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구약성서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물론 마리아와 관련된 진술들을 찾아보면 창세기 3장 15절, 이사야서 7장 14절, 미가서 5장 1-2절 등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간접적으로 찾아볼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신약 성서의 내용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마리아에 대한 신약성서의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마리아는 예수의 생애 초기에 짧게 등장하고 예수의 공생활 중에는 매우 기묘한 상황에서 한 번 나타나며, 마지막으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 상황에서 다시 한번 나타날 뿐이다. 그 외에 마리아는 예수의 결정적인 활동 시기 즉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때부터 승천하는 날까지(사도 1, 22)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신약성서의 주요한 관심이 세례에서 부활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에 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예수의 어머니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을 제외하고 마리아에 대한 일차적인 증언은 신약성서의 후기 저서인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에서 비로소 형성되었다. 이 두 복음서의 1장과 2장에 나오는 예수의 유년기 설화에서 마리아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으나, 성서를 통하여 '역사적 마리아' 를 알아내기는 힘들다. 다만 하느님의 구원 계획 속에 나타난 마리아의 모습과 그 위치를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바오로 서간 : 마리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신약성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구절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갈라디아서 4장 4절이 간접적이긴 하지만 중요한 언급이다. 이 구절의 '여인에게서 태어남' (γενόμενον ἐκ γυναικός)은 예수의 진정한 인성(人性)을 의미하는데 동정녀 출산과 연결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많은 교부들과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동정 출산에 대한 첫 증언의 자료로 보았으나, 아기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진술만으로 바오로가 동정 출산을 암시하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오히려 바오로의 관심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인성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있었다. 사실 성서에서 '여인에게서 태어남' 은 인간적 조건을 표현한다(욥기 14, 1 ; 15, 14 ; 마태 11, 11 : 루가 7, 28). 바오로는 단순히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모성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어머니임을 이야기할 뿐이다. 따라서 동정 잉태에 관한 바오로의 입장은 중립적이다.
마르코 복음 : 복음서들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마르코 복음에서는 간단하게 마리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마르코 복음서에는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에 나오는 예수 탄생과 예수의 유년기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다만 마리아에 관하여 두 번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3, 31-35 ; 6, 3).
3장 31-35절은 문맥상으로 3장 20-21절과 관련되어 있다. 3장 21절의 '친척들' 과 3장 31절의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 , 그리고 마리아와 관련되어 나오는 6장 3-4절의 '예수의 형제들과 누이들' 의 관련성 문제는 마태오 12장 46절과 루가 8장 19-21절과 더불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관한 문제 제기의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아델포스(ἀδελφός, 형제)와 아델페(ἀδελφή, 누이)는 일반적으로 친형제와 친자매를 뜻하나 신약성서에서는 좀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든다면, 마르코 복음 3장 34-35절에서는 예수를 중심으로 맺어진 영적(靈的) 가족 관계 안에서의 형제 자매를, 마태오 복음 5장 22-24절에서는 이웃 사람을, 마르코 복음 6장 17-18절에서는 이복 형제(異腹兄弟)를 뜻한다. 칠십인역의 창세기 29장 12절에서는 '형제' 나 '친척' 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히' (אָחִי)를 아델포스로 옮겨 놓았다. 이렇게 볼 때 아델포스나 아델페의 표현은 친형제 자매만을 뜻하지 않고 좀더 광범위하게 친척까지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자들간의 의견이 여러 가지여서 본문 자체만으로 해석을 내리기는 어렵다.
마르코 복음사가의 신학적인 관심은 숨겨져 있던 메시아인 예수의 영광이 부활한 후에야 비로소 제자들에게 계시될 것이라는 데 모아졌는데, 이러한 취지에서 마르코는 예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예수의 본연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혈연 관계로 예수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채우려는 자세를 통하여 예수와 유대를 맺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 : 마태오는 1~2장을 예수의 족보, 탄생 그리고 유년기에 관한 이야기로 꾸미고 있는데, 이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아주 돋보이게 묘사되어 있다. 1장 1-17절의 족보에서는 예수가 구약의 이스라엘과 온전한 지속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다윗의 후손이고 메시아임을 밝히고 있다. 문체상으로 볼 때 "'갑' 은 '을' 을 낳았다"라는 형식들이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가 태어나셨다" (1, 16)라는 표현으로 예수와 마리아의 관계를 돋보이게 하였다. 족보에 여자들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유대인의 풍습으로 보아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말, 라합, 룻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 바세바와 함께 마리아가 언급되고 있다. 이들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에 참여한 여인들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이 선택한 여인으로서 하느님의 메시아적 구원 계획을 실현시킨 여인이다.
1장 18-25절의 예수 탄생 이야기에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의 역할과 그와 약혼한 젊은 여인 마리아가 두드러진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1장 23절에서 "보라, 동정녀가 몸가져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르리라고 이사야서 7장 14절을 인용하면서 예수의 탄생이 메시아 탄생 예언의 성취임을 강조하였다. 이사야서 7장 14절에 나오는 히브리어 알마(עַלְמָה, 젊은 여인)를 칠십인역에서는 파르테노스(παρθένος, 동정녀)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기원전 2세기부터 유대교 내의 어떤 전통이, 앞으로 일어나리라 고대되는 이 특이한 탄생을 동정녀인 모친에게서 태어나는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해하였음을 뜻한다. 마태오 복음 1장 23절에 인용된 이 신탁(神託)을 고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적용시켰다. 그러나 마리아의 동정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을 복음서의 연구를 통해서 입증할 방법은 없다. 예수 탄생 이전의 마리아의 동정성 언급은(1, 25) 출산 후에 요셉과의 부부 관계를 긍정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마리아의 태중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가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이긴 하지만, 그 사건이 이루어진 방법은 인간의 역사와 한계를 초월한 하느님의 주도권에 속한다. 이 방법을 마태오 복음사가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1, 18)라고 표현하였다.
예수의 공생활 가운데 등장하는 마리아와 함께 친척들이 예수를 찾는 설화인 12장 46-50절에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예수에게는 인간적인 혈연 관계보다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는 새로운 관계가 더욱 중요한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마태오의 관심은 마리아의 인격적인 면보다 예수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마리아의 위치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제자들의 모습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는 요셉과 비슷하게 하느님께 순종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루가 복음 : 루가 복음사가는 예수의 탄생과 유년기 설화(1-2장)와 예수의 공생활(8, 19-21 ; 11, 27-28)과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사도 1, 14) 안에서 마리아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루가 복음 1~2장에서 마리아는 예수 탄생 예고(1,26-38)와 예수 탄생(2, 1-21) 이야기에 등장하고 그 주위로 세례자 요한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다(1, 5-25.39-56. 57-66. 67-80).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탄생 예고의 구조는 구약성서적인 배경을 띠고 있다. 천사가 나타나고(1, 11. 28), 두려워하고(1, 12. 29), 천사는 나이 든 불임의 여인과 동정녀로부터의 출생과 아이들의 이름과 그들의 사명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섭리를 예고한다(1, 13-17. 30-33).
예수 탄생 예고(1, 26-38)에서 루가는 마태오처럼 분명하게 예수의 동정 잉태를 단언하지 않는다. 1장 28절에서 마리아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은총을 입은 이여' (κεχαριτωμένη)로 불린다. 이 호칭은 하느님과 인격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기뻐하소서' (Χαῖρε)는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다른 모든 대목과는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이런 구조는 구약성서 안에서만 몇 군데(요엘 2, 21 ; 스바 3, 14 ; 즈가 9, 9 ; 애가 4, 21) 나올 뿐이다. 이 인사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풀어 주는 하느님의 구원을 기뻐하는 '시온의 딸' 과 연관되어 나오기 때문에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는 마리아를 시온의 딸로 생각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침묵 가운데 곰곰이 생각하고(1, 29) 좀더 자세한 설명으로써 이해에 도움을 얻고자 한다(1, 34). 천사의 대답(1, 35-37)에서 제시되는 것은 마리아는 하느님의 역사하심으로 아이를 낳게 되고, 이 아이는 하느님의 활동적인 개입으로 인해 거룩한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리게 될 것(1, 35)이라 한다. 또한 그 일은 엘리사벳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림으로써 실제적인 것으로 확증되며(1, 36), 하느님의 신뢰성과 권능을 지시함으로써 확실히 실현되는 것으로 제시된다(1, 37).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1, 38)라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한다. '주님의 여종' (ἡ δούλη κυρίου)은 성서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로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의 탄생으로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이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호의에 적극적인 자세, 기쁨으로 가득 찬 자세로 모성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마리아는 하느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하느님 백성을 구원하였던 구약의 지도자들과 예언자들의 계열에 속한 '주님의 여종' 으로 부각되고 있다.
루가 복음 1장 26-38절의 내용은 1장 39-56절의 이야기를 통해 보완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마리아에게 이루어진 일과 이 일을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수락에 대해 집중되어 있다.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1, 3945)에서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이루어진 일에 관해 말한다. 마리아는 모든 여인들 가운데서 축복받았으며(1, 42) '내 주님의 어머니' (1, 43)란 존경의 말을 듣는다. 또한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복되다고 찬양받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1, 45). 이처럼 마리아는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여인으로 엘리사벳에게 알려지고 증언된다. 마리아의 노래(1, 46-55)는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모든 세대의 반응을 언급하면서 하느님 자비의 특성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 노래는 구약 전승을 이어받은 찬미가의 형태를 띠고 있다. 메시아의 시대, 새로운 창조의 시대의 모든 이들은 구세주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통하여 그들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며 마리아를 복되다고 할 것이다(1, 48).
요셉은 그와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가고, 그곳에서 예수의 탄생(2, 1-7), 목자들의 방문(2, 16-20), 그리고 정결례(2, 22-38)가 이루어진다. 그 후에 소년 예수의 성전에서의 이야기(2, 41-52)가 나온다. 이 이야기들은 목격자의 증언으로서의 가치보다는 문학적이고 신학적으로 해석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나고 있으며, 이야기들 속에 나타나는 목자들의 말(2, 17-19)과 시므온의 예언(2, 34), 그리고 성전에서의 예수의 말(2, 49)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은 그 뜻을 마음속에 새겨 곰곰이 생각하면서 믿는 제자로서의 그녀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다(2, 19. 50-51 ; 참조 : 1, 38. 45)
예수의 공생활에서 마리아는 이름에 대한 언급 없이 8장 19-21절과 11장 27-28절에 등장한다. 이 구절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지속적인 제자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으며, 그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겨 순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실천한 참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루가 복음사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사도 행전 1장 14절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마리아가 초대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었음을 증언해 주는 유일한 성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루가는 마리아의 인격을 인상 깊이 묘사하고 있다. 루가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 탄생 설화 가운데 나오는 마리아의 모습은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하느님께 전인적(全人的)으로 위탁하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루가 복음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예수의 제자 신분과 일맥 상통한 것이다. 마리아의 노래' 는 신앙 고백이자 동시에 루가 복음사가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 선포이다. 루가는 마리아를 하느님 말씀에 경청하고 그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 간직하는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루가는 마리아의 직무를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마리아의 복되면서도 동시에 고통스러운 신앙의 태도를 부각시키고 있다.
요한 복음 : 단지 두 곳에서만 마리아가 등장하는데, 예수의 삶 중 결정적인 전환점, 즉 가나의 혼인 잔치(2, 1-12)와 십자가 아래(19, 25-27)에서 '예수의 어머니' (2, 1. 3. 5 : 19, 25-26)와 '부인' (γυνή, 2, 4 : 19, 26)으로 나온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의 공적 활동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 활동은 예수의 위력과 영광(1, 14 참조)을 계시하는 기적으로 시작된다. 마리아는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을 예수에게 말한다(2, 3). 마리아가 기적을 드러나게 청하지 않았지만 예수의 대답은 마리아가 기적을 청하였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부인, 부인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제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 (2. 4)라고 한 대답의 의미는 다른 복음사가들도 전하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예수의 태도와 일치하고 있다. 예수의 태도를 규정하는 것은 혈연 관계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데에 있다. 예수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말씀이 드러날 때에만 '그 시간' 이 오는 것이다. 요한 복음에서 '호라' (ὥρα, 시간, 때)는 예수의 수난과 구속 사업으로 자주 표현되고 있다(7, 30 ; 8, 20; 12, 23 ; 13, 1 ; 17, 1). 동시에 이 '호라' 는 예수의 영광의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예수의 대답에 마리아는 "그가 무엇이든지 당신들에게 이르는 대로 하시오"(2, 5)라고 함으로써 예수의 '때' 가 앞당겨지게 하였다. 동시에 예수의 공생활 중 처음으로 행한 이 기적으로 메시아인 예수의 영광이 드러나고, 제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2, 11) 역할을 수행하였다.
십자가 아래에 있는 마리아는 다시 '부인' 으로 불린다. 예수는 어머니에게 사랑하는 제자를 아들로, 그 제자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세운다. 이 말씀은 혈연 관계보다 하느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종말론적 관계를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의 공적 활동 처음과 십자가 아래의 죽음 앞에 놓인 중요한 '호라'와 관련하여 마리아를 신앙의 길을 걷는 어머니로 제시하고 있다.
요한 묵시록 : 12장을 보면 '하늘' 에서 '사내 아이' 를 출산한 '여인' 은 '용' 과 대적하고(12, 1-6), '땅' 에서 '사내 아이' 와 함께 '여인' 은 '용/뱀' 으로부터 피신한다(12, 13-17). 여기에서 요한 묵시록 저자는 근동의 신화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의 상징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꾸미고 있다. 12장은 '여인' 과 그녀의 '자손' 에 대한 하느님의 보호에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여인'은 구약의 하느님 백성과 신약의 하느님 백성, 즉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몇몇 학자들은 여인을 하와(창세 3, 15. 20)라고 여기며, 또한 새 하와인 시온의 딸로 메시아를 낳은 마리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묵시록의 저자와 초대 교회의 저술가들의 견해를 따르면서 마리아가 그 '여인' 과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 미〕 성서에 나타난 마리아의 모습은 예수를 낳은 어머니로 가장 많이 나타나지만, 때로는 알아듣지 못한 신앙의 여정을 걸으며 하느님의 뜻을 묵묵히 따르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마리아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나타나듯이 이웃의 어려움을 알아보고 예수에게 청하는 고운 성품 안에서 기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예수의 탄생 · 공생활 · 십자가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 안에 겸손하게 머물며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한 주님의 여종으로서의 모습이 돋보이고 있다.
마리아에 대한 성서 저자의 관심은 1세기 중엽에 서술된 바오로 서간에 간략하게 언급되었고, 그 이후에야 비로소 마리아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에서만 마리아의 동정성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루가 복음사가는 마태오 복음사가에 비해서 마리아의 동정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에 나오는 예수 탄생 이야기는 전통적인 그리스도론(로마 1, 3-4 참조)의 하나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동정 잉태는 초대 교회에 두루 알려진 사실이었고, 이 전통을 마태오 복음사가와 루가 복음사가가 이어 받아 복음서에 묘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관해서는 신약성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평가는 확대 · 발전되어 교의로 확정되어 믿을 교리로 선포되었다. 하지만 성서에서의 마리아는 복음 선포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언급되었으며, 또한 교회론과 관련되어 하느님의 뜻을 찾고 행하는 제자 공동체 안에서 '예' (Fiat)로 응답한 신앙인의 모범으로 드러나고 있다. (⇦ 마리아 공경 ; 마리아 신심 ; 성모 ; → 마리아의 노래 ; 마리아론)
※ 참고문헌 J.A. Fitzmyer, 김종진 역, <예수의 동정 잉태와 신약성서>, 《신학 전망》 36호(1977. 봄), pp. 92~116/ K. Stock, 이영헌 편역, <루가 복음 1장 26-38절에 나타난 마리아의 소명>, 《신학 전망》 96호 (1992. 봄), pp. 2~26/ 이영헌, <공관 복음서를 통해 본 마리아>, 《사목》 105호(1986. 5), pp. 4~20/ A. George,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 1984, pp. 135~139/ H. Räisänen, 《TRE》 22, pp. 115~119/ M.M.Pazdan, 《ABD》 pp. 584~586/ W. Beinert, 심상태 역, 《마리아》, 성바오로출판사, 1980/ 안병철, 《요한 묵시록》 1,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6, pp. 322~347. 〔孫淑敬〕
② 루가 복음과 요한 복음에 등장하는 마르타의 동생. 그리스 원전에서는 두 자매 가운데 누가 언니이고 누가 아우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예수를 영접한 마르타가 언니인 것 같고, 둘 다 예수와 절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루가 복음 10장 38-42절의 내용을 보면 예수의 제자들은 없고 예수 홀로 마르타에게 영접을 받아 그 집으로 들어갔다(10, 38). 율법 학자들이 친척이 아닌 여자들 집에 출입하는 것을 삼간 점을 상기할 때 예수의 처신은 파격적이다(Ben Witherington, p. 101). 마리아가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 말씀을 듣고 있었다"(10, 39)는 것은 마리아가 마치 예수의 제자처럼 처신하였다는 것인데(사도 22, 3) 이것 역시 파격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여자가 외간 남자에게 음식 대접을 하는 것을 금기시한 일부 율법 학자들의 견해를 따른다면(Billerbeck, wol. 1, p.480) 마르타의 처신 역시 파격적인 것이다(10, 40). 이 짧은 이야기의 역점은 예수가 마르타에게 하신 답변에 있다(10, 41-42). 예수의 답변은 결코 마르타의 시중을 탓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시중보다는 마리아의 처신을 더 높이 평가하신다는 것이다. 곧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 말씀을 듣는" 제자의 처신보다 더 중요한 일은 세상에 없다는 말씀이다. 결국 여자들은 가사도 돌보아야겠지만 그보다는 예수의 말씀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마땅하다는 답변이다. 일찍이 마르코는 예수의 가르침을 집약하여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마르 1. 15)라고 하였다. 이 말에 근거한다면, 마르타에게 한 예수의 답변은 하느님의 나라, 곧 하느님의 사랑이 듬뿍 내리기 시작한 이때야말로 그 사랑에 매료되고 그 사랑에 보답하는 일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씀이다.
요한 복음 11장 1절부터 12장 11절에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가 라자로와 동기간으로 나온다. 현재의 순서로 짜여진 라자로의 소생 사화(요한 11, 1-44)와 예수 도유 사화(요한 12, 1-11)는 요한 복음사가가 꾸민 이야기라는 것이 신약학계의 통론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역사적으로 이들이 서로 동기간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여기며, 루가 복음의 마리아와 요한이 설명하는 베다니아의 마리아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성서를 내용상 비교할 때 공통적인 부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한 복음에서 마르타가 시중을 들었다는 것(11, 32 : 참조 : 12, 3)은 루가 복음 10장 38-42절의 내용과 상통한다. 마르타의 신앙은 처음엔, 종말의 부활을 믿을 정도로 불완전하였지만(11, 24), 마침내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11, 27)라고 고백하여 완벽한 경지에 이른다. 마리아의 됨됨이는 도유 사화에서 잘 드러나는데, "마리아는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바르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12, 3)고 한다. 예수는 이러한 마리아의 행위에 대하여, 사람들이 당신 장례를 지낼 때 당신 시신에 향유를 바를 여유가 없겠기에 마리아가 장례 의식을 앞당겨 당신께 향유를 바른 것이라고 해석하였다(12, 7). (→ 마르타)
※ 참고문헌 Ben Witherington Ⅲ, Women in the Ministry of Jesus,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84/ Raymond F. Collins, 《ABD》 4, pp. 573~574/ D. Daube, The Anointing at Bethany and Jesus' Burial, 《AThR》 32, 1950, pp. 186~199. 〔鄭良謨〕
마리아
〔그〕Μαρία · 〔라〕Maria · 〔영〕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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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과의 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