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 傳敎者 - 修女 會

〔라〕Congregatio Missionariarum Mariae Franciscanarum · 〔영〕Franciscan Missionaries of Mary (F.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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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립자 마리 드 라 파시옹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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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립자 마리 드 라 파시옹 수녀.

마리 드 라 파시옹(Marie de la Passion, 1839~1904) 수녀가 세계 선교를 목적으로 1877년 1월 6일 인도의 우타카문드(Ootacamund)에서 창립한 수녀회로 프란치스코 수도 3회에 속한다. 본부는 로마에 있으며, 한국 관구는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 131-1번지에 있다.
〔창립과 영성〕 1839년 5월 21일 프랑스 낭트(Nantes)에서 출생한 드 느빌(Hélène de Chappotin de Neuville)은 17세 되던 해에 행한 피정에서 그리스도와 일치된 삶을 살기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기로 결심하고, 가족들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860년 글라라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곧 병을 얻어 수녀회를 나왔지만 수도 생활에 대한 열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864년 예수회 지도 신부의 권유로 마리아 속죄회(La société de Marie Réparatrice)에 입회하여 '마리 드 라 파시옹' 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 후 인도의 마드라스(Madras)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12년(1865~1876) 동안 전교자로서 활동하였다.
1876년 마리아 속죄회를 퇴회하게 된 마리 드 라 파시옹 수녀와 20여 명의 수도자들은 우타카문드 교구 소속의 공동체로서 수도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교황 비오 9세에게 청원하였고, 교황이 '마리아의 전교자' 라는 이름으로 선교 사업에 헌신할 수녀회의 창립을 허락함으로써 1877년 예수 공현 대축일에 교황 직속 수도회로 설립되었다. 1882년에는 이탈리아 로마에 진출하여 수녀원을 건립한 후 프란치스코 성인 탄생 700주년 기념 축일에 프란치스코 수도 3회에 가입하면서 영성의 뿌리를 굳건히 하였으며, 1885년에는 교황 레오 13세의 허락을 얻어 수도회의 공식 명칭을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로 변경하였다. 1890년 7월 17일 교황 레오 13세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았고, 1896년 5월 11일에는 회헌에 대한 재가를 받았다.
마리 드 라 파시옹 수녀가 '하느님의 선물' 이라고 일컬었던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기도 생활과 사도직을 통해 세계 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회원들은 복음을 선포하는 '전교자' 로, 현시된 성체 앞에서 기도하는 '조배자' 로, 또 복음적 생활의 증거와 세상 구원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는 '제물자' (祭物者)라는 세 가지 성소를 갖고 생활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루가 1, 38)라는 마리아의 자세와 복음을 실천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에 따라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며,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의 사람들에게,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찾아가 봉사하고 있다.
〔세계 진출〕 창립 석 달 만인 1877년 4월 5일 프랑스 진출을 시작으로, 1885년에는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진출하였으며, 1886년에는 스리랑카와 중국, 1887년에는 영국, 1888년에는 스위스에 수녀원을 건립하였다. 마리 드 라 파시옹 수녀가 사망한 1904년에는 미국으로 진출하는 등 26개 국에 3,000여 명의 수녀들이 파견되었는데, 현재 77개 국에서 8,500여 명의 회원들이 교육 · 교리 교사 · 사회 사업 · 의료 사업 등에 헌신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 여러 곳으로 진출하는 동안 회원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1951년 중국에서 선교 사업에 헌신하던 400여 명의 수녀들이 추방되었고, 1975년 모잠비크에서는 수녀회의 재산이 국유화되는 시련을 겪었으며, 이듬해 7월에는 베트남에 남아 있던 외국인 수녀가 추방됨으로써 그곳의 방인 수녀들이 고립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0년 중국의 의화단(義和團) 사건 때 순교한 마리 에르민 드 제주(Marie Hermine de Jésus) 수녀를 비롯한 7명의 수녀가 1946년에, 그리고 마리아 아순타 팔로타(Mana Assunta Pallotta) 수녀가 1954년에 시복되는 영광을 얻었다.
〔한국 진출〕 1954년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운영하고 있는 일본 도쿄의 성모 병원을 방문한 서울 대목구장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는, 서울의 여자 중고등학교를 운영할 수녀들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공산화로 그곳에서 활동하던 수녀들이 1951년에 강제로 추방되는 등 수녀회로서는 매우 큰 시련기여서 한국에 수녀들을 파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 후 1958년에 부산 대목구장 최재선(崔再善, 요한) 주교의 요청에 의해 한국 진출이 비로소 실현되었다. 1958년 6월 26일 일본에서 입회한 한국인 수녀 6명과 외국인 수녀 5명이 일본에서 입국하여 부산 동항(東港) 본당에서 잠시 거처한 뒤 1960년 5월 양정동에 수녀원을 건립하여 입주하였다.
지원자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1966년 11월 29일 부산 양정동에서 서울 가리봉동으로 수녀원을 이전하였다. 또 1969년 2월에는 수녀원 부지 내에 '성 프란치스코 의원' 을 개원하였으며, 1974년 2월에는 부산에 있는 수련원을 서울로 이전함으로써 회원들이 같은 터전에서 사도직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1972년에는 일본 관구에서 독립하여 준관구로 승격되었으며, 1978년에는 관구로 승격되었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발전에 힘입어 1980년대부터는 해외 전교에도 힘쓰게 되었는데, 1981년 4월 20일 노인 수녀의 간호를 위해 김춘자(金春子, 아네스) 수녀를 프랑스 마르세유(Marseille)에, 선교를 위해서는 이신자(李信子, 로사) 수녀를 콜롬비아에 파견하였다. 현재 20여 명의 수녀들이 미국, 캐나다, 콜롬비아, 가나, 케냐, 에티오피아, 콩고, 이탈리아, 헝가리, 대만, 홍콩, 프랑스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조만간 러시아에도 회원을 파견할 예정이다. 1996년 3월 현재 종신 서원자 76명, 유기 서원자 53명, 수련자 23명, 청원자 14명, 그리고 해외 파견자 20명을 포함하여 총 186명의 회원이 있다.
〔사도직 활동〕 부산 진출 직후부터 두 명의 수녀가 데레사 여자고등학교에서 영어 회화를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그 외의 수녀들은 수예실을 운영하여 가난한 여성들에게 자립의 길을 마련해 주었으며, 1958년 8월부터는 동항동에 무료 진료소를 개설하여 간호 수녀들이 진료를 담당하였다. 그 후 1960년 5월 진료소에서 사용하던 기재들을 옮겨 양정동 수녀원 근처에 '성모 의원' 을 개원하고 15년 가까이 진료 활동 및 간호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부산 지역에 종합 병원과 의원이 늘어나 이 지역 주민들에게 의료 혜택의 기회가 많아지자 좀더 의료 사목이 필요한 지역에서 활동하기 위해 1975년 2월 이곳을 폐원하고, 강원도 정선으로 의료 기재들을 옮겨 1976년 5월 성 프란치스코 의원을 개원하였다.
한편, 부산 양정동 수녀원 부지 내에 1961년 성모여자중학교를, 그리고 1964년에는 성모여자고등학교를 개교하였으나, 1974년 운영상의 문제로 성모여자중학교를 폐교하였다. 그 후 수녀회 본래의 사도직에 충실하기 위해 1979년 6월 성모여자고등학교를 부산교구에 이양하였고, 현재 교육 사업으로는 강원도 태백에서 유치원과 공부방만을 운영하고 있다.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사회 복지 사업을 매우 다양한 방향으로 추진하였다. 1977년 1월 6일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수녀회는 가리봉동 수녀원 부지에 근로 여성 10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선화 기숙사' 를 건축하기로 결정하고 1979년 5월부터 기숙생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또 1988년 2월에는 정선의 성 프란치스코 의원을 폐쇄한 후 이곳을 양로 시설로 전환하였으며, 1991년부터는 가락동(정하상 바오로의 집)과 천호동(강동 프란치스코의 집)에서 행려자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부산 당감 종합 복지관에서는 노인 ·아동 · 청소년 · 빈민 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활동하고 있다.
의료 사업으로는 나환우 의료 기관인 경남 산청의 성심 인애병원, 생활 보호 대상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의 성 프란치스코 의원, 노인 치매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진주의 노인 요양원인 프란치스코의 집에 간호 수녀들이 파견되어 있다. 또한 1992년 11월 30일에는 경기도 광명시에 다세대 주택을 매입하여 양로 시설인 '글라라의 집' 을 개원하여, 현재 15명의 할머니들을 돌보고 있다. 이외에도 각 본당에 전교 수녀들이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1993년에 경남 거제의 지세포 본당, 1994년에 경북 상주의 화령 본당에도 수녀를 파견하였다. (→ 프란치스코 수녀회)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부록, 가톨릭출판사, 1984/《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원주교구 삼십년사》, 천주교 원주교구, 1996/ 《천주교 사회 복지 편람》,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사회 복지위원회, 1996/ <천 개의 생명이 내게 있다면>, 《경향잡지》 1450호(1989. 1), pp. 68~721 이주호,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교회와 역사》 94호(1983. 4), 한국교회사연구소, p. 71 M.F. Condon, 《NCE》 6, pp. 49~50.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