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므레

〔히〕מַמרֵא · 〔라 · 영〕Mamre

글자 크기
4
마므레 유적지.

마므레 유적지.

창세기에 모두 일곱 차례 등장하는데, 두 번은 아모리 사람의 인명(人名)이고, 나머지 다섯 번은 헤브론 근처의 지명(地名)이다.
인명 : 창세기 14장 고대 왕들의 전투 설화에서,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의 네 왕들의 동맹군을 추적하기 위하여 다른 세 부족들과 동맹을 맺었는데 이 가운데 한 부족의 족장 이름이 마므레이다(창세 14, 13. 24). 마므레는 에스골과 아넬의 형제였으며, 헤브론(חֶבְרוֹן)이라는 지명이 히브리어로 '친구' 란 의미의 헤베르(חֶבֵר)로부터 유래되었고, 헤브론의 다른 이름이 '키럇아르바' (Kiriath-Arba)인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는 예로부터 아브라함을 비롯한 네 부족 동맹의 전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명 : 헤브론 북쪽으로 3km 떨어진 해발 1,024m 지점에 위치해 있는 마므레는, 상수리나무와 샘이 있어서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던 곳이며 장막을 치고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창세기에서는 헤브론에 있는 '상수리나무 있는 곳 으로 불렸으며(창세 13, 18 ; 18, 1), 헤브론과 동일시되기도 하였다(창세 23, 19).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헤브론에서부터 6스타디아(약 1km) 떨어진 곳에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유대 전쟁사》 Ⅳ, 533), 실제로 마므레는 헤브론에서 17스타디아(약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예루살렘 탈무드는 이곳을 '보트나' 로 불렀고 악코, 가자와 함께 팔레스티나의 3대 시장(市場)으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당시 이곳이 우상 숭배의 장소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출입을 삼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Avodah Zara 39c). 4세기경 프랑스 보르도에서 온 순례자의 기록(Itin. Burd., 599, 537)에 의하면 마므레에는 콘스탄틴 대제가 건설한 기념 성당이 있다는데, 이러한 사실은 에우세비오(Vita Constantini 1,51~53)에 의해서도 확인되었다. 또한 5세기 초 팔레스티나의 교회사가 소조메노(Sozomenus)는 마므레가 헤브론의 막벨라로부터 15스타디아(2.7km) 거리에 위치해 있고,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상수리나무가 있던 장소임을 증언하고 있다(Historia Ecclesiatica Ⅱ,4). 또한 그는 해마다 여름철이면 이곳에서 시장이 열리고 그리스도교인, 유대인, 이방인들이 함께 헌주(獻酒)와 분향을 하는 일종의 제의 장소였음도 밝히고 있다.
〔고고학적 발견〕 이곳은 1926~ 1928년 독일의 마더(A.E. Mader)에 의해 최초로 발굴되었고, 1984~1986년 이스라엘의 마겐(I.Magen)에 의하여 재발굴되었다. 발굴 결과 오늘날 볼 수 있는 마므레의 석조 울타리는 헤로데 시대에 처음으로 건축된 것임이 밝혀졌다. 헤로데는 해발 1,024m 높이에 위치한 약간 경사진 바위 평지 위에 길이 65.1m, 폭 49.3m 되는 직사각형의 석조 울타리를 건설하였는데, 석조 방법은 헤브론의 막벨라 굴 위에 헤로데가 건설한 막벨라 사원과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외부로 노출되는 한 개의 돌의 면 가장자리 둘레를 폭 10cm 정도로 다듬어서 돌 하나하나의 윤곽을 뚜렷하게 하였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벽면을 일직선으로 맞추는 작업을 용이하게 하였다. 1,000여 평 넓이의 이 석조 구조물은 웅장한 헤로데 시대의 석조 기술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시장 장터의 울타리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쪽 문 안 오른쪽 모퉁이에 위치한 깊이 5.3m, 직경 2.8m 규모의 우물은 오늘날까지도 지하수나 빗물이 고여서 사용 가능하다. 그러나 우물 주변과 남쪽 벽 근처의 바닥에 돌판으로 포장한 흔적은 모두가 후기에 축조된 것들이다. 비잔틴 시대의 성당 터에 남아 있는 돌판들의 크기가 예루살렘 헤로데 성전의 바닥에 사용된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아 헤로데 시대의 마므레에도 바닥은 모두가 다듬어진 돌판으로 포장되었음을 잘 알 수 있다. 마므레의 석조 울타리에는 북쪽과 서쪽 벽에 각각 한 개씩의 성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지방의 석조 축조는 예루살렘 헤로데 성전이나 막벨라 사원의 것과 양식이 같다. 4세기 중엽에 콘스탄틴 대제는 이곳의 이교도 제단을 헐어 버리고 기념 성당을 건설하였는데, 이때부터 마므레는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성지가 되었으며 7세기 아랍인들에 의해 파괴된 성당은 1200년경 십자군들에 의해 복원되었고, 훗날 마더의 발굴을 통해 그 규모가 밝혀지게 되었다. 오늘날 이 성당은 석조 울타리 동쪽 면적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마므레에 관한 최초의 역사적 언급은 요세푸스에 의해서였지만 그의 증언은 매우 불충분하다. 그는 이상하게도 헤브론의 그 유명한 막벨라 사원이나 마므레의 석조 울타리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이 장소들이 유대인들의 성지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 지역의 주인공들이었던 에돔 사람들의 제의 장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자세한 서술을 생략한 것 같다. 에돔인들은 본래 요르단 강 건너편이 고향이었지만 기원전 586년 유대 왕국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함락당한 후 이 지역의 통치권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에돔 지역과 비슷한 자연 조건을 갖춘 유대의 남부 지역으로 서서히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기원전 2세기경 페트라를 수도로 하는 나바테야 왕국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아라비아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국제 무역이 활발해졌고 헤브론 지역에도 많은 에돔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지중해변의 전통적인 블레셋의 도시였던 아쉬켈론에서 두 세대 전에 유대교로 강제 개종당하였던 에돔 출신의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헤로데는, 왕이 된 후에 성전을 비롯한 대규모의 도시 건축 사업에 에돔인들의 인적 · 기술적 지원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이곳의 동족들에게 막벨라의 굴과 마므레에 제의 장소를 만들어 줌으로써 그들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곳에서 출토된 한 비문에서도 밝혀졌는데 이 비석에는 당시 에돔 사람들의 신이었던 코스(Qos) 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당시의 다른 종교적 건물과 마찬가지로 이 석조 울타리의 네 벽이 정확하게 동서남북으로 향해 있음을 통해서도 증명될 수 있다. 해로데 왕은 예루살렘에는 유대인들을 위한 성전을 건축하였고, 헤브론에는 막벨라와 마므레에 에돔인들을 위한 제의 장소를 건설함으로써 자신의 지지 기반인 두 민족의 종교적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정책을 펼쳤다.
※ 참고문헌  Y.L. Arbeitman, 《ABD》 4, pp.492~493/ A.E. Mader, Mambre : Die Ergebnise der Ausgrabungen im heiligen Bezirk, Ramat el-Halil in Süd-Paliästina, Friburg, 1957/ I. Magen, Elonei Mamre : Herodian Cult Site, Qadmoniot 24, 1991, pp. 46~55/ -, 《NEAEHL》 3, pp.939~942. 〔金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