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막달라의

〔그〕Μαρία Μαγεδαληνή · 〔라〕Maria Magdal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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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만난 막달라 여자 마리아(티티아노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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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만난 막달라 여자 마리아(티티아노 작)

성녀. 축일은 7월 22일. 예수를 따랐던 여인 가운데 하나로 귀신 일곱에게서 해방되는 치유를 받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증인이다. 신약성서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6~7명이 나오는데, 히브리어로는 미르암(מִרְיָם)이라 하고 그리스어로는 마리아(Μαρία) 또는 마리암(Μαριάμ)이라고 한다.
신약성서의 여러 마리아들과는 달리 '막달라 여자 마리아' 라고 출신 지명을 수식어로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에게는 가까운 친인척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갈릴래아 호수 서안에 자리잡고 있는 티베리아에서 북쪽으로 10리 남짓 떨어진 곳에 히브리어로 믹달(מִגְדָּל) , 그리스어로는 막달라(Μαγδαλα)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호수가에 폐허만 남아 있는데, 1971 ~1973년에 예수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회당이 발굴되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 라는 이름은 신약성서에 열두 번 나온다(마태 27, 56. 61 : 28, 1 ; 마르 15, 40. 47 ; 16, 1. 9; 루가 8, 2 ; 24, 10 ; 요한 19, 25 ; 20, 1. 18). 이 가운데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고 내용상으로도 중요한 단락들은 다음과 같다. 그녀가 예수로부터 치유의 은혜를 입고 감사한 나머지 갈릴래아 부인들과 더불어 예수 일행의 시중을 들었다는 집약문(루가 8, 1-3), 갈릴래아 부인들과 함께 예수의 임종과 장례를 지켜보았다는 수난 사화(마르 15, 40-47), 예수의 무덤이 빈 것을 맨 처음으로 확인하였다는 빈 무덤 사화(마르 16, 1-8), 부활한 예수를 맨 먼저 뵈었다는 발현 사화(요한 20, 11-18) 등이다.
집약문 : 이 단락은 루가 복음사가가 예수의 활약상을 요약한 집약문이다. 즉 예수가 갈릴래아 도시와 시골을 두루 다니면서 하느님 나라와 복음을 선포하였다는 것이다. 예수의 전도 여행에는 열두 제자도 동행하였는데, 예수가 남자 측근으로 열두 제자를 발탁한 것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부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예수 일행에는 열두 제자 말고 갈릴래아 출신 여자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 유대교에서는 남녀 상종을 금하였고 남자는 될 수 있는 대로 자기 부인과도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Pirke Avoth, 1, 5)는 상황에서, 기꺼이 여자들을 데리고 다닌 예수의 자유로운 처신과 집을 떠나 예수를 따라 나선 여자들의 자유로운 처신은 파격적이었고 비난의 여지를 갖고 있었다.
예수를 따라 나선 여자들은 악령에게 사로잡혔다가 예수를 만나 치유된 이들 아니면 병고에 시달리다가 예수를 만나 치유된 이들이었다. 즉 정신병 또는 육체의 질병을 앓다가 기적적으로 치유된 여자들이었다. 이 여자들 중 "귀신 일곱이 떨어져 나간"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첫 자리에 놓는다. 그녀는 예수를 만나 일곱 마귀에서 벗어나는 치유를 받은 다음 너무도 고마운 나머지 예수 일행의 수발을 들고 그분의 처형과 임종과 장례까지 지켜보았으며 마침내 그분의 무덤이 빈 것을 확인했다. 그 보상으로 어느 누구보다 먼저 그분의 발현을 체험하게 되었다. 집약문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헤로데의 신하 쿠자의 아내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 그 밖에 다른 여러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네 재물로 예수 일행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루가 8, 3). 요안나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더불어 예수의 무덤이 빈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루가 24, 10). 반면 수산나에 대해선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이름만 적혀 있을 뿐이다.
수난 사화 :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는 유대교의 최대 명절인 과월절을 맞아 지중해변 가이사리아 총독부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수십 년 전에 헤로데 대왕이 지은 헤로데 궁전에 머무르면서 정무를 보았다. 헤로데 궁전은 현재 예루살렘의 서쪽 성벽에 난 자파 성문 바로 옆에 있는, 일명 다윗의 망대이다. 총독 본시오 빌라도는 4월 7일 금요일 오전에 예수 사건을 심리하고 정오쯤에 사형 언도를 내렸다(요한 19, 14). 죄목은 나자렛 사람 예수가 유대인들의 임금으로 행세하였다는 것이었다. 정오가 지나서 예수는 헤로데 궁전에서부터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북쪽 성곽 밖에 있는 골고타 형장으로 가서 십자가에 달리고 같은 날 서산에 해가 기울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 평소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모두 갈릴래아로 도망쳤고, 예수의 임종을 지켜본 이들은 오로지 갈릴래아 여자들뿐이었는데 마르코는 구체적으로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를 꼽았다.
예수는 4월 7일 금요일 오후 늦게 숨을 거두었는데, 그날 일몰과 더불어 안식일 겸 과월절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예수에게 동조하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총독의 허락을 받고 서둘러 예수의 시신을 안장하였으며,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현장을 지켜보았다고 한다(마르 15, 42-47).
빈 무덤 사화와 발현 사화 : 4월 9일 일요일 새벽에,즉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와 함께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서둘러 예수의 장례를 치러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리지 못하였기에 여자들이 뒤늦게나마 그 예를 보완하려는 것이었다(마르 16, 1).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어느 못된 사람이 예수의 시신을 훼손했으려니 생각하였다(요한 20, 15). 그러나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 그분을 알아보았다(요한 20, 11-18). 마리아는 예수 부활의 희소식을 갈릴래아로 달아난 제자들에게 알렸고 이들은 5월 말경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여 예수 사건을 아주 새롭게 해석하였다. 곧,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는 하느님의 권능으로 부활하였다고 당당히 선포하였던 것이다. 빈 무덤 사화에서는 무덤 속에서 천사가 갈릴래아 여자들에게 예수 부활을 알렸다고 하지만(마르 16, 6), 역사적으로 평가한다면 오순절에 상경한 제자들이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예수 부활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교부들의 증언과 전승〕 오리제네스와 그 밖의 초기 성서학자들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눈물로 예수의 발을 적시고 향유를 발라 드린 죄인으로 소문난 여인(루가 7, 36-50)과, 마르타와 자매지간인 마리아(루가 10, 38-42) 베다니아 마을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요한 11, 1-12)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이 이들을 모두 동일 인물로 간주한 후부터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성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유럽 화가들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그릴 때면, 탕녀가 해골을 바라보면서 인생 무상을 절감하여 성녀가 되었다는 식으로 그렸다. 그런가 하면 서유럽의 문인들은 지난날의 탕녀 마리아가 나중에 예수의 애인으로 둔갑하였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하곤 하였다.
그노시스주의자들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비밀스런 계시의 매개자로 생각하였다. 동방 교회 전승에 따르면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사도 요한을 따라 에페소로 갔다가 그곳에서 죽어 묻혔다고 한다. 반면 프랑스의 전승은 그녀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고 30년 동안 알프스 산에 있는 동굴에서 살다가 죽었다고 하지만 신빙성이 없다. (⇦ 마리아 막달레나 ; 막달레나)
※ 참고문헌  E. Schüssler Fiorenza, In Memory of Her. A Feminist Theological Reconstruction of Christian Origins, New York, The Crossroad Publishing, 1983/ Ben Witherington Ⅲ, Women in the Ministry ofJesus,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84/ Reymond F. Collins, 《ABD》 4, pp. 579~581. 〔鄭良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