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탱, 자크 Maritain, Jaoques(1882~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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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마리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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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마리탱.

프랑스 현대 철학자. 1882년 11월 18일 파리에서 아버지 폴 마리탱과 어머니 즈느비에브 파브르(Geneviève Favre) 사이에서 태어나 공화주의적이고 프로테스탄트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후, 앙리 4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00년에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하였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상대주의와 회의주의가 팽배해 있었으며 소르본 대학에서는 실증주의가 득세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마리탱은 실증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사회주의에도 관심을 가졌으나 만족하지 못하던 중, 페기(C. Péguy)의 권유로 후에 부인이 될 라이사(Raissa)와 함께 콜레즈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에 가서 베르그송(H.L. Bergson)의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그 강의에 영성적 감화를 받아 지성적인 갈등을 풀 수 있게 되었다.
1904년 가톨릭 문필가 블르와(L. Bloy)와 교유하며 영성적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감동되어 마침내 1906년 11월 11일 부인 라이사와 함께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또 클레리사크(Cleissac) 신부의 인도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 접하게 되면서 토마스 사상의 연구에 평생을 바치게 되었다. 그의 경력은 실로 다채로운데 파리 가톨릭 대학의 교수로 있었고,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교황청 설립 중세 철학 연구소에서 강의하였으며, 미국의 프린스톤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의 교환 교수를 역임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드골 정부의 요청으로 바티칸 주재 프랑스 대사를 역임(1945~1948)하기도 하였으며, 1960년 부인 라이사와 사별한 뒤에는 프랑스 툴루즈에 있는 예수의 작은 형제회(Petits frères de Jésus)에 입회하여 저술과 기도 생활에 정진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기 중에는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공의회에 초청되기도 하였으며, 1973년 4월 28일 툴루즈에서 사망하였다. 1958년 미국의 인디애나 주 노트르담 대학교에 '자크 마르탱 센터' 가 설립되어 그의 철학 노선을 따르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예술과 스콜라 철학》(Art et Scolastique, 1920) 외에도 <합일을 위한 분리, 지식의 한계》(Distinguer pour unir, ou les degés du savoir, 1932), 《시와 수필의 한계》(Frontières de la poésie et autres essais, 1935), 《인간과 국가》(Man and the State, 1951), 《도덕 철학》(La Philosophie morale, 1960) 등이 있다.
〔사 상〕 마리탱은 신앙과 학문의 조화를 꾀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사상을 새롭게 조명하여 부각시키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는 자신이 토마스주의자(Thomist)로 불리기를 원하였지만 현대 철학사에서는 흔히 신(新) 토마스주의자(Neo-Tomist)로 지칭되는데, 그의 관심과 저술은 철학의 전 분야에 뻗쳐 있을 만큼 다양하고 방대하다. 그는 토마스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존재론, 인식론, 사회 · 정치 철학, 윤리학, 교육 철학, 미학 등의 분야에 걸쳐 사상을 전개하였다.
존재와 인식 : 존재론에서 그는 존재자의 구체적인 실재성을 주장하며, 이때 존재는 지성적 직관이 형이상학적 인식의 최초의 기초로서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존재는 단순히 경험적 사실이 아니라 정신의 첫째 대상이다. 즉 존재는 인식의 첫 번째 원천이다. 그는 인식론에서 인식의 구조를 유비(類比, analogia)의 방법에 따라 파악하고자 하며, 이 경우에 직관이 중심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마리탱의 인식론은 칸트의 이원론과 과학주의적인 인식론과는 다르다. 마리탱에 있어서 지성적 인식은 진정한 의사 소통, 즉 진리 안에서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며, 이와 같은 의사 소통은 사랑 안에 그 본질을 두는 이성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현대의 실존주의 사상에는 존재에 대한 순수한 지성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현대 실존주의 사상의 중심 개념인 '실존' (existence)은 더 근원적인 개념인 '존재' (ens)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실존의 긍정은 무엇이 있다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 존재에 관한 순수한 직관에서는 본질(essentia, potentia)과 실존(existentia, actus)이 구별된다. 어떤 사물의 본질은 사물을 한 존재로서 이해하도록 하고, 이 경우에 본질은 실존의 현실태에 의해 실재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유(有, esse)를 설정하는 본질이 제거된다면, 실존인 유도 없어진다. 이 두 개념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어 분리될 수 없다. 창조된 존재에 대한 이와 같은 반성적 고찰은 마침내는 존재의 원인, 즉 본질이 실존하는 존재인 자립적인 존재 자체(Ipsum esse subsistens) , 즉 신(神)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신은 실존 자체의 무한한 현실태이다.
그리스도교적 인도주의 : 마리탱은 인간의 마음과 본성이 자율적이라고 주장하는 '인간 중심적인 인도주의'(anthropocentric humanism)를 비판하였다. 마리탱은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인도주의를 부정하는 사상가로서 루터(M. Luther), 데카르트(R. Descartes), 루소(J.J. Rousseau)를 들고 있다. 그에 의하면, 루터는 이성에서 벗어난 신앙을 강조하여 그리스도교적 복음을 내적 체험에 환원시킴으로써 근대의 반지성주의적 주관주의를 초래하게 하였다. 또 합리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카르트와 데카르트주의는 이전의 전통 철학 사상에서 일탈함으로써 사유를 실재하는 사물과 독립해 있는 것으로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데카르트와 합리주의자들의 사상으로 인하여 인간의 인식은 감각적 지각과 관계없는 직관적이고 내적인 것으로 생각되기에 이르렀다. 데카르트는 이성을 감각으로부터, 신체를 의식으로부터, 신앙을 과학으로부터 분리해야 할 것으로 주장한 것이다. 루소는 의지와 선(善)을 마음의 내적인 느낌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인간의 본성이 선하므로 구원이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러한 세 사람의 사상은 칸트의 비판적 관념론에 영향을 미쳐 형이상학의 종언(終焉)을 고하게 하고 과학주의와 실증주의가 태동할 소지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리탱은 현대의 서유럽 문화가 인류를 문명의 황혼' 에 이르도록 하였다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유럽 문명이 인간의 존엄성, 평등, 이웃 사랑, 평화와 같은 가치를 간직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교의 전통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현대의 세속화된 인간이 영적 기반을 뿌리뽑힌 채 새로운 우상과 종교를 추구한다고 간주하였다. 20세기에 와서 이와 같은 우상과 종교는 마르크스주의와 파시스트적 종족주의로서 나타났다. 그는 신을 잃어버린 세속화 시대에 신 중심의 인도주의 혹은 그리스도교적 인도주의를 정립함으로써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으려고 하였다. 그리스도교적 인도주의는 복음서에 나타나는 인간 존중의 이념을 사회적 · 현세적으로 실현하려고 함과 동시에 이를 위해 형제다운 사회 공동체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의미의 인도주의를 '충전적 인도주의' (l'humanisme intégral)라고 부른다.
인격과 개체 : 마리탱의 사회 철학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인격' 과 '개체' 의 구별이다. '인격' 개념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반면, '개체' 개념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 · 식물에도 적용된다. 마리탱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의 형이상학에 의거하여 질료(materia)와 개체(individum)의 연관성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질료는 개체화(individuatio)의 원리임과 동시에 분할의 원리이기도 하다. 인격은 인간 영혼의 '자립성' (subsistentia)에 의거하는 반면, 개체는 질료에 뿌리를 둔다. 여기서 정신은 인격성(personality)의 뿌리이다. 인격은 신으로부터 유래하고 정신적 영혼을 삶의 원리로 갖는다. 영혼은 인식하고 사랑할 수 있으며 은총에 의해 고양되어 신적인 삶에 참여할 수 있고 마침내 신을 사랑하고 알 수 있다. 인간은 여타의 개체와는 다르다. 인간은 하나의 동물이며 개체이지만, 지성과 의지로써 자신을 제어하며 참을 수 있는 개체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단순히 신체적 존재만은 아니다. 인간은 남에게 자신을 자유롭게 줄 수 있는 사랑과 지식을 통하여 거대한 우주를 포함할 수 있는 소우주이다. 그렇지만 인간 안에 인격이라는 실재와 개체라는 실재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전체 존재는 질료에서 유래하므로 개체임과 동시에 정신에서 유래하므로 인격이다. 마리탱에 의하면 인격성과 개체성은 나면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신체는 인간 자신의 의지적인 노력 없이도 성장하는 반면, 인격은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냥 내버려두면 글자 그대로 배아(胚芽)의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물론 인격의 도야는 쉽지 않다. 그래서 참으로 완전한 인격은 성인(聖人)들에게서만 발견될 수 있다.
마리탱의 인격과 개체 사이의 형이상학적 구별은 그의 윤리적 · 정치적 입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만일 개인이 자율성을 지니지 않는 사회적 전체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전체주의 정치가 정당화된다. 이러한 예를 흡스(T. Hobbes)의 절대 군주 정치와 루소의 민주주의, 헤겔(G.W.F.Hegel)의 절대 국가에서 볼 수 있다. 마리탱이 강조하는 인간 인격의 원형은 신적인 위격이므로, 인격은 초월자인 신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평 가〕 마리탱은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토마스 사상에서 영감을 받은 사상가로서 철학의 주요 문제에 관한 해답을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 · 정치 · 교회와 관련되는 여러 문제에 관해 올바른 해명을 시도하였던 현대 가톨릭 사상계의 대표적인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질송과 함께 현대 토마스 연구자로서 금자탑을 이룩하였다고 평가된다. (→ 신토마스주의 ; 질송 ; 마리탱, 라이사)
※ 참고문헌  J. Maritain, The person and the Common Good, Charles Scribner's Son, New York, 1947/ 一, The Range of Reason, Charles Scribner's Son, New York, 1953/ 一, Christlicher Humanismus, Heidelberg, 1950/ J.W. Evans · L.R. Ward eds., The Social and Political Philosophy ofJacques Maritain, Charles Scribner's Son, New York, 1955/ J.C. Livingston, Modern Chistian Thought, Macmillan Publishing Co., New York, 1971/ J. Macquarrie, Twentieth Century Religious Thought, SCM Press, Wiltshire, 1981/ N.W. Michener, Maritain on the Nature ofMan in a Christian Democracy, Hull, Canada, 1955/ E. Coreth · W.M. Neidl · G. Pfligersdorffer eds., Christliche Philosophie im katholischen Denken des 19. und 20. Jahrhunderts, Bd. 2, Styria, Graz Wien Koeln, 1988/ D. Huismaned., Dictiomaire des Philosophe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84. 〔朴鐘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