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칠리에리(Ferdinanado Baccilieri, 1821~1893) 신부가 교회 공동체의 신앙 생활 강화를 목적으로 1862년 6월 23일 이탈리아의 갈레아차(Galeaza)에서 설립한 수녀회. 본원은 이탈리아의 볼로냐(Bologna)에 있으며, 한국 지부는 청주시 율량동 192번지에 있다.
〔기 원〕 마리아의 종 수녀회는 1233년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에서 7명의 성인(聖人)에 의해 설립된 마리아의 종 수도회(Ordo Servorum Mariae : O.S.M.)에 기원을 두고 있다.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수도 정신을 따르는 관상 수녀회(제2회)는 이미 중세 때 설립되었으며, 남녀 기혼자와 미혼자가 중심이 된 제3회는 1424년 교황 마르티노 5세에 의해 인가를 받았다. 이 제3회 회원 가운데 미혼 여성들의 공동체는 제3회의 규칙 외에 고유한 규칙을 만들어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소속의 표시로 넓은 망토를 입고 다녔기 때문에 '만텔라테' (Mantellate)라고도 불렸다.
지난 여러 세기 동안 만텔라테 공동체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활동 분야를 달리하면서 발전하여 현재와 같은 수녀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듯 영성은 같지만 설립 목적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이 수녀회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설립 장소를 명칭에 연결시키고 있는데, 한국에 진출한 수녀회는 이탈리아 갈레아차에서 설립된 마리아의 종 수녀회이다.
〔설 립〕 1821년 5월 14일 이탈리아 캄포도소(Campo-doso)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바칠리에리는 14세 때부터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페라라(Ferara)의 기숙 학교에서 공부하였는데, 이곳 교사들의 모범적이고 규칙적인 생활 태도를 보고 하느님께 봉헌된 생활을 열망하게 되었다. 1838년 10월 15일 예수회에 입회한 그는 수련기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되어 병을 앓아 공동체 생활과 선교 활동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고 퇴회하였다. 이후 건강이 회복된 뒤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겠다는 원의대로 1844년 3월 2일 페라라 교구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리고 1851년까지 레노 피날레세(Reno Finalese) 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활동하는 한편, 피날레(Finale) 신학교에서 영성 지도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1852년 갈레아차의 성 마리아 본당 주임으로 임명된 바칠리에리 신부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가치들에 대해 목말라 하던 주민들을 다양한 활동에 참여시킴으로써 영성적으로 다시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각 가정 안에 통고(痛苦)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 신심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852년 통고의 동정녀 마리아 형제회를 설립하였으며, 1855년 11월에는 마리아의 종 수녀회 총장의 승인을 얻어 '마리아의 종 제3회' 를 설립하였다.
1856년 1월 거행된 착복식에서 바칠리에리 신부는 9명의 지원자들에게 만텔라테라고 불린 마리아의 종 수녀회의 수도복을 입게 하였다. 초기에는 이 수도복을 미사 등의 전례 때에만 착복하게 하였기 때문에 만텔라테 회원들은 평상시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검은 옷을 입고 생활하였으며, 이들은 '마리아의 종 제3회' 회칙과 바칠리에리 신부가 작성한 회칙을 준수하면서 공동 생활이 아닌 각자의 집에 머무르면서 주로 교리 교육과 가난하고 버림받은 병자들을 간호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1862년 초 동정을 지키기로 한 미혼 여성이 26명에 이르자 바칠리에리 신부는 공식적인 여자 수도회의 설립을 계획하였고, 그 해 6월 23일 제3회 회원 가운데 수도 생활을 희망하는 3명이 이미 마련된 갈레아차의 수녀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발전 및 영성〕 바칠리에리 신부는 로마에 본부를 두고 있는 마리아의 종 수녀회의 회칙을 1871년 갈레아차의 상황에 맞게 적용시켜 회칙을 작성함으로써, 갈레아차에서 설립된 수녀회가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영성으로부터 태동한 것임을 명백히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1883년에는 갈레아차에서 설립된 마리아의 종 수녀회는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수족(修族)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의 국법은 새로운 수도 단체의 설립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갈레아차의 공동체가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던 중 1893년 설립자가 사망한 후 공적인 수녀회 인가를 위한 작업으로 마리아의 종 수도회와 볼로냐 교구의 수암파(Dominico Suampa) 추기경이 회헌을 재작성하였고, 이를 통해 1899년에 교구 설립 수녀회로 인가받았다. 그 후 1947년 1월 27일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교황청 설립 수녀회로 승인을 얻었다.
바칠리에리 신부는 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앙 교육과 학교 교육에 열성이었다. 그것도 전인 교육(全人敎育)을 목적으로 '성소를 가진 교사' 만을 원하였기 때문에 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춘 수녀들만이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1881년에는 가난한 여자 아이들을 위해 초등학교를, 그리고 1882년에는 기숙 학교를 마련하였고, 이후에는 중학교도 설립하였다. 마리아의 종 수녀회는 설립 후 100여 년 동안 이탈리아 내에서만 활동을 전개하다가 1958년에 이르러서야 독일의 쾰른 교구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69년 개최된 특별 총회에서 본당 내에서의 활동이라는 지역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교구와 전체 교회의 차원으로 사도직 활동을 확대하고 심화시키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리하여 1972년에 브라질, 1982년에 한국, 1996년 2월에는 체코에 3명의 회원이 파견되어 현재 5개 국에서 17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갈레아차에서 설립된 마리아의 종 수녀회는 마리아의 종 수도회 설립자 7명의 성인이 아우구스티노의 회칙을 준수하면서 공동 생활을 했던 것처럼 재산, 사도직에 대한 열망과 활동을 공유하며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전통에 따라 자신을 성모 마리아에게 의탁하고, 인류의 구원 사업에 참여한 동정녀 마리아와 동행하는 삶을 갈구하며, 마리아가 보인 모범에 따라 생활하려 노력한다. 한편, 설립자 바칠리에리 신부는 1995년 4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가경자(可敬者)로 선포되었다.
〔한국 진출〕 1982년 9월 청주교구장 정진석(鄭鎭奭, 니콜라오) 주교의 초청에 의해 독일 준관구에서 파견한 2명의 수녀가 서울에서 2년 과정의 한국어 공부와 가톨릭 교리 신학원 과정을 마친 후, 1985년 9월 청주시 봉명동(鳳鳴洞)에 수녀원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사도직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 해 11월 2명의 지원자가 입회하였고, 1987년에는 수녀원 내에 수련소를 마련하였으며, 지원자가 증가함에 따라 1988년 6월 본원 및 수련소를 청주시 율량동으로 이전하였다. 1989년 2월 첫 서원이 있었으며, 1994년에는 정진석 주교의 주례로 첫 종신 서원이 있었다.
현재 청주 내수(內秀) 본당과 목행동(牧杏洞) 본당, 인천 선학동(仙鶴洞) 본당에서 전교 수녀로 활동하고 있으며, 청주의 무료 급식소에도 파견되어 봉사하고 있다. 또 서울 동선동 분원에는 학생 수녀들의 공동체도 마련되어 있다. 1992년에 지부로 승격된 마리아의 종 수녀회 가족은 1996년 5월 현재 종신 서원자 7명(한국인 4, 이탈리아인 1, 독일인 2), 유기 서원자 13명, 수련자 2명, 청원자 5명 등 모두 27명이다. (→ 성모 통고)
※ 참고문헌 《청주교구 연감》, 천주교 청주교구청, 1995/ 《한국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M.G. Lucchetta, 김홍래 역, 《본의 아닌 본당 신부 페르디난도 바칠리에리》, 서광사, 1993. 〔金成喜〕
마리아의 종 수녀회 - 修女會
〔이〕Congregazione delle Serve di Maria di Galeazza · 〔영〕Congregation of the Servants of Mary from Galeaz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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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자 바칠리에리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