1996/ 《가톨릭 사전》/L.A. Voegtle, 《NCE》9, p. 228.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