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래아와 골란 고원 사이에 있는 큰 호수. 구약성서에서는 키네레트 바다(Yam Kinneret)라고 한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그렇게 부른다. 마르코(1, 16 ; 3, 7)와 마태오(4, 18 ; 14, 25)는 갈릴래아 바다라고 한다. 루가는 겐네사렛 호수라고 하는데(5, 1), 이는 호수 서북부에 있는 기노사르(Ginnosar) 평야에서 따온 명칭이다. 요한 복음서에서는 갈릴래아 바다라고도 하고(6, 1), 티베리아 바다라고도 하는데(21, 1) 후자는 호수 서쪽에 자리잡은 갈릴래야 지방의 수도 티베리아에서 따온 명칭이다.
갈릴래아 호수면은 지중해보다 212m나 얕다. 호수 남북의 길이는 약 20km, 동서의 길이는 약 12km, 둘레는 52km, 깊이는 49m, 수면은 170k㎡이다. 갈릴래아 호수의 물은 헤르몬 산(해발 2,814m)의 눈이 녹아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네 곳(Bareighit, Hasbani, Dan, Banias)에서 분출하여 일단 훌레 호수(지금은 농경지)로 모여들었다가, 또 다시 상부 요르단 강을 거쳐, 갈릴래아 호수로 흘러든 것이다. 네 곳에서 분출하는 지하수 가운데 수량이 비교적 적은 두 곳(Bareighit, Hasbani)은 레바논 국가에 속하고, 세계에서 지하수로서는 수량이 가장 많은 단(정확히는 Dan 폐허 남서쪽에 있는 AinLeddan)은 이스라엘 국가에 속하며, 세계에서 수량이 두번째로 많은 바니아스(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하수는 본디 시리아 국가에 속하나 1967년 이래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다. 성서 시대에 갈릴래아 호수에 어떤 물고기들이 살았는지 밝히기 곤란하다. 그 까닭은 당시 문헌이 빈약할 뿐더러, 고고학계와 어류학계에서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나오는 물고기 뼈에 별관심을 쏟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갈릴래아 호수에는 20여 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 호수에서 가장 잘 잡히는 물고기는 갈릴래아 청어(Mirogex terrae sanctae)로서 총 어획고의 60%나 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물고기는 붕어보다 조금 큰, 베드로의 물고기(Sarotherodon galilaeus)와 요르단 베드로 물고기(Clarias lazera)도 제법 서식하지만, 유대인들은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물고기를 불결하다(레위 11장)고 보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
〔호수변 도시와 유적〕 티베리아 : 갈릴래아 호수 서안에는 헤로데 안티파스가 18~20년 대대적인 건축 공사를 벌여 갈릴래아 영지의 새 도읍으로 삼았던 티베리아가 자리잡고 있다. 안티파스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14~37)의 이름을 따서 새 도읍을 그렇게 명명했다. 제2차 독립전쟁(132~135)이 실패한 다음 많은 율법학자들이 모여들어 티베리아 학파를 형성하였고 5세기 초에 여기서 예루살렘 탈무드, 일명 팔레스티나 탈무드를 편찬하였다. 티베리아 시내에서는 70~80년 야브네에서 유대교를 재건한 요나한 벤 자카이 율법학자의 무덤, 12세기에 아리스토텔리즘을 이용하여 유대교를 기술한 모세 벤마이몬(1135~1204), , 일명 마이모니데스의 묘소가 있다. 그리고 갈릴래아 호수를 환히 내려다볼 수 있는 티베리아 언덕 위에는 135년에 순교한 율법학자 아키바의 묘소가 있다.
막달라 : 티베리아에서 북쪽으로 약 4km 떨어진 호수변에 예수 시대에 그리스어로는 막달라, 히브리어로는 믹달이라고 하는 소도시가 있었으나 지금은 호수가에 폐허만 남아 있다. 1971~1973년 예수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회당을 발굴했다. 막달라 출신 마리아는 예수로부터 치유를 받고 감사한 나머지 갈릴래아 부인들과 더불어 예수 일행의 시중을 들었다(루가 8, 1-3). 또한 갈릴래아 부인들과 함께 예수의 임종과 장례를 지켜 보았으며(마르 15, 40-47),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마르 16, 1-8).
겐네사렛 : 막달라에서 북동쪽으로 5리쯤 가면 호수변에 그리스어로 겐네사렛, 히브리어로는 기노사르라고 하는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다. 예수 일행이 여기 뭍에 하선한 적이 있다(마르 6, 53). 이 평야는 지금 기노사르 키부츠 소유이다. 이 키부츠(공동 농장) 소속 이갈 알론 센터(Yigal Alon Center)에는 예수 시대의 작은 배 한 척이 보존되어 있다. 1986년 1월 막달라와 기노사르 키부츠 사이의 갯벌에서 가뭄 덕분에 드러난 것이다. 센터에 가서 청하면 배를 발굴하여 보존하게 된 과정을 찍은 기록 영화를 보여준다(소요 시간 20분, 한국어 녹음).
타브가 : 기노사르 키부츠에서 동북쪽으로 5리쯤 가면 타브가이다.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신 곳이라 한다(마르 6, 30-44). 이곳에는 5세기 비잔틴 성당이 있었는데 기초만 남고 전파된 것을 독일 베네딕도회에서 고증을 거쳐 1982년에 원래의 형태대로 복원했다. 성당 바닥 모자이크가 일품이다.
가파르나움 : 타브가에서 동북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예수님의 활동 본거지인 가파르나움이 있다. 예수 시대 가파르나움에는 세관(마르 2, 13-17), 병영(마태 8, 5-13 ; 루가 7, 1-10), 회당(마르 6, 1-6)이 있었다. 여기에는 수제자 시몬 베드로의 본가 또는 처가가 있었는데(마르 1, 29-31), 예수는 그 집에 거처하면서 호수 일대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가파르나움, 코라진, 베싸이다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다(마태 11, 20-24 ; 루가 10, 13-15).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집을 소중히 여겨 집회 장소로 삼은 것 같다. 그 위에다 5세기에 화려한 팔각(八角) 성당을 지었다. 프란치스코회원들은 5세기 성당 초석을 고스란히 보존코자 그 바깥에 철근 콘크리트 기둥들을 세우고 날아갈 듯 붕 떠오른 팔각 성당을 1991년에 완공했다.
코라진 : 가파르나움 북쪽 산 위에 코라진 폐허가 있다. 폐허 일부만 발굴했는데 현무암 회당이 돋보인다. 예수는 가파르나움과 베싸이다와 더불어 코라진에 대해서도 불행을 선언하였다(마태 11, 20-24 : 루가 10, 13-15).
베싸이다 : 상부 요르단 강이 갈릴래아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 동쪽 호수변에 베싸이다 어촌이 있었다. 그 위치는 호수변에 있는 엘 아라이(el-Araj) 폐허일 것이다. 기원전 4년부터 기원후 34년까지 갈릴래아 호수 동북부 지방을 다스리던 헤로데 필립보가 베싸이다 어촌을 대폭 확장하여 베싸이다 율리아스(e-Tel)를 건설했다. 예수는 베싸이다 출신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 그리고 필립보를 제자로 발탁하였다(요한 1, 44 : 12, 21). 베싸이다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였다(마르 8, 22-26). 또한 가파르나움과 코라진과 함께 베싸이다에 대해서도 불행을 선언하였다(마태 11, 20-24 ; 루가 10, 13-15) .
※ 참고문헌 Willibald Bösen, Galiäa als Lebensraum und Wirkungsfeld Jesu, Freiburg, Herder, 1985, pp.39~441 Edwin Firmage, Zoology D. Fish, 《ABD》 6/ Sean Freyne, 《ABD》 2/ E. Struthers Malbon, The Jesus of Mark and the Sea of Galilee, 《JBL》 103/ Henry O. Thompson, Jordan River, 《ABD》 3. 〔鄭良謨〕
갈릴래아 호수
湖水
〔라〕Mare Galilaeae · 〔영〕Sea of Galilee · 〔히〕Yam Kinne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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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아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