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석 본당

磨石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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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화도면 마석우리 296-1 소재. 1985년 2월 22일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그리스도 왕. 관할 구역은 화도읍 화도면, 수동면 일대. 〔교 세〕 1985년 1,288명, 1988년 1,720명, 1992년 1,157명, 1994년 1,394명. 〔역대 신부〕 초대 이상준(李相俊) 타데오(1985. 3~1987.2) 2대 한만옥(韓晚鈺) 토마스(1987. 2~1990. 2), 3대 홍성남(洪性男) 마태오(1990. 2~1993. 11), 4대 탁현수(卓鉉洙) 아우구스티노(1993. 11~현재).
〔공소 시대 및 본당 신설〕 1955년경 청평(淸平) 본당소속으로 시작된 마석 공소는 초창기 공소 강당을 마련하지 못해 양조장 창고 및 사가(私家) 등에서 공소 예절을 드리다가 1975년에야 비로소 오월 목장 내에 임시 강당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듬해 3월 1일자로 춘천교구 청평 본당에서 서울대교구 구리(九里) 본당 관할로 이관된 마석 공소는, 1978년 1월 31일 서울대교구의 지원과 공소 신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현 성당 부지 700여 평을 매입하였다. 그리고 그 해 6월 착공에 들어가 10월 25일 성당(70평)과 사제관을 완공하였는데, 당시 성전 건립에는 금호동 본당으로부터 많은 재정적 도움을 받았으며, 이때 한강 본당 신자인 심 마리아의 헌금으로 수녀원도 함께 마련하였다. 1979년 2월 15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이 개설되었으며, 수녀들의 전교 활동과 공소 신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외형적으로는 본당 규모로까지 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5년 2월 22일자로 본당 승격이 이루어져 초대 주임으로 이상준 신부가 부임하였다.
〔성장과 변모〕 '신자 한 명이 예비 신자 한 명 인도' 라는 사목 방침을 마련한 2대 주임 한만옥 신부는, 본당 신자들과 함께 구역 반 모임 및 레지오 마리애 등 단체 활동을 통해 예비 신자 인도와 냉담자 권면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결과, 1987년 말 마석 본당 관할의 덕소 공소와 평내 공소를 합쳐 신자수가 1,5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들어 서울 및 신도시로 이주하는 신자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이로 인한 신자수 격감으로 본당 운영이 어려워졌으며, 각 사도직 단체들도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못하는 등 한때 공동체 분위기가 매우 침체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94년 3월 사목 협의회가 구성되면서 각 신심 단체들도 활성화되어, 현재 레지오 마리애 '은총의 어머니' 꾸리아 산하에 13개 쁘레시디움을 비롯하여 연령회, M.E., 선종 봉사회, 꾸르실료, 교리 교사회,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 등 평신도 사도직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한편, 1996년 4월 28일부터는 인근의 녹촌리(鹿村里) 일대 가구 공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필리핀 근로자들을 위해 미사를 신설하였는데, 매주 70~80여 명이 미사에 참례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화도면 창현리(倉峴里) 일대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1997년 10월부터 주민들이 입주할 예정인데, 이에 따라 신자수도 급증할 것이 예상되어 1996년 9월 24일 창현 본당을 분리시켰다. 또한, 마석 본당 소재지 일대에도 조만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앞으로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 서울대교구 ; 창현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새벽> 38호(1978. 12), 서울대교구홍보국, p. 3/《새벽》41호(1979. 3), p. 3. 〔편찬실〕