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탱, 라이사 Maritain, Raissa(1883~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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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가톨릭 작가. 시인. 1883년 9월 12일 러시아 로스토프(Rostov)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피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소르본 대학에서 자연 과학 학부 과정을 이수하던 중, 유명한 정치가 쥘 파브르(Jules Favre 1809~1880)의 손자인 자크 마리탱(Jacques Maritain, 1882~1973)을 만났다. 당시 그들이 공부하고 있던 소르본 대학은 라이사가 《위대한 우의》(Les Grandes Amitiés)에서 지적하였듯이 "진리에 따라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자유로운 반항에 의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천명하는 사람들을 퇴학시키고 있었다. 그때 가톨릭 작가인 페기(Charles Péguy, 1873~1914)의 권유로 훗날 남편이 될 자크 마리탱과 함께 '콜레즈 드 프랑스 (Collège de France)에 가서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리 고등사범학교 출신으로 소르본 대학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던 페기와의 우정은 그들로 하여금 소르본이라는 울타리를 극복하도록 도와 주었는데, 그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소르본 대학 8강의실에서 토론을 통하여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하곤 하였다. 만약 모든 방법이 막연하게나마 존재한다면, 이 가르침은 영적 영역으로의 개막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인간을 생명력이 있는 순환 과정 속으로 그 위치를 변경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당시의 가톨릭 사상은 지나치게 이성론적 사고에 입각하여 기본 사료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역사적 비평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으며, 과거에 대한 경직과 근대주의 사이에서 또한 개혁 반대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단적 사고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의 구속하지 않고 있었다.
1904년 자크와 결혼한 라이사는, 물론 생각뿐이기는 하였지만, 철학 교수 자격을 획득한 자크 마리탱이 철학을 포기해야만 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훗날 그들의 영세 대부가 되는 레옹 블르와(Leon Bloy, 1846~1917)의 저작을 통해 영성적 삶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고, 자유주의적 프로테스탄트 분위기의 가정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자크와 함께 1906년에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들이 세례를 받았을 때 블르와는 "기적이 이루어졌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며, "신앙은 지성을 포기하는 중에 형성되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느낌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가톨릭으로의 개종은 그리스의 신(新)플라톤주의 철학자 플로티노스(Plotinos, 205~270)의 신비주의적 사고와의 교류를 통해 준비되었으며, 영세 대부인 블르와는 그리스도교적 신비주의 저작을 읽도록 권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수년 간에 걸쳐 그들에게 주요한 영성적 영양분을 공급하였다. 1910년이 되어서야 그들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신학은 신비주의를 향한 그들의 집착을 더욱 심오하고 깊게 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명상하고 열중하였던 모든 문제들에 대해 그들의 친구가 된 신학자들에게 열성적으로 질문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파리 근교 뫼동(Meudon)에 있던 그들의 집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영성적 사고가 이루어진 장소였다. 이후 라이사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대한 자크 마리탱의 저술에 협조자로서 활동하면서도, 문학가로서 작품의 저술에도 몰두하였는데, 실제로 그녀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자크 마리탱의 저작을 20세기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처럼 유명하게 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문학 작품보다는 그녀의 남편이며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인 자크 마리탱의 저술 및 활동의 협조자로서 프랑스 가톨릭 부흥을 위해 노력하였던 사람으로 더 유명한 라이사 마리탱은, 1960년 11월 4일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문학 경향〕 그녀의 작품에는 《한밤의 편지》(Lettre de nuit), 《주어진 삶》(La vie donnée), , 《암굴에서》(Au creux du rocher) 등을 비롯한 4권의 시집과, 회고록 《우리는 모두 친구였습니다》와 《은총 속으로의 탐험》이 있다. 몇몇 저작은 자크 마리탱과 함께 저술하였는데 특히 《시작법의 조건》, 《주 기도문 주석》, 《라이사의 일기》 등이 유명하며 이외에도 몇 편의 수필과 시 또는 시의 번역에 관한 10편 정도의 논문들이 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가장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가 자크 마리탱에게 "당신 부인은 동정 성모 마리아의 연장인 것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으며, 또는 하느님의 전사 같기도 합니다"라고 말하였던 것을 상기해야만 한다. 또한 모리아크(François Mauriac, 1885~1970)는 자신의 일기에 "라이사 마리탱의 저술, 특히 《위대한 우의》라는 제목을 가진 자서전을 통하여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데, 이 책은 결코 '위대한 희망' (Les grandes espérances)에 대한 공허한 반향은 아니다. 또한 자크 마리탱이 1960년 11월 4일 라이사의 죽음으로 갈갈이 찢겨진 그의 심장의 외침을 서문으로 쓴 《기록첩》(Carnet de notes) 같은 저작을 통해서 그녀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지성이나 선량함에 있어 아주 괄목할 만하다" 라고 적고 있다. 라이사의 시는 그 형태가 아주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30여 년에 걸친 생활 경험의 진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녀의 시를 읽을 때 여러 종류의 대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 축적한 예술을 재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첫 번째로 관찰의 주제가 되는 것은, 나무 · 별 · 새 · 몸짓과 얼굴· 풍경이다. 이를 기초로 라이사의 시는 하나의 크로키 같은 그림처럼 형성되며, 한 순간이나 현상의 깊이를 의미있는 것으로 포착하게 된다. 두 번째로는 미술가나 음악가의 작품처럼 이미 이루어진 것들에 대한 관찰에서 비롯된다. 많은 시들이, 예를 들어 그녀를 매우 감동시켰던 샤갈(Chagall)의 그림과 같은 미술적 작품이나 불후의 음악적 작품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 번째로 그녀의 시는 시편, 성서, 전례, 교회의 각종 위대한 문헌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경우 그녀의 시는 그 내용들을 반복하여 말하려고 시도한다. 결국 그녀의 시를 여러 다른 차원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는 그녀의 시는 창조주에 대한 일종의 찬미의 송가같은 인상을 주며, 모든 것이 비롯된 근원적인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행렬 과정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그녀의 시는 두 개의 관점을 항상 갖고 있는데, 즉 모든 시는 형이상학적이며 초지성적인 핵심적 인식에 의해 형성되고, 또한 성스러운 것과 관련되면서 세상의 모든 소리, 음악, 즐거움과 고통을 생성시키는 시는 시인의 침묵 속에서, 그리고 하느님의 침묵에 대한 그 자신의 반향 속에서 흩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라이사의 시에서 놀라운 것은 이러한 시적 경험이 지적이며 철학적인 구조에 의해 인도되고 명확하게 된다는 것이다. 라이사는 시적 언어의 한계와 현실에 관해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아주 세심하게 이루어진 단어들 사이의 구별은 시 속에서 대상인 동시에 기호이기도 하다. 이 구별은 무의미한 결합을 탈피하여 현상들과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동시에 보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공적인 시적 언어의 실체는 전달 불가능한 언어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경험의 산물인데 언어는 경험의 실체와 접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경험을 축출하게 된다. 라이사는 시와 신화 사이의 모든 혼동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었으며, 시와 기도의 관계에 대해서는 보다 지적인 엄격함을 가지고 말하였다. (→ 가톨릭 문학, 프랑스의 ; 마리탱, 자크)
※ 참고문헌  I.J. Gallagher, 《NCE》 9, p. 230/ M. Corvez, Jacques Maritain, Dictiomaire des Philosophes, Paris, PUF, 1992/H. Bars, Jacqus et Raissa Maritain, 《Dsp》 10/ 《EU》, Index/ R. Kanters, Raissa Maritain : lapoésie entre deux silences, Le Figaro Littéraire, n 1201, 12~18 mai, 1969/ M. Dubost et al., Théo, Paris, Droguet-Andrant-Fayard, 1992. 〔璨琪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