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가 보여 준 신앙의 모범을 강조하고, 신앙인들이 그 모범을 본받아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제정된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사건들을 기념하는 날. 교회는 일 년이라는 시간 안에 그리스도의 신비를 구현하며 신자들을 그 신비와 접촉하게 하고 그 신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실현한다. 구세주의 탄생에서부터 승천까지, 그리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재림까지 이어지는 구원의 신비를 전례를 통해서 구현하는 것이 전례 주년의 의미이다. 전례력에서 성모 마리아의 축일을 거행하는 이유는 마리아 축일이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례력에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축일을 삽입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가 동정 성 마리아의 삶 안에서 얼마나 훌륭하게 구현되었는지 가르쳐 준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계성에 의해서 마리아가 보여 주는 신앙의 특성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인이 자기 존재 안에서 실현해야 할 모습으로 성모 마리아를 제시하는 것이 마리아 축일을 거행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마리아 신심을 드높이기 위해 그리스도 신비로부터 분리하거나 별도로 취급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마리아의 위치를 왜곡하는 것이며 전례의 의미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 공경의 역사〕 신약성서와 위경(僞經)에 성모 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실제로 전례에서 마리아를 공경한 것은 성인 공경보다 늦게 도입되었다. 이레네오, 오리제네스 같은 고대 교부들의 문헌에도성모 마리아를 칭송하는 표현은 많으나 구체적으로 전례 안에서 어떻게 공경하였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에페소 공의회(431)가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 (Θεοτόκος)으로 선포하면서 성모 신심이 촉진되었고 마리아 축일이 제정되기 시작하였다. 공의회가 끝난 후 곧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 8월 15일에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축일' 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성모 공경은 전례 안에서의 예배 이전에 민중 신심으로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나자렛에 있는 성모 영보 성당 아래에서 1960년에 발굴된 건물의 한 기둥 위에 "기뻐하소서, 마리아여" (Χαῖρε Μαριάμ)라는 말이 적혀 있으며, 3~4세기 콥트에서 파피루스에 기록한 기도문 중에는 '천주의 성모여, 당신의 보호에' (Sub tuumpraesidium)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동방 교회에서의 마리아 공경 : 전례 안에서의 마리아 공경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고, 그 기초는 8월 15일 축일이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하기 전에 잠시 쉬었던 장소라고 전해지는 카티스마(Kathisma)에서 기념되었던 이 축일은 5세기 말경 게쎄마니의 대성전으로 옮겨 기념되었고, 이곳에서 사람들은 동정녀 마리아의 무덤을 경배하였다. 이로써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축일이 하느님 어머니의 죽음 축일로 된 것이다. 6세기 말 마우리치오 황제는 이 축일을 제국 내의 전 지역에서 거행하도록 하였다.
5세기 초 예루살렘 성전 북쪽의 '양의 문' 근처에 있는, 베짜다의 병자 치유(요한 5, 1-19)가 일어났던 연못 위에 한 성당이 세워졌고 6세기 경부터는 마리아의 탄생 기념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그 후 이 교회는 마리아 탄생 기념 성당이 되었는데, 이것이 9월 8일의 '마리아 탄생 축일' 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6세기 중엽에는 마리아를 공경하는 세 번째 성당이 현재의 엘-악사(E-Aqsa) 모스크 근처에 세워졌다. 이 성당의 위치는 《야고보 원 복음》이 언급하고 있는 성전에서의 성모 자헌(自獻)을 상기시킨다. 11월 21일 거행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이 여기서 나왔다고 여겨진다. 6세기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마리아 축일들이 다른 지역에도 전파되었으며, 연중 마리아 축일들의 틀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전체 동방 교회들은 '마리아의 죽음 축일' 을 받아들였고, 12월 26일을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축일로 거행하였으며, 시리아-네스토리우스 교회를 제외한 모든 동방 교회가 마리아 탄생 축일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을 전례로 거행하였다. 특히, 이디오피아 교회는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 축일(1월 16일)과 성모 승천(8월 15일)을 구별하여 거행하였으며, 30개 이상의 마리아 축일을 가지고 있었다. 동방 교회에서의 마리아 축일은 성모 마리아가 차지하는 전례 안에서의 위치를 보여주는 증거이며, 현대에 와서도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져 거행되고 있다.
초기 서방 교회에서의 마리아 공경 : 식스토 3세 교황(432~440)은 로마에 서방 교회에서는 최초로 마리아를 수호 성인으로 하는 첫 번째 성당인 성모 마리아 대성전(Santa Maria Maggiore Basilica)을 세웠다. 7세기경부터 동방 교회의 전례를 따라 예수 성탄 후에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1월 1일을 성모 마리아의 성탄(Natale S. Mariae) 축일로 기념하였는데 이후 2월 2일, 3월 25일, 9월 8일 축일이 전례에 도입되면서 1월 1일은 많이 약화되었다.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ialis)에 따르면 세르지오 교황(687~701)은 로마 공회당(Forum romanum)에 있는 성 하드리아노 성당에서 성모 마리아 대성전까지 주의 탄생 예고 축일, 마리아의 죽음 축일과 탄생 축일, 성 시메온의 날(봉헌 축일)에 연도(連禱) 행렬을 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교황이 이 축일들을 제정한 것은 아니고, 이미 7세기경에 로마 전례에 도입이 되어있던 축일을 거룩하게 지내도록 했을 뿐이지만, 이로 인해 이 축일들은 로마 교회가 지내는 성모 마리아의 4대 축일이 되었다.
《연대 교황표》는 8월 15일을 '마리아의 죽음 축일' 이라는 그리스식 용어로 표기하였는데, 740년의 복음집은 '성 마리아의 안식 대축일' (Sollemnitas de pausatione sanctae Mariae)이라고 하였고, 770년의 《하드리아노-그레고리오 성사집》에는 '승천' 이란 칭호가 나타난다. 이 축일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9세기경에 다소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일반 민중들의 신심 안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비오 12세 교황이 1950년에 발표한 칙서 <무니피첸티시무스 데우스>(Munificen-tissimus Deus)를 통해 마리아의 승천이 믿을 교리로 선포됨으로써 공식 전례로 거행되기 시작하였다. 이 축일은 마리아를 공경하는 축일 중에 가장 대중적이며, 예전부터 이 칭호의 마리아를 수호 성인으로 삼은 성당들이 많이 세워졌다. 그리고 3월 25일과 2월 2일의 축일은 본래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축일이지만, 1969년까지는 성모 마리아의 축일로 경축되어 왔다. 즉 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은 '성모 영보 축일' 로, 아기 예수를 성전에서 봉헌할 때 시메온을 만난 것을 기념하는 축일인 주의 봉헌 축일은 '성모 취결례(取潔禮) 축일' 로 기념되어 왔다.
투르의 그레고리오(538~594)가 증언하는 내용에 따르면 550~570년경 갈리아 사람들은 1월 중엽에 마리아를 공경하는 축일을 오베르뉴(Auvergne)에서 거행하였다고 한다. 《예로니모 순교록》은 1월 18일에 성모 마리아의 죽음(Depositio sanctae Mariae)을 기념했다고 전하고 있으며, 7~8세기 전례서들도 이날을 마리아 대축일로 정하였다. 그러나, 어떤 전례서들은 이날을 성모 마리아 축일(Festivitas sanctae Mariae)로, 어떤 것은 성모 마리아 승천 축일(Adsumptio sanctae Mariae)로 기록하고 있으며, 《봅비오(Bobbio) 미사 경본》은 두 개의 미사 전례문을 다 수록하고 있다. 프랑크 지방은 로마의 전례서들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다른 마리아 축일을 알지 못하였다. 반면에 7세기경 스페인 교회는 주의 성탄을 준비하는 12월 중엽에 마리아를 공경하는 축일을 지냈고, 제10차 톨레도 교회 회의(646)는 12월 18일에 스페인의 모든 교회에서 이 축일을 지내도록 확정하였다.
중세의 마리아 축일 : 7세기부터 14세기까지 로마 교회에는 4개의 마리아 축일 외에 또 다른 마리아 축일은 없었으나, 그 후 우르바노 6세 교황(1378~1389)이 성모 마리아의 중재로 대이교(大離敎)를 중단시키고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을 전세계 교회가 기념하도록 제정하였다. 그리고 바젤 공의회는 마지막 회기 때(1437) 이 축일을 위한 미사 경문을 인정함으로써 이 축일의 거행을 장려하였다.
동방 교회에서는 8세기 이후 성녀 안나의 성모 마리아 잉태를 기념하여 왔는데, 이 축일은 11세기 중엽에 영국에 전해졌고, 12세기에 와서 '마리아 잉태 축일' 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노르망디로 전해진 이 축일은 이곳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노르망디 국가의 축일' 이 되었다. 또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은 1263년에 이 축일을 받아들여 로마에 있는 자신들의 수도원에서 거행하였다. 그러던 중 바젤 공의회가 1437년에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를 확정하였고, 1708년에 교황 글레멘스 11세(1700~1721)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12월 8일)을 로마 전례에 속한 모든 교회의 의무 축일로 선포하였다. 중세 말에는 '성모 자헌 축일'(11월 21일)이 1372년의 전례력에 삽입되었고, '성모 마리아 대성전 봉헌 축일' (8월 5일)이 대성전 건설에 관한 전설과 연결되어 비오 5세 교황에 의해 1568년의 전례력에 삽입되었다. 또 동정녀 마리아가 겪은 고통에 대한 신심은 12세기부터 시작되었는데, 교황 베네딕도 13세가 1727년에 '성모 통고 축일' (9월 15일)로 로마 전례력에 포함시켰다.
근세의 마리아 축일 :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전례 안에서의 마리아 공경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즉 마리아를 기념하는 축일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들 중 일부 축일들은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만들어졌지만, 다른 축일들은 전례를 통해 특정한 마리아 신심 형태가 더 전파되기를 바라는 수도회의 열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17세기에는 폴란드 군대가 빈(Wien)을 구출한 것을 기념하고 감사드리기 위해 1623년 로마 전례력에 삽입된 '마리아의 성명(聖名) 축일' (9월 12일)과 13세기에 세워진 자비 수도회의 기원과 관련이 있는 '자비의 성모 축일' (9월 24일)이 1696년의 전례력에 삽입되었다. 또 18세기에는 레판토 해전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571년에 제정된 '승리의 성모 축일' 이 1573년 이후 '로사리오의 성모 축일' 로 명칭이 바뀌었고, 글레멘스 11세는 이 축일을 전체 로마 교회로 확장하였다. 1913년에 와서 이 축일은 레판토에서 전투가 있던 날짜인 10월 7일로 고정되었다. '가르멜 산의 성모 축일' (7월 16일)은 가르멜 수도회의 기원이 예언자 엘리야에게 있다는 주장에 대한 역사적 논쟁을 끝내기 위해 교황 베네딕도 13세(1724~1730)가 1726년의 전례력에 삽입하였다. 마리아의 종 수도회(Ordo Servorum Mariae)와 관련이 있는 '성모 통고(痛苦) 축일' 은 1668년부터 수도회 내에서만 기념하다가, 비오 7세 교황(1800~1823)에 의해 로마 전례에 속한 모든 교회가 기념하게 되었고, 1913년에 9월 15일로 축일 날짜가 확정되었다.
1907년에는 루르드에서의 성모 발현 50주년을 맞이하여 '원죄 없으신 동정녀 마리아의 발현 축일' 을 2월 11일에 기념하도록 하였고, 교황 비오 11세(1922~1939)는 에페소 공의회 1,500주년을 기념하여 마리아의 모성 축일' (10월 11일)을 제정했다. 교황 레오 13세(1878~1903)가 로마 교구에서만 지내도록 한 '성모 성심 축일'(8월 22일)은, 1942년에 비오 12세 교황이 세상을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께 봉헌함을 계기로 1944년부터 로마 전례를 따르는 모든 교회가 기념하게 되었다. 1954년에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 선포 100주년을 맞아 비오 12세 교황이 이 칭호를 공식적으로 봉헌하기 위하여 '여왕이신 마리아 축일' (5월 31일)을 제정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마리아 축일 : 공의회는 신자들이 성모께 대한 공경을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존중하기 위해 마리아 축일 중에서 사순 시기에 지내는 마리아의 통고,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 자비의 성모 기념만을 로마 전례력에서 삭제하였다. 그리고 성모 영보 축일과 성모 취결례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축일들로 고쳤다.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원죄 없으신 잉태, 성모 승천은 대축일로 지내게 되었는데, 로마에서 거행하던 1월 1일의 축일이 다시 부활된 것이 특징이다. 엘리사벳 방문 축일은 루가 복음의 내용에 따라 '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 (3월 25일)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6월 24일) 사이인 5월 31일로 옮겨졌고, 5월 31일에서 8월 22일로 옮겨진 '여왕이신 복되신 마리아 기념일' 은 일종의 성모 승천 대축일의 팔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11월 21일), 성모 통고(9월 15일), 여왕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8월 22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10월 7일)는 의무 기념일이 된 반면에, '예수 성심 대축일'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 다음날의 티없으신 성모 성심을 기리는 축일은 임의 기념일이 되었다.
〔마리아의 신비와 축일〕 <전례 헌장> 103항에서 성모 마리아는 크게 구원 사업의 협력자, 구원의 첫 열매, 교회의 원형으로 드러나는데, 이와 관련하여 마리아 축일을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마리아 축일이 이 원칙에 따라 제정된 것은 아니지만 마리아의 신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원 사업의 협력자 :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과 끊을 수 없이 결합된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 축일이 '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 (3월 25일)이다. 구세주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Fiat)라는 마리아의 응답으로 예수의 육화가 가능하였으므로 구원의 협력자로서 마리아를 잘 부각시킨 이 축일은, 그리스도 신비와의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성모 영보(聖母領報) 대축일' 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성령 강림 대축일' 은 마리아의 축일은 아니지만 성모 마리아의 존재를 두드러지게 한다. 구세주의 탄생이나 십자가 곁에 계셨듯이 교회가 태어나는 날도 성모 마리아가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역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구원 사건에 마리아가 협력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1월 1일에 지내는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도 구원의 협력자로서 마리아를 공경하는 축일이다. 이 축일은 성탄 시기의 중심에 거행되어 그리스도 탄생과 연계성이 부각된다. 성모 성월을 마감하는 5월 31일에 거행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역시 이 유형에 속한다. 이 축일은 두 가지 면에서 기억될 만하다. 첫째는 그리스도교 신자의 사명인 예언직을 수행하기 위해 엘리사벳에게 구세주의 탄생을 전하는 마리아의 모습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마리아가 성령의 감도를 받아 '마리아의 노래' (Magnificat)을 불러 하느님이 하신 일을 찬양한다. 하느님을 만나는 이는 구원의 협력자가 되는 것이다.
구원의 승고한 열매 :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거행하는 축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느님 구원 사업의 수혜자로서의 마리아를 기념한다는 면에서 으뜸가는 축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12월 8일)이다. 이날은 동정 마리아를 원죄 없이 잉태되게 하심으로써 성자의 육화에 합당한 준비를 갖춘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기억하는 축일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미리 참여한 분으로서 구원의 뛰어난, 또는 승고한 열매일 뿐만 아니라 구원의 첫 열매이기도 하다.
'마리아 탄생 축일' (9월 8일)과 '성모 승천 대축일' (8월 15일)은 구원의 열매로서의 마리아를 기억하는 축일이다. 만약 원죄 없으신 잉태가 구원의 첫 열매인 마리아 신비의 출발점이라면 하늘에 올림을 받은 이 축일은 마리아의 마지막 지점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거행하는 축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과 '성모 승천 대축일' 은 마리아 안에서 완수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원형 :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장 강조하는 마리아의 특성이 교회의 원형(原型)이다. 마리아는 교회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과 결합되어 있는 영적인 자세 내지 삶은, 교회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에 결합할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 마리아는 구약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하느님이 뽑으신 백성의 표징으로 본다. 오랫동안 구원의 성취를 기다리던 인류는 시온의 딸, 새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는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선택된 교회의 표징을 본다. 그래서 마리아에게서 교회의 표징을 본 교부들은 '마리아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고 가르쳤다.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미사의 감사송 가운데 "주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원죄의 온갖 흠에서 보호하시고, 당신 은총을 가득히 채워 주심으로써, 그에게 성자의 모친이 되는 자격을 주시고 또한 그로써 티없고 흠 없이 아름다운 성자의 신부인 교회의 설립을 알리셨나이다"라는 기도문은 마리아 안에서 이미 교회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 기도문에 나타난 '은총의 전달자'(advocata gratiae)라는 마리아의 호칭은 교회의 변호인 역할을 수행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또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의 감사송은 교회와 마리아의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오늘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천주의 모친 동정 마리아는 완성될 당신 교회의 첫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네 길에 있는 당신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온갖 생명의 근원이신 당신의 아드님이 동정 마리아 몸에서 기묘히 인성을 취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셨기에, 주는 마리아에게 무덤의 부패를 겪지 않게 섭리하셨나이다." 그러기에 교회의 모상인 마리아가 하늘에 올림을 받은 이 신비를 기념하면서 교회는 마리아 안에서 완성될 구원 업적을 보고 희망을 갖는 것이다.
마리아의 축일은 거의 예외 없이 교회의 원형으로서의 마리아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마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전체 구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마리아는 구원 사업에 협력하는 여인이며, '태양을 입은 여인' (묵시 12, 1)이다. 교회는 마리아 안에서 표상된 대로 구세주를 기다리고, '태양을 입은 여인' 처럼 구원을 입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는 하느님 백성의 표상이다.
〔의 의〕 성모 마리아의 신비는 전체 구원의 역사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와 긴밀하게 연결된 모습으로 전례 안에서 거행된다. 이 세상에 구세주가 오실 수 있도록 응답하면서 마리아는 구세사의 길을 열었고, 예수 탄생에서부터 골고타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다. 성령 강림날에 이루어진 교회의 탄생에서부터 마지막 날까지 마리아는 교회의 원형으로서 교회와 함께할 것이다. 마리아는 당신 안에 가장 아름답고 온전한 자세로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한 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마리아 축일을 거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마리아가 보여 주는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을 자기 존재 안에서 실현해야 하며, 그런 이유로 마리아를 공경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례에서 마리아 축일을 거행하는 목적이다. (⇦ 성모 축일 ; → 마리아 ; 성모 성월 ; 전례력)
※ 참고문헌 J. Alfaro · M. Auge · T. Cabestrero, 허종렬 역, 《예수의 어머니》, 가톨릭출판사, 1988/ I.H. Dalmais · P. Jounel, 김인영 역, 《전례 주년》,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6. 〔金福姬〕
마리아 축일 - 祝日
〔라〕Festa Beatae Mariae Virginis · 〔영〕Marian Fea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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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성당 내에 있는 마리아의 무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