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워츠(A. Schwartz, 알로이시오, 蘇재건, 1930~1992) 신부가 전쟁 고아 및 빈민 환자들을 돌볼 목적으로 1964년 8월 15일 부산에서 설립한 수녀회. 설립 당시의 명칭은 '마리아 보모회'였다. 본부는 필리핀 마닐라의 산타 메사(Santa Mesa)에 있으며, 한국 지원은 부산시 서구 암남동 5-2번지에 있다.
〔설립과 영성〕 1930년 9월 18일 미국에서 태어나 1953년 메리놀 신학 대학을 졸업한 뒤, 벨기에의 루뱅 대학 신학부에 입학한 슈워츠 신부는 선교지의 교구장 밑에서 교구 신부로서 사목 활동을 하는 선교 사제 양성회(Societ des Auxiliaires des Missions, S.A.M.)에 입회하였는데, 이때 그의 동기생이었던 장병화(張炳華, 요셉, 후에 주교로 승품) 신부를 통해 한국 전쟁의 참상을 접하고 한국 전교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그 후 1957년 6월 30일 당시 부산 대목구장 최재선(崔在善, 요한) 주교와의 협의하에 부산 대목구 소속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처럼 외국인으로서는 극히 드물게 한국의 교구 소속 사제로 서품된 슈워츠 신부는 같은 해 12월 8일 전쟁의 상흔(傷痕)이 채 아물지 않은 부산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전개하기도 전에 병을 얻어 입국 1년 만에 치료차 일시 미국으로 귀국하였고, 요양 기간 중에도 한국의 빈민들을 위해 모금 활동을 전개하여 민간 원조 단체인 '한국 자선회' 를 미국 현지 법인으로 설립하였다.
1961년 한국에 재입국한 슈워츠 신부는 이듬해 7월 11일 부산 송도(松島)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하는 한편, 1964년부터 4년 동안 부산의 대표적인 빈민 지역이었던 대청동(大廳洞) · 보수동(寶水洞) · 아미동(峨嵋洞) · 감천동(甘川洞) 등 4개 지역에서 자수 구호 사업(刺繡救護事業)을 전개하였다. 자수 구호 사업이란 1개 지역에서 500명씩 2천 명의 극빈자를 선발하여 수를 놓게 한 후, 임금을 지급하는 일종의 취로(就勞) 사업이다. 제작된 수예품들은 후원자들에게 보내졌는데, 당시 임금을 상당히 높게 책정하였기 때문에 빈민들의 생활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
6 · 25 한국 전쟁으로 인해 시설에 수용된 전쟁 고아는 6만여 명에 달하였으며, 미등록 시설에 수용된 고아들과 부모를 잃고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슈워츠 신부는 1964년 8월 15일 전쟁 고아들을 위한 구제 사업으로 '마리아 보모회' 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전쟁 고아들에게 좀더 조직적이고 헌신적으로 봉사하기 위해서는 보모회보다 수녀회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슈워츠 신부는, 1965년 최재선 주교의 허락을 얻어 보모회 회원들에게 수도복을 착복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마리아 수녀회' 라는 수도 단체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부산 암남동(岩南洞)에 수녀원을 건립한 지 사흘 후인 1967년 1월 12일에 수련자의 첫 착복식이 있었으며, 이듬해 8월 30일 재단 법인으로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1970년에는 토성동에 '소년의 집' 을 개원하여 부산시로부터 고아 300여 명의 양육을 위탁받아 본격적인 아동 복지 사업을 추진하였고, 1974년에는 이듬해에 개원 예정인 '서울 소년의 집' 운영을 위해 서울 응암동에 분원을 마련하였다. 이후 마리아 수녀회는 한국은 물론 필리핀, 멕시코에서의 헌신적인 활동이 인정되어 1993년 3월 2일에는 필리핀에서도 인가를 받았다. 마리아 수녀회는 1933년 벨기에의 바뇌(Banneux)에서 발현한 '가난한 자의 동정녀' 를 수호 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첫 서원 때 청빈 · 정결 · 순명의 복음 삼덕 외에 '가난한 사람을 위한 봉사' 라는 서원을 하는 마리아 수녀회는 "하느님을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자"라는 모토 아래 불우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교육과 직업을, 빈민 환자들에게는 의료 혜택을, 의지할 곳 없는 이들에게는 안식처를 제공하면서 겸손과 헌신으로 봉사하고 있다. 이처럼 가난한 자를 먼저 찾아나서며, 버림받고 소외된 여러 지역의 어린이들을 찾아가 그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데에 충실하게 노력하고 있다.
1996년 5월 현재 3개 국에서 200여 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필리핀에 7명, 멕시코에는 5명의 한국인 수녀가 선교를 위해 파견되었고, 유기 서원자 142명, 청원자 9명 등 총 151명의 회원이 있다. 한편 1990년 2월 1일 슈워츠 신부는 마닐라 '소년의 집' 에서 몬시놀에 임명되었고, 1984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하였다. 가난한 이들에게 충실하게 봉사했던 슈워츠 신부는 1992년 3월 16일 지병인 '근 위축성 측삭 경화증' (루게릭병)으로 사망하였다.
〔세계 진출〕 1983년 슈워츠 신부가 국제 이해 부문에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필리핀 정부와 신(Jaime L. Sin) 추기경의 초청에 의해 1985년 1월 23일, 2명의 수녀가 필리핀에 파견되었다. 그해 마닐라 산타 메사에 2,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무료 결핵 병원이 건립되었으며, 1986년 8월 15일에는 이곳에 부지 1만 5천 평을 매입하여 마리아 수녀회의 필리핀 본부와 '소년의 집' , '소녀의 집' 을 건립하였다. 현재 마닐라를 위시하여 실랑(Silrang) , 세부(Cebu)의 탈리사이(Talisai) 밍라닐라(Minglanilla) 등 4개 지역에서 빈민 청소년들을 위한 학과 및 기술 교육을 실시하여 12,000여 명의 학생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았다.
한편, 가톨릭이 국교인 멕시코에서 빈곤 때문에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는 경우가 많고, 빈민 아동들이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다는 소식을 접한 슈워츠 몬시놀은, 1990년 9월 5일 찰코(Chalco) 교구의 헤르난데스(M. Hernandez) 주교 초청으로 2명의 수녀를 파견하였다. 진출 1년 만인 1991년 10월 7일 찰코에 '소년의 집' 과 '소녀의 집' 을 개원하였는데, 현재 학생수는 3천여 명에 이른다.
〔성장과 활동〕 아동 복지 사업이 사도직 활동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그 외에 교육 사업 · 의료 사업 · 사회 복지 사업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동 복지 사업으로는 1966년 부산 남부민동(南富民洞)에 20채의 건물을 매입하여 '송도 가정원' (家庭院)을 건립하고 100여 명의 고아들을 가족 단위로 양육하였으며, 1970년에는 '소년의 집' 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행려 환자 구호소' 인근에 위치한 사설 고아원 '영화숙' (永華宿)에서 원생들을 구타 · 폭행 · 살인하는 등 비인간적인 운영을 일삼는 것을 목격하게 된 슈워츠 신부와 마리아 수녀회는, 부산교구 사제들에게 영화숙의 폐원을 호소하고 100만 명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그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만행을 정부와 언론에 알리기 시작하였다. 1971년부터 치열한 매스컴의 찬반 논쟁과 법적 투쟁을 벌였던 이 사건은, 결국 1972년 영화숙이 폐원하고 1974년 6월 원장에게 실형이 언도됨으로써 종결되었는데, 이곳 원생들을 소년의 집에 수용하기 위해 1973년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연건평 1,820평 규모의 건물을 신축하였다. 이외에도 1975년 2월 18일에는 서울의 고아들을 위해 응암동에 '소년의 집' 을 마련하였고, '어린이 마을' 을 건립하여 '서울 시립 아동 보호소' 의 아동 700여 명을 수용하였으며, 1985년 6월 22일에는 부산에서 미혼모 자녀들의 양육을 위해 '마리아 영아원' 의 시설 인가를 얻었다.
교육 사업으로는 1968년 부산 아미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여 중등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8년 동안(1968~1975) 무료 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마리아 수녀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복지 시설 내의 아동 교육을 목적으로 부산에 소년의 집 초등학교(1973), 소년의 집 실업중학교(1974), 소년의 집 기계공업학교(1976)를 연차적으로 설립하였으며, 1975년에는 서울 소년의 집 초등학교를 개교하였다.
의료 사업으로는 영양 실조와 결핵, 피부병 등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시설 수용 아동과 빈민 환자들의 각종 질병을 진료하기 위해 부산의 아미동(1967), , 암남동(1969), 보수동(1969)에 진료소를 개설하여 무료 진료를 실시하였다. 1969년 7월에는 100여 명의 행려자와 결핵 환자들이 수용되어 있던 장림동(長林洞)의 '행려 환자 구호소' (지금의 마리아 결핵 요양소)를 부산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듬해 10월 부산에 무료 준종합 병원인 '마리아 구호 병원' 을 설립하였으며, 1982년 6월에는 서울에 '도티 기념 병원' 을 개원하였다.
사회 복지 사업으로 1981년 서울시로부터 17세 이상의 정신 지체자 · 결핵 환자 · 노숙자 등 2,000여 명이 수용되어 있던 '갱생원' 을 인수하여, 1996년에 '은평마을' 로 명칭을 변경하였는데, 이곳에서는 매년 70~80여 명이 가톨릭 신자로 세례를 받고 있다. 그리고 1985년 부산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마리아 모성원' (母聖院)에서는 미혼모들에게 상담 및 재활 기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미혼모는 2,000여 명에 달하며, 생명 보호 운동의 일환으로 <침묵의 절규>, <이성의 소멸> 등 5종류의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하여 전국에 무료 배포하기도 하였다.
※ 참고문헌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교구 삼십년사》, 천주교 부산교구, 1990/ 김구정, 《천주교 경남 발전사》, 부산교구 주교관, 1967, pp. 175~182/ 이승화, <마리아 수녀회>, 《교회와 역사》 67호(1981. 3), 한국교회사연구소 김진소, 《신바람 사는 보람》,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p. 186. 〔金成喜〕
마리아 수녀회 - 修女會
〔영〕Sisters of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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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슈워츠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